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서랍을 열면 동전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쓰다 남은 동전들을 모아두다 보니 동전 주머니가 꽤 두둑해졌다. 화폐 가치를 생각하려면 그 나라의 환율을 생각하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화폐 가치를 생각해 가며 머릿속으로 계산해 봐야 하는 그런 동전들이다. 그 나라에 갈 일이 없으면 가치를 생각해 볼 일이 없으니, 내 서랍 속에서는 그저 동전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 수도 있는 가치를 지닌 물건들이기에,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점점 동전 소리가 요란해져도 어찌할 수 없이 그냥 지니고 있다.
그중에는 내 어릴 적 손안에 하나만 쥐어져도 군것질할 생각에 행복해하던 동전이 있다. 주스가 비워진 후 그 병을 근처 가게에 가져가 동전으로 바꿔 받으면 세상을 얻은 듯 뿌듯해했던 동전도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양과 크기도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그 동전들을 화폐 가치로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그 동전이 열 개가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다를 텐데 조금은 다른 대우를 해줘야 되는 건 아닌지, 그 나라에 갈 일이 없으면 쓸 일도 없을 동전들을 갖고 가끔은 마음을 써볼 때도 있다.
요즈음에도 동전은 계속 쌓여간다. 현금을 쓸 일이 없다가도 가끔 현금을 쓰고 잔돈을 받으면 서랍에 넣어둔다. 서랍에 쌓여가는 동전과 방금 잔돈으로 받은 동전들이 다르다는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동전은 장소를 이어주는 약속 같은 개념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그곳에 다시 가면 그 동전의 가치는 되살아나 지갑 속 특별한 공간에 따로 챙겨져 다르게 다뤄질 것이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동전들은 한 곳에 모여져 부딪히는 소리로 존재감을 이어간다. 가끔 그 동전들 속 익숙한 동전 하나가 내 기억을 되살릴 뿐이다.
학교 소풍을 가는 버스 안이었는데, 친구 한 명과 나란히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 친한 친구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친구와 함께 앉게 된 게 불편했다. 그래도 과자도 나눠먹고 창 밖 풍경도 보며 어느새 우리는 쉼 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시간을 보내다 그 친구가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하나를 꺼냈는데, 손바닥에 놓고 뭔가를 말하려다 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손에서 동전을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은 의자와 의자를 지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주변만 살펴보다가 결국에는 찾기를 포기했었다. 그 친구가 왜 갑자기 동전을 꺼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쉬워하던 친구를 어색하게 쳐다보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는 애써 쌓았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잃어버린 채 침묵 속에서 버스에 앉아있었다. 뭔가를 잃어버리긴 했는데, 그게 동전이었는지 아니면 그 무엇이었는지 우리 둘은 알 수가 없었다.
소풍을 다녀온 며칠 후 수업 중이었는데, 누군가 교실 문을 열고 그 친구의 이름을 불러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날 학교에 돌아오지 않았고, 며칠 동안 학교에 결석했다. 나중에야 그날 그 친구 아버지가 몰던 차가 강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마음에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차가 강에 빠질 수가 있는지, 다리에서 강에 빠진다는 게 과연 가능한지,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처럼 느껴져 도저히 그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이 지난 후에야 학교에 돌아온 그 친구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500원짜리 동전이 손바닥을 벗어나 버스 바닥을 굴러가는 걸 나와 친구는 보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 동전을 우리 둘 다 잡지를 못했다. 그러고 나서 흐르던 침묵과 어색함은 두 사람의 마음에 담긴 불편함을 뜻했다. 친구는 불편해 보였지만, 그 친구의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해줄 수 없어 나는 답답했다. 무표정한 그 친구에게 뭔가 말을 해보고 싶은데, 버스에 앉아서 어색하게 있을 때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해도 되는 말이라는 게 뭔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말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찮은 건 절대 아니니 서랍이라는 공간에 넣어둔다. 그저 그 용도를 모르겠어서, 또는 따로 있어야 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그나마 내 시야에서 멀어질 수 없는 서랍에 넣어두고 있다. 동전의 찰랑이는 소리, 흩어지고 모여지는 모양의 변화 속에 유독 도드라진 동전 하나는 그러다 지나간 기억 하나도 생각나게 한다. 버스 바닥에 떨어진 순간부터 동그랗게 굴러가던 모습까지. 그 500원짜리 동전은 내 기억 속에서 천천히 굴러가지만, 우리는 왜 그 동전을 잡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