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anni Oct 08. 2023

어머님 성함이 남자이름이네요?

유아용품계 지독한 젠더구분, 초입부터 경험하다


어디까지 비판하고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까


"어머님 성함이 남자이름이네요"


유아차(유모차)를 사러 갔다가 결제하면서 들은 말이다. 어릴 때부터 주구장창 들어왔던 말이지만 그걸 "유아차"를 사러 와서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


아직 임산부인데다 인터넷 구매(핫딜최고)를 선호하기에 오프라인 매장에 가본 적이 정말 손에 꼽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언제나 당연하게 들려오는 "아이 성별이 어떻게 되나요?"와 그에 따르는 색깔구분...


처음엔 못 들은 척 넘기다가도, 어느 순간 한계치에 도달한다.  아니, 여자 아기면 밝은 색 유모차를 타야 하고, 남자아기면 어두운 색 유모차를 타야 하는 법안이라도 있나요???라고 화내고 싶다.


어릴 때는 내 이름이 남자이름인가 보다 했고, 속상한 마음에 한번 sns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 보았는데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비슷했다. 초등학생이었단 나는 그 결과에 위로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로 위로받은 어릴 적 나를 안아주고 싶다. 세상에 남자이름, 여자이름이 어딨으며 그렇다 해서 뭐가 문제길래 굳이 한 마디씩 얹는 것일까? 


이제는 중성적인 이름 덕분에 혼자 살 때도 택배 수령 시 굳이 강한 이름으로 바꿀 필요도 없고, 여러 경우에도 괜한 성별 추정도 피할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이름이 나를 한계 짓지 않아서 좋다. 





물론 나도 핑크색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나의 취향일까 아니면 어릴 적부터 학습되어 온 선택지의 산물일까? 후자의 비율이 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육아용품 판매자들 역시 학습된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며, 판매에 보다 효율적인 사회적 통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변화하는 사회와 젠더의식에 무관심하고, 과거의 편견을 그대로 전파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젠더의식에 무관심한 자들이 판매하는 육아용품을 굳이 구매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기사를 찾아보니 아이용품을 핑크색/파란색으로 나누어 마케팅하는 것은 성별이 다른 형제에게 물려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고도 한다. 만약 그런 마케팅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면 "너무 촌스럽다."


미투운동이 촉발된 것이 2017년 10월, 우리나라에도 번져 사회를 흔들었던 것이 2018년도이다. 벌써 6년이나 흘렀다. 여전히 여성은 산책을 하다가도 뒤틀린 성의식에 휩싸인 남성에게 맞아 죽는 처절한 위치에 있지만 사회는 이에 보다 적극적으로 분노한다.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수많은 행동들이 적어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역시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여전히 남자아이는 파란색 옷을 입고 로봇을 가지고 놀고, 여자 아이는 분홍색 옷을 입고 인형을 가지고 놀며 '엄마놀이'를 하면서 성 역할을 구분 짓는다고 생각하는가?


육아용품 판매자들은 엄마와 아기를 생각하며 상품을 만들면서 '엄마'들이 겪고 있는 의식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에 왜 발맞추지 않는 것인가





물론 "출산과 육아"라는 주제에서 도저히 양성이 평등해지기 어려운 신체적 한계가 있다.


아무래도 아이를 품고 있는 것도 여성이고 그 아이를 출산하고 젖을 물리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통해 육아를 맡게 되는 것이 신체적, 제도적으로 여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임신을 하고 들었던 생각 중 '이제 이혼하면 큰일이다'(물론 이혼생각 없다)가 있었는데, 임신으로 인하여 내 삶의 주도성과 자주성이 일부 상실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을 땐 갈라지더라도 각자 삶을 살면 되었지만 임산부가 된 지금은 남편을 비롯한 온 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본능적으로 나는 이제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약자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여성이 육아용품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요 구매결정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엄청나게 계획적이고, 탐색하고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더더욱 주도적 구매자가 되었다(사실 우리 집에 들이는 용품의 대부분의 주도적 구매자는 나다.).


현세대의 여성구매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판매자들의 젠더교육이 최소한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소비자를 이해해야 마케팅을 할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육아용품 판매 바우처에 있던 남성들이 떠오른다. 작은 변화가 모여 만들어낸 비판의식의 결과물일지도 또는 해당 사회(주로 유럽)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시도가 모여 새로운 상식을 만든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프릴이 잔뜩 달린 원피스를 입힐 것이고 예뻐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라는 숲」의 이진민 저자님이 제안한 것처럼 '선녀와 나무꾼'을 읽으며 여성의 목욕을 몰래 훔쳐보는 것, 옷을 훔쳐가는 것, 여성을 단순 출산의 수단으로 치부하는 것에 대하여 잘못된 점을 짚어 줄 것이다.


나 역시 뱃속의 딸이 자라면 핑크색 옷이 귀엽다고 사입힐 것이다. 하지만 초록색 유모차에 파란색 블랭킷을 덮어주고 "세상엔 남자색, 여자색이란 게 없다고" 알려줄 것이다. 아이가 자라나면 여성이라면 100퍼센트 겪는 성희롱과 성추행(진짜다)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이다.


아이가 10대에 접어들면  '성관계의 기반에 있는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의미'를 알려줄 것이다. 여성의 몸이 단순히 대상화되고 강간이 난무하는 야동이라는 세계의 올바르지 않음을 경계하도록 할 것이다. 아들이 생긴다면 더더욱 욕구를 인정하고 건강하게 해소하는 법을 함께 논의할 것이다. 부끄러울 것이 하나 없도록.




여기까지가 모순에 가득 찬 내가 고민하는 수준이다. 한계가 많을 것이다.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이를 키워가면서 계속해서 고민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고정된 성역할을 부여받는다면 나는 항의할 것이고, 아이에게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려줄 것이다.


다행히 초등교육계에서는 고정된 성역할을 탈피하고, 누군가에겐 칼날이 될 수 있는 편견에 예민하도록 교육하는 '아웃박스'라는 모임이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들의 행보를 관찰자로서 응원했으나 아이를 가지고 나니 이 답답한 세상에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로 보인다. 그러한  '아웃박스'의 성평등 교육에 보다 적극적 지지를 보내고 싶다.




*서울시 성평등사전에서는 유모차는 육아의 주체를 여성으로만 한정지음에 따라 '유아차'로 변경하여 명명하도록 제안했다.



참고자료

<책> 이진민, "아이라는 숲, 숲을 곁에 두고 나무만 바라보는 부모를 위한 12가지 철학 수업", 웨일북


<사이트> 성평등 교육 연구 교사모임, 아웃박스(https://outbox.kr/)


<기사>

김효인, 조유빈, "핑크는 여성의 색이 아니었다… 어린이 제품에 녹아든 성차별", 22.12.29. 투데이신문

(https://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811)

남보라, "연필까지 남녀 구분.. 숨 막힐 것 같은 '여성=분홍' 용품들", 21.05.03., 한국일보

(https://v.daum.net/v/20210503140003728)

김세희, "레고 장난감에서 성별 구분 사라진다… 캘리포니아는 ‘성 중립 진열대’ 의무화", 21.10.17., KBS

(https://news.kbs.co.kr/news/mobile/view/view.do?ncd=5302542)






                    

매거진의 이전글 임산부가 되면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