하얀 라운드 반팔 셔츠가 살짝 보이는 교복 셔츠 위로, 하얗게 돋보이는 목선과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했다. 웃음이 그리어진 입술 사이로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듯, 그 아이가 웃으면 환한 빛이 내게 뿜어져 나오는 것도 같았다. 중학교 등교 첫날, 나는 학교 현관에서 빛을 내며 웃던 그 아이를 보았고, 그렇게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내 짝사랑을 시작했다.
격주로 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던 학교 조회 덕에, 나는 그 아이의 옆에 서있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반 부반장, 그 아이는 내 옆 반 반장이었으니, 그렇게 그 아이 옆에 나란히 서서, 길고 지루한 조회 시간을 달콤한 기분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아이를 똑바로 한 번 쳐다보거나, 말을 한 번 건네보았던 건 아니다. 그냥 그 아이가 옆에 서 있는 기분이 좋았고,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 좋았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좋았던 거 같다.
말을 아예 못 나눠 본 것은 아니다. 학급 별 특별운영회의 시간 같은 때, 사안에 대한 토론을 하며, 그 아이와 눈을 마주쳐 보았고, 말을 섞어 보았다. 그렇게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공식적인 회의 시간에만 그 아이와 말을 나눌 수 있었고, 눈빛을 교환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사적인 감정을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으니, 그 아이는 내 감정을 전혀 눈치 못 챘을 것이다. 아니, 못 챘었어야 하는 게 맞다. 운이 나쁜 건지, 아니면 좋은 건지, 나는 중학교 내내 그 아이와 같은 반인적이 없었고, 고등학교도 다른 학교로 배정받았었다. 중학교 졸업 후, 그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을 방법을 찾아볼 수 없었고, 우연히 길에서라도 마주치길 바라던 마음은, 고등학교 여학생이 갖게 될 바쁜 생활에 뒤쳐져,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마음속 깊은 서랍 속으로 곱게 스며들어갔다.
그 여중생은, 대학생이 되었고, 사회인이 되었고, 멋진 남자를 만났고, 뱃속에 소중한 생명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친한 친구의 동생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불러온 배를 품이 넓은 원피스로 우아하게 가리고, 그 친구의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려, 남편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었다. 화창한 4월의 봄날은, 따스한 햇살만큼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여긴가 봐.
친구 여동생의 이름이 적힌 웨딩홀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우리가 조금 늦게 왔는지, 이미 신랑 신부의 가족들은 모두 홀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주차를 애매하게 하고 온 듯해 마음이 불편했고, 축의금을 받고 있는 테이블에 가서 주차 문제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몇몇 사람들이 아직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던 나는, 몇 발자국을 남기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얼어붙었다는 말이 더 정확히 맞을 듯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나를, 옆에서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남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 순간 말을 꺼낼 수도 없었고, 몸을 움직여 그 상황을 피할 수도 없었다.
나와 눈이 마주쳐있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부른 배를 앞에 두고, 내 손을 따스히 잡고 있는 남편을 옆에 두고, 그렇게 그 아이를 다시 만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던 순간, 흔들리던 시선이 느껴졌으니 그 아이도 나를 알아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인사를 하기에도, 그렇다고 서로 얼굴을 외면해 버리기에도, 우리는 완전 타인도, 그렇다고 타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누가 시작해 준 게 아니고, 누가 끝내 준 게 아니니, 나의 짝사랑은 언제 정확히 끝나기는 했었는지, 혹은 겹겹이 쌓여있는 시공간의 틈으로 여전히 흐르고 있었는지, 나는 그 짧은 순간의 마주침에서도 대답을 얻지는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