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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ul 22. 2024

승진을 못 한 마음, 내게  친절할 수밖에


목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팀장이 나를 불러 말했다.

“자기랑 연민 씨랑 비슷하게 입사했잖아? 근데 자기는 계약직부터 시작해서 정규직 시간이 조금 모자라서 연민 씨가 먼저 대리 달게 됐어. 좀 섭섭해도 이해해”


왜 목요일 아침부터 이런 말을 하는 걸까. 퇴근하는 시간에 했어도 될 텐데. 굳이 지금 이 시간에. 가뜩이나 몇 년째 승진을 못해서 속으로 쪽팔려하고 있던 차에 팀장이란 사람은 참 말도 이쁘게 했다. 섭섭해도 이해하라니. 그게 어디 이해로 될 일인가? 업무 처리 능력이나 성과를 들이 내밀 었다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을. 정규직 입사 연도 순이라니. 이 회사에 오래 다니고 그 위에 전 직장의 경력을 얹어도 나는 또 이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솔직히 대리 달면 여기저기 회의 붙들려 다니면서 월급은 쥐똥만큼 오르니 크게 반기지 않았던 승진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이런 말을 듣고 나서 자리로 돌아오니 마음이 이상했다.

아니 이상했던가?


제일 먼저 창피했고, 그다음으로 뭘 어쩌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승진은 하고 싶지만 직급의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어차피 각자 업무가 다르니 나는 또 나대로 업무실적 스트레스받으며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하면서 이럴 거면 대리라도 달아서 단 돈 만원이라도 더 받아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며 마우스를 잡았고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일을 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나는 이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생각.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에 수치스러웠다. 나보다 훨씬 늦게 입사한 사람들도 대리가 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승진해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그들의 푸념에 맞다고 농담을 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씁쓸했다.


그들이 나를 안쓰럽고 무능력하게 볼 것 같아서.

나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이 안 그럴 리 없다 믿으며 괜히 회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지고 더 비뚤어지고 싶었다.


“열심히 일하면 뭐 해?”


그런 생각이 점점 커지더니 정말 목요일 그날은 아침부터 맥이 빠지고 곧 대리를 달게 될 연민 동료까지 미웠다. 되도록 아무하고도 말 한마디 섞고 싶지 않았지만 연민 동료가 슬쩍 내게 오더니 어색한 말투로 “이렇게 됐네요..”라며 겸연쩍은 듯 자리로 돌아갔다. 아마 그녀도 내게 미안했을 거다.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알고 내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또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인 것도 아니까.. 그래서 그녀를 미워하는 내가 싫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내 감정은 내 감정이지.


당장 ‘이놈의 빌어먹을 회사, 내가 관둔다’고 큰소리치며 짐 싸고 싶었지만 쥐꼬리도 나름 한 가정의 보탬이 되는지라 일단 속으로 삭이고 삭히고 또 삭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화나고 속상한 마음을 삭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음속에 들어와 버린 미친 코끼리를 잠재우는 방법은 그저 무심히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하는 법인데 나는 그 코끼리에게 아주 열심히 먹이를 갖다 주고 있었다.


팀장의 짜증 나는 요구, 말도 안 되는 계산법, 내게 주어지는 업무량, 승진을 앞둔 동료의 침묵, 옆에서 눈치 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인턴까지 모두 나를 못 살게 구는 나쁜 사람이 되었고 머릿속에 짜증이 가득 찼다. 그날은 도돌이표처럼 스스로 나를 갉아먹는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괴롭히는 날이었다.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님 그냥 일이 뭐 어떻게 저절로 되고 있는지 간에 목요일 하루, 사무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그야말로 지옥이었고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밖에 흘러갈 수 없다면 다른 방식의 탈출이 필요했다.


빠른 체념은 사람의 성장을 방해하지만, 때론 내게 가장 친절한 방식의 위로이기도 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적극적으로 어필해서 연민 동료대신 내게 대리를 달아달라고 요구하기도 싫다. 다른 사람들의 안쓰러운 눈빛과 마음은 내가 멋대로 지어낸 생각이니(원래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극적으로 상상하지 말자. 지금 내가 다독이며 가야 할 마음은 이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계속 해낼 것인가이고 그러려면 최대한 지금 이 감정을 털고 나아가야 한다.


회사 컴퓨터 메모장을 켜 놓고 저렇게 적었다. 해일처럼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는 두서없이 보여도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논리가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원래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논리 정연하지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냥 계속 머릿속으로 비정형으로 감정을 풀어놓는 것보다 이렇게 문장으로 써 내려가면 지금 어떤 감정으로 이 상황을 대하고 있는지 눈에 보인다. 그건 여차하면 더럽고 치사하기도 하며, 의외로 슬프고 담담한 모습일 때도 있다. 어떤 감정을 발견하든지 늘어져 있던 생각이 형태를 갖추고 앞으로 취할 스텐스 각을 잡았다면 이제 적극적으로 내가 기분 좋을 만한 일을 하는 것만이 남았다.


목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속 코끼리와 씨름하느라 기진맥진하며 퇴근을 했다. 계속 마음을 잡고 또 잡으면서 운동을 갔다. 계속 한 가지 생각에 매몰돼 있는 것보단 몸이라도 써서 운동을 하면 땀도 흘리고 여러 사람들과 스몰토크로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아서였다. 역시 이 생각은 적중했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털어놓을까 하다가 괜히 또 푸념으로 이야기가 흘러갈까 싶어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먹으며 금요일 퇴근 후 내게 주는 선물의 시간을 계획했다.


금요일. 일부러 딴생각 못하게 다음 주에 해야 할 일까지 앞당겨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다. 맞은편에 앉아 팀장과 연민 동료는 뭔가를 속닥거리며 얘기하고 있고 인턴 직원은 혼자 묵묵하게 프린트를 하고. 나는 그 풍경을 잠시 낯설게 바라보며 오늘 퇴근 후 해야 할 일을 복기했다. 빨리 6시가 되기를.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그러려면 점심을 먹고 오후 업무까지 또 마쳐야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할 일을 앞두고 참을 수 있었다. 물론 퇴근 시간 즈음 ‘대리’ 직급에 대한 이야기는 또 나왔지만 억지로 눈을 반달로 만들어 크게 웃고 얼른 사무실 계단을 내려와 지하철역으로 움직였다.


내게 가장 친절하기로 마음먹은 날.


집에 가는 길에 대형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구입했다. 보통은 포인트 적립과 할인을 받으려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기에 이런 서점은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역시 들어오자마자 책 향기가 비의 수증기를 머금고 더욱 진하게 풍겨왔다. 첫 무드부터 성공이다.

곧장 서점 직원분에게 내가 찾는 책이 있는지 여쭈었다. “금빛 종소리라는 책을 찾고 있는데요.”


다행히 서점에 있었다. 없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이제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종종걸음으로 다음 공간을 찾아 나섰다. 저녁과 디저트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스타벅스로 갈까 했지만 너무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하고, 집에서 20분이나 걸어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마침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덜 걷는 곳이길 바랐다. 하지만 저녁과 디저트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집 근처에서 찾기란 꽤 한정적이어서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순댓국 한 그릇 때리고,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이디야에 가자.


금요일 저녁의 황금 같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 위해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밀어붙였다. 나는 오늘 어떻게든 나에게 친절하기로 마음먹었으므로.


프랜차이즈의 순댓국을 뜨겁게 먹고 다시 종종걸음으로 이디야 카페에 갔다. 다행히 문 닫기까지 약 1시간 반 정도가 남아있었다. 밤 커피는 수면에 방해가 되니 상큼한 레모네이드와 토스트 하나를 주문했다. 빵과 음료가 나오는 동안 화장실에 가서 손을 깨끗이 닦고 습기 먹은 머리도 정돈했다. 그리곤 자리로 돌아와 창가에 앉아 비 맞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문 하나를 두고 습하고 더운 세계에서 쾌적하고 시원한 세계로 당도하다니. 여기에 새콤 달콤한 음식까지 함께 있으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레모네이드를 한 입 크게 마시고는 바로 책을 펼쳤다. 진급이 안 되고 심란한 마음에 고른 책은 김하나 작가의 <금빛 종소리>였다. 민음사 유튜브에서 영업당한 책이었는데 일반적인 소설이나 에세이였다면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책이 채택된 이유는 바로 ‘고전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읽히는 오래된 책을 읽는 일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명의 감각 같은 것이 스며 있다. 그 책이 쓰인 시대와 읽는 지금 사이에 가로놓인 시간의 부피를 꿰뚫고 울려오는 동심원의 파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도리고 에번스의 표현을 응용하자면,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는 아름답고 지칠 줄 모르는 세계로부터 고전이라는 징검다리를 타고 시간을 건너오는 진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고전 읽기는 ‘들어가는’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자기장이나 시간성, 종소리, 분위기 모두 고전 읽기라는 행위의 체험적 측면을 표현하려고 동원한 말들이다. 그것은 다른 시대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공간의 어떤 정신을 체험하는 일이다.
김하나 <금빛 종소리>


승진 빨리 하는 법, 기획의 정석, 퇴사하고 여행 등 수많은 분야의 책 중에서 고전이야기를 다룬 책은 지금 내게 너무 필요한 종류의 친절이었다. 부족한 능력을 채워 다시 한번 열심히 일해 승진하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또 지금 상황을 외면하는 퇴사를 결정하고 싶지도 않았으며, 실제 저자들이 겪은 책을 읽고 내 인생을 그들의 이야기에 끼워 맞추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현재 나의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올바른 마음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결정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고전이, 고전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고전적인 인내가 필요했다.



책 <금빛 종소리>의 부제는 ‘김하나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고전 읽기’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평소 어렵다고 느끼는 고전 소설 몇 편에 대해 이 소설이 쓰인 당대의 시대 환경과 지금의 환경을 살펴보며 결코 예전의 이야기가 구식이 아니고 현대 우리들한테까지 통용되는 본능과 감정을 재밌는 인문학 공부처럼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점이 좋았다. 공부할 수 있는 것.

매번 승진에 목말라하지만 똑 떨어지는 회사사람 정체성에서 벗어나 텍스트에 몰두하고 그 의미를 내 삶에 끼워 맞춰 보는 일. 원래 책에 밑줄 하나 긋지 않는 내가 이번만큼은 정말 공부하듯이 읽겠다고 챙겨 온 연필로 틈틈이 중요한 문장을 긋고 나의 생각까지 적어 놓았다. 읽어보지 않은 고전 <아우라>에 대한 챕터를 읽을 때는 할 수 있는 정도의 상상력과 이해할 수 없는 능력까지 총동원해 텍스트를 씹고 맛봐야 했지만 곧 읽는 것에 탄력이 붙어 좋아하는 작가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를 읽을 때는 작가가 의도하는 이야기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나름대로 비판과 차이점의 코멘트까지 달아 진심으로 책을 달게 읽을 수 있었다.  


이 한 시간 반은 내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친절한 시간이었다.


빗소리에 묻힌 음악이 서서히 들리지 않는 고전의 세계에 흠뻑 빠져 들었고 그 속에선 아직도 대리도 못 단 내가 괜찮았고 어쩌면 또다시 묵묵하게 내 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 관하여.


고전소설에 속 인물들은 지금의 시대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특유의 인내심과 자제력이 현대인들과는 달라 보였다.


모든 것이 고전다운 책 세상엔 느긋한 부류의 사람이 있었고 급진적인 변화 속에서 특유의 인내심과 유머를 발휘하며 잇속을 챙기는 사람도 있었다. 계급끼리 발산되는 충돌과 모순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고전소설 속 인물들은 본능대로 움직이기도 했지만, 가까스로 그 본능을 억누르며 사회적 관습에 기대어 완벽한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 뭘 하든 그 사람들은 자신만의 ‘어쩔 수 없는’ 환경을 껴안고 문제를 돌파하려고 애쓰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일에 ’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변화를 포기하며 살아남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 삶은 계속되고 있고 그 시대의 삶이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위안이 됐다.


이 시간만으로 충분했다. 노래방에 가서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맛있고 매콤한 떡볶이를 시켜 탄산수와 먹는 시간도 꽤 좋았었겠지만 고전 소설을 얘기하는 책 속으로 들어가 작가가 파헤쳐놓은 문장을 수집하고 뒤집어 다시 내 글로 만들어내는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이제 다시, 어쨌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만 하고 그 용기를 조금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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