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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ome Dec 11. 2022

'발해를 꿈꾸며'는 꿈이었을까?

철원 노동당사와 소이산 미군부대 터

지난 주 일요일에 어머니의 조카딸이 결혼해서 청담동에 있는 예식장에 다녀왔습니다. 그 조카딸은 저보다 3살 어리다고 합니다. 사실 제 기준으로는 남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먼 친척'이라서 그동안 교류 자체가 없었고 얼굴을 보고 살짝 놀랐습니다. 일단 평범한 외모의 우리 집안과 달리 신부가 연예인급의 미인이었기에 '유전자가 다른 먼 친척'임을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환을 보내 온 곳이 연예기획, 광고, 미용, 골프, 호텔 등이라서 가까운 친척 쪽의 직업군과도 거리가 먼 분야였습니다.


한편, 결혼축하화환 중 눈에 띄는 것은 '재경철원군민회'였습니다. 1980년대 제가 어릴 때 어머니의 사촌집이라며 강원도 철원 생창리에 방문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신부가 다름 아닌 그 집 딸이었던 것입니다. 강원도 철원 생창리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 10월 30일 재향군인 100세대가 입주한 재건촌 민북마을이었기에 민간인통제지역이라서 방문할 때마다 검문소에서 군인의 검문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철원 아저씨라고 부른 키가 작은 친척 아저씨가 검문소까지 나와서 우리를 에스코트했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냉전분위기가 와해되었지만 생창리에 다시 방문한 적은 없었습니다.


철원의 소이산 정상에는 6.25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했던 레이더기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동안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출신의 먼 친척이 결혼한 것을 계기로 철원에 한 번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더욱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알려진 '노동당사' 건물도 답사할 겸 해서 철원으로 향했습니다.


철원으로 향해 가는 길목에는 자연스럽게 미군의 흔적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의정부로 진입하는 초입에는 이제는 철거가 완료된 도봉산 기슭의 캠프 잭슨(Camp Jackson)에 있던 미군 급수탑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시설이 철거되었지만 존치 시설물로 급수탑은 살아 남은 것입니다. 다만, 급수탑에 적혀 있던 캠프 잭슨이라는 문구는 지워져 있었습니다.


동두천에 이르러서는 과거 미7사단이 건설한 '아리랑다리'의 대체교량인 안흥교가 보였고, 안흥교 너머로는 과거 미군기지 '캠프 캐슬(Camp Castle)'이었던 현재는 동양대학교 북서울캠퍼스가 보였습니다.


북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자 경기도 연천으로 진입하였고, 오른편에 미군 사격장으로 향하는 영문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한탄대교를 건너기 직전에는 38선 돌파기념비가 보였고 한탄대교 옆에는 미군 44공병대가 건설한 한탄교가 보였습니다. 조금더 북쪽으로 이동하니 'SOC실증연구센터'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근방에서 차를 잠시 세우고 이곳을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곳이 과거 미7사단과 미2사단이 사용한 후 한국정부에 반환했던 '현가리 사격장' 터였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산하 SOC실증연구센터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구 '현가리 사격장' 터

현가리 사격장 터를 잠시 살펴본 후 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강원도라고 불리우는 강원도 철원군으로 진입하였습니다. 철원군은 스스로 통일시대 대한민국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철원군은 위치상으로 휴전선의 중간지역에 있기 때문에 문자적으로만 보더라도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원군에 진입하니 지뢰(Mine) 경고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소이산 주변에도 지뢰 경고문구가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오자 '노동당사'가 눈에 보였습니다. 1994년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 3집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에 나오는 노동당사를 개인적으로 목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노동당사 맞은편에는 철원역사문화공원이라는 곳이 조성되어 있었고 이곳 주차장에 무료로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철원역사문화공원에 있는 '철원역'에서 모노레일을 탑승하면 소이산 전망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노동당사

대한민국 땅 철원에 왜 공산당의 노동당사가 있을까요? 철원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가상으로 그어진 38선의 이북지역이었습니다. 즉, 해방 후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는 북한땅이었던 곳입니다.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설정된 휴전선이 철원 지역에서는 38선보다 북쪽에 위치하게 되면서 현재의 노동당사가 위치한 철원 지역은 대한민국 땅이 된 것입니다. 휴전선은 기존의 38선이 아닌 전장을 중심으로 설정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입니다. 6.25전쟁당시 고지의 쟁탈을 위해 피나는 전쟁을 했던 전략적 중요지 중 하나인 철의 삼각지에 바로 철원지역이 포함되어 있던 것입니다.

철의 삼각지대 지도

이러한 역사적인 장소에서 1990년대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통일을 염원하는 대중가요를 발표하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센세이션한 일이었습니다. 서태지는 당시 세계적으로 냉전 분위기가 완화되고 있던 시대의 흐름을 캐치하여 이러한 시대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하였기에, 단순히 10대들에게 인기있는 아이돌 가수의 차원을 넘어 대중들로부터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한 후 한 달만에 발해를 꿈꾸며가 발매되었기에 그 의미는 더 크게 울려퍼졌던 것 같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당사 맞은편에는 소이산이 자리하고 있고 그 기슭 평지에는 철원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소이산과 철원역사문화공원

미군은 6.25전쟁 당시 소이산(해발 362.3m) 정상에 레이더기지를 조성하였는데, 바로 맞은편에 노동당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다시금 냉전시대의 흔적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 내에는 철원지역의 근대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과거의 모습을 재현한 근대문화거리가 조성되어 있어서 한 번쯤 시간을 내어 방문해볼 만합니다. 다음은 근대문화거리 안내도입니다.


소이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3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철원역사문화공원 내 '철원역'에서 모노레일을 탑승하는 방법입니다.

소이산 모노레일

그리고 다음으로 편리한 방법은 소이산 남동쪽에 있는 봉수대 오름길(또는 DMZ평화의 길)을 따라가는 방법입니다. 이 길은 경사로이긴 하지만 도로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르내리는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다음 방법은 가장 난이도가 있는 방법으로써 소이산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이용하다보면 이후 봉수대 오름길과 만나게 됩니다.


저는 철원역사문화공원 내 '철원역'과 '드라마세트장' 인근에서 가까운 진입로를 통해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이용하여 소이산 정상에 오른 후 DMZ평화의 길로 하산하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등산 전에 상점가에 있는 한 커피숍에 방문하였는데, 런닝맨 출연진 사인이 진열되어 있어서 알아보니 이곳에서 런닝맨을 촬영했었다고 합니다.

런닝맨 출연진 서명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지뢰꽃길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왜냐하면 길 옆으로 지뢰밭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지뢰지역은 출입이 엄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지뢰로 인해 이곳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보존이 잘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추정이 된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곳이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이산 정상 둘레길

과거 군사시설로 사용되었던 소이산 정상은 소이산 평화마루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소이산 정상 평화마루공원

소이산 정상 평화마루공원 초입에는 과거 미군부대 막사건물이 남아 있으나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막사 건물 위로도 과거의 군사시설이 남아 있는데, 이 곳 소이산 정상의 부대는 6.25전쟁 당시 미군의 레이더 기지로 사용되었고 북쪽을 향하는 발칸포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6.25 후 한국군이 사용하다가 지금은 미사용중이라고 합니다. 사실 소이산은 6.25 전쟁 이전 부터도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하여 봉수대로 사용되던 곳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소이산 미군 막사
소이산 정상부 과거의 군사시설
소이산 정상에서 보이는 철원평화 지대 그리고 북한지역

소이산 정상에 서면 광활한 철원평화가 눈앞에 보이고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지 중 한 곳인 백마고지도 보이며 그 앞 산줄기 너머 북한지역이 보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가까이 위치해 있다니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생활 이후 북한지역을 이렇게 가까이 보게 된 것은 경기도 파주시 캠프 그리브스 방문 이후 처음입니다.


소이산 정상의 미군부대의 이름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름 없는 부대였을수도 있고, 이름은 있었으나 기록화되지 않아 잊혀졌을 수도 있고, 이름이 있었으나 저의 자료조사가 미흡하여 아직 모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미군부대였다는 사실을 소이산 평화마루공원의 안내문이 아닌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앞서 언급한 미군 막사 건물에 남아 있는 T213이라는 건물관리번호 때문입니다.

미군막사 번호 T213

미군은 시설물에 T나 S라는 식별문자를 사용하여 관리합니다. T는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이고, S는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입니다. 6.25전쟁 후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직도 이 건물이 남아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슬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이산 평화의 길을 통해 소이산을 하산하고 다시 한 번 노동당사를 보며 평화를 염원해봅니다.

소이산 평화의 길

https://youtu.be/O_XcTBUrX8g?si=DKqv1MWUP2p574f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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