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스쿨의 대표 작곡가인 모턴 펠트만의 직업관
부리부리한 이목구비와 두꺼운 뿔테, 능글맞은 표정과 기름으로 넘긴 뻣뻣한 머리와 입에 문 담배. 많지 남겨지지 않은 사진들 속 그의 이미지는 꽤나 무시무시하다. 그러나 왠지모르게 그의 눈을 보면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순진한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아동복매장의 직원이기도 하고, 20세기의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존 케이지(John Cage)나 마크 로스코(Mark Rothko)와 같은 동시대의 유명예술가들과 함께 긴밀하게 교류하며 20세기에 가장 개성있는 예술학파인 뉴욕스쿨(The New York School)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 바로 모턴 펠트만(Morton Feldman, 1926-1987)이다.
예술가를 결정하는 기준
젊은 펠트만은 친구와 함께 대학입학시험을 보러갔지만, 돌연 '이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라며 시험장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그는 44살까지 아버지가 운영하는 아동복매장에서 일을 하며 작곡을 병행하였다. 아무도 그가 시험을 보지 않은 이유를 모르지만, 개성적인 작품들로 음악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작곡가가 되었다.
그는 월리엄포드 리에거(Wallingford Riegger)나 슈테판 볼프(Stefan Wolpe)에게서 작곡을 배우긴 했지만, 기술의 습득보다 주로 미학적인 토론에 몰두하였다. 그 후 작곡선생님으로 에드가 바레즈(Edgard Varèse)를 소개받았을 때도 일방적인 학습이 아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그는 후에 버팔로대학의 작곡과교수로서 임용되기도 하였지만, 작곡교육에 있어서는 크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가 토론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듯이, 그에게 작곡이란 일방적으로 가르칠 수 없는 과목이었다.
보편적으로 예술가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1. 해당 예술분야에 대한 학업이나 자격증
2. 예술을 사용한 경제활동
3. 예술단체에 속함
4. 콩쿨 등 공인된 기관에서의 인정
등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기준은 얼핏 꽤나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위의 기준으로 펠트만을 평가한다면 그는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1. 학위 없음
2. 수입의 대부분을 아동복매장에서 얻음
3. 뉴욕스쿨은 예술단체보다는 커뮤니티에 가까움
4. 수상기록 없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교육은 아주 먼 과거부터 상위계층을 위해 발달하였다. 자연스럽게 예술교육의 가(價)는 매우 높게 책정되어있다. 고가의 교육은 다시 고가의 교육으로 대물려진다. 더불어 악기나 여러 장비, 프로그램을 구입하기 위해 많은 비용까지 지불해야한다. 또한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술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기때문에 더 많은 학위, 더 많은 수상경력을 위해 유학을 떠나야하기도 한다. 모든 과정을 이행했음에도 예술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예술을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님에도 -경우에 따라 수익이 목적일 수도 있음-, 돈이 없으면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 이때 예술교육은 굶주린 창작들에게 매우 달콤한 유혹이다. 좋은 예술교육은 물론 예술계의 발전에 필수적이지만, 예술교육은 본질적으로 창작가를 육성하기 위함이다. 창작가들이 모두 교육자가 되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마치 씨없는 종자가 후대를 이을 수 없듯이- 창작없는 예술생태계는 쉽게 붕괴될 것이다. 많은 전공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창작의 길을 그만두고 다른 길로 벗어나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펠트만은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아동복매장에서 얻음으로써 자유로운 작곡활동을 지속해나갔다. 그렇기에 위의 여러 사회계급제도에 속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곡가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창작가로서 예술에 몸바쳐 숭고하게 작업해야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숭고함은 반대로 창작가에게 칼날을 들이미는 행위일 수도 있다. 펠트만의 사례를 통해 창작가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 바로 '작곡을 하는 행위'이다. 누구든지 작곡만 한다면 작곡가가 될 수 있다. 이는 현대예술유형 중 하나인 참여형 예술(인터렉티브아트, Interactive Art)의 개념과 일치한다. 이는 모든 사회적인 기준을 거부하고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인터미션연작(Intermissions)에서 그의 사상과 태도가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일상 속 창작의 순간
그는 아동복 매장에서 일을 하며 남는 시간을 활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피아노를 위한 연작인 "Intermissions"는 6개의 소품으로서, 제목으로 사용된 인터미션(Intermission)은 공연에서 무대 정비나 막간 전환을 위한 휴식시간을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사전적 의미인 '빈 시간'을 그는 '창작의 시간'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하였다. 이는 '창작가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제목에 활용한 훌륭한 예이다. (기존 다른 음악들의 제목은 음악적 형식을 표현하거나 개념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귀와 정신에 가장 가까운 악기, 피아노
그가 피아노를 선택한 이유는 피아노가 일상에 가장 가까운 악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편적으로 악기를 떠올려본다면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 기타와 같은 악기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바순이나 베이스클라리넷, 비올라 다감바와 같은 악기들은 거의 바로 연상되지 않는다.- 집에 있는 피아노는 언제는 뚜껑만 열면 조율도 필요없이 바로 연주해볼 수 있다. 반면 소규모이상의 실내악이나 관현악은 작곡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당시에는 직접 소리를 들어보며 작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과 사이에 피아노에 걸터앉아 담배를 물고 여러 화음을 연주해보며 작품을 구상하는 펠트만의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작곡가이자 연주자이자 청중
인터미션연작 중 마지막 소품인 'Intermission 6'는 최초의 우연성음악 중 하나이다. 악보에 여기저기 흩어진 퍼즐처럼 배치된 화음들을 연주자 임의로 연결해 구성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몇가지 규칙이 있다:
1. 어떤 소리로 시작해 다른 소리로 진행하라.
2. (...)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때까지 유지한 뒤에 다음 화음을 연주하라.
(...)
여기서 두 번째 규칙에 따르면, 개별 소리조각은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때까지 유지한다. 연주되는 장소의 음향, 피아노의 종류에 따라 소리의 길이는 미세하게 변할 것이며, 연주자는 다음 조각을 연주하기 위해서 자신이 연주한 소리에 더욱 귀기울려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주자는 동시에 청중이되며, 동시에 조각들의 순서를 결정짓는 창작가가 된다. 작곡가-연주자-청중을 통합하는 작품이다.
*또한 소리자체의 시간이란 개념은 후에 독일의 작곡가인 헬무트 라헨만(Helmut Lachenmann)이 제시한 개념인 '아이겐짜이트(Eigenzeit)'를 미리 예견하였다. 라헨만은 음향이 '무(無)'로 돌아가는 시간, 예를들어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사그라들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사용해 카덴쯔클랑(Kadenzklang)이란 새로운 소리의 개념을 제시했으며, 현대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단순함을 통해 보여주는 본질
우연성음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칼하인즈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의 피아노작품 11(Klavierstücke XI)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연주자는 주어진 짧은 형식의 조각들을 임의로 순서지어 연주해야한다. 그러나 악보를 보면 펠트만의 작품과 매우 다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슈톡하우젠의 작품 속 소리들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구성 속에 위치하고 있다. 두 작품은 근본적으로 매우 다른 방향을 가진다. 작품의 단순함은 단순히 그가 많은 시간을 작곡에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소리 자체의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단일음향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작품 속 화음들의 구조는 후기 그의 작품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순간의 즉흥으로 구성된 우연적인 화음이 아니라, 즉흥에 기인되었으나 숙고되어 선정되었음을 보여준다. 음악의 본질은 '청취'에 있기 때문에 귀는 최고의 창작도구이다. 그는 귀로 걸러진 화음들을 솎아내어 아름다운 한 상을 차려내었다. 이제 피아노에 앉아 마음껏 화음을 음미해보자. 기본적인 피아노연주법만 안다면 누구나 연주해볼 수 있다.
그의 작품앞에서 모두가 창작가가 될 수 있다.
글: 이석희(Seokhee Lee)
seokhee.lee@folkwang-un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