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구룬파야, 넌 빛날 테니까

인문학연구소공감 그림책 읽기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인간은 그 인정을 받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피땀 흘려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렇게 인정받고 자랑스러운 인생을 누리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남에게 인정받기는 고사하고 멸시와 무시만 당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것이 시기가 맞지 않거나, 누군가 자기를 알아줄 사람을 못 만나거나 하는 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좌절하고 고통 가운데 정말 죽지 못해서 살거나, 때로 삶의 끈을 놓는 이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렇듯 우리네 인생이란 생각보다 많이 고달프다는 게 참으로 씁쓸하다 하겠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일본의 동화작가 니시우치 미나미(西内ミナミ)가 쓴 <구룬파 유치원>이란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인 코끼리 구룬파의 모습에서 우리는 오늘날 좌절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과 동시에 회복과 치유의 메시지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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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룬파라는 이름의 코끼리는 외톨이로 자라 늘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날마다 울어서 눈에는 눈물자국이 그득하고, 온몸은 진흙투성이에 악취도 심해서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는 것조차도 어렵다. 보다 못한 마을 친구들이 구룬파를 강가로 데려가 깨끗이 몸을 씻기고 격려하여 사회로 내보낸다.


하지만 사회에서 구룬파는 적응을 잘 못한 채 실수만 연발한다. 제과점에서, 접시 공장에서, 제화점에서, 피아노 공장에서, 자동차 공장에서, 그는 가는 직장마다 해고를 당한다. 무려 5번씩이나 말이다!! 한껏 주눅이 든 채 예전의 그 한심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지나 않을까 하여 눈물이 또 나려는 그때, 구룬파는 어느 아이 엄마를 만나게 된다.



무려 12명의 아이를 둔 엄마가 구룬파에게 자기 아이들과 놀아달라고 요청한다. 아이들은 구룬파를 너무도 잘 따르고 구룬파 역시 그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면서 구룬파는 비로소 자신의 삶이 회복되고 치유됨을 깨닫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외로움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다. 해고되면서 자신이 들고 온 물건들은 이제 아이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음식과 놀이터가 된다. 구룬파 자신의 몸만큼 큰 비스킷은 아이들의 간식이 되고, 큰 구두와 자동차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며 큰 접시는 아이들의 수영장이 된다. 이리하여 구룬파는 유치원을 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약간 결은 다르지만 이 구룬파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10대 시절 태권도 유망주였지만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희망에 선수 생활을 과감히 접고 막노동을 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금세 돈이 떨어져서 결국 노숙인 생활을 해야 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간간이 드라마 OST를 부르기도 했지만 누구도 자기 이름 석 자 알아주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나이도 40대에 접어들었고 여전히 무명가수라는 딱지는 그대로 남았다. 그러다 어느 종편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거기서 알게 된 한 가수의 곡을 커버하면서 그는 뜻하지 않은 인기를 얻는다. 그가 커버한 그 노래가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아이들은 위안을 얻고 그 커버곡은 음원차트 역주행을 거쳐 빌보드까지 올라간다. 일개 무명가수에서 그는 온 국민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른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바로 인기곡 <나는 반딧불>을 부른 황가람이라는 가수의 이야기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언뜻 들으면 살면서 늘 고생만 하다가 여차저차해서 운 좋게 인생역전을 이루었다는 식으로,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상투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바로 <나는 반딧불> 노래 가사에 나오는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라고 하겠다.



구룬파처럼 가는 직장마다 적응을 잘 못해서 연신 해고를 당해도, 황가람처럼 제대로 된 노래 한 곡 히트 못 시키고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해도, 그래도 괜찮다는 그 한마디가 어디 이 둘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이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구룬파와 수많은 황가람이 존재한다. 취업이 힘들어 좌절한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젊은 시절 그토록 한 직장에 헌신하고도 구조조정이다 뭐다 명예퇴직을 강요당하는 중장년 직장인들, 시험 점수가 좀처럼 오르지 않아 속이 타들어가는 학생들, 심지어 인생 막바지에 뜻하지 않은 푸대접을 받는 어르신들까지 어느 누구 하나 기쁘고 보람찬 인생을 누리고는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그 한마디가 바로 ‘그래도 괜찮아’가 아닐까.

우리는 ‘그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듣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은 몹시 꺼려진다. 나는 높임을 받아도 다른 사람은 낮춰 보는 것이 인간의 고질적 습성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습성을 이기고 내가 다른 사람의 위로가 되려고 할 때, 비로소 세상은 은혜와 치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쑥스럽고 어색해도 이렇게 남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되기를 늘 소망하며 이 한마디 말로 이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그래도 괜찮아, 구룬파야, 넌 빛날 테니까.‘”


_ 마을활동가 유현대

(인문학연구소공감 책 읽기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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