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좋은 소재인데 왜 결과가 아쉬울까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공감될 때]
좋은 소재인데도 결과가 아쉬운 작품들을 종종 마주한다.
같은 업계 사람으로서, 또 한 명의 시청자로서 그럴 때면 안타까움과 동시에 묘한 분노가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장르일수록 기대치는 더 높아지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의 아쉬움도 더 크게 남는다.
그런 순간들을 돌아보면, 보통 세 가지 이유로 정리된다.
1️⃣ 아이디어는 있는데 구조가 없다.
주인공에게 사건은 계속 발생하지만, 무엇을 원하고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욕망의 동기가 약하다. 결국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할 주체의 정체성이 흐릿해진다.
2️⃣ 장르의 약속을 스스로 깨버린다.
시청자는 장르가 제시하는 기대와 약속을 기반으로 작품에 들어온다. 클리셰의 변주는 환영받지만, 약속 자체를 뒤집어버리면 몰입은 쉽게 깨진다. 예를 들어 히어로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인간 군상 다큐처럼 변해버린다면, 그 변화는 실험이 아니라 배신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3️⃣ 캐릭터가 아니라 설정만 성장한다.
이야기를 움직이는 건 결국 캐릭터다. 캐릭터가 변화하고 성장할 때 시청자는 함께 몰입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대로인데 세계관과 설정만 커질수록, 정작 인물은 이야기 속에서 묻혀버린다.
그래서 대본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다.
“좋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잘 꿰어야 보배다.”
아이디어와 설정이 구슬이라면, 그것을 꿰는 일은 결국 구조와 구성의 문제다.
요즘 나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보다, 어떻게 잘 꿰어낼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하며 대본을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