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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이 후후후 May 07. 2022

나의 봉쇄일지|제9화 신기한 일

없는 게 아니라 몰랐던 것에 대하여

나의 봉쇄일지




제9화 신기한 일



이 사진을 찍을 땐, 주인공인 야채의 이름이 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초록이 좋았을뿐




워순(莴笋)을 아시나요

 

  남는 건 시간이고, 이 시간을 그동안 미뤄뒀던 많은 것과 사귐을 갖는 시간을 가져야지 하며 가장 먼저 청소를 했다. 물론 청소야 매일 하지만, 유리창이나 베란다처럼 평소에는 될 수 있으면 끝까지 미루는 그런 곳들 말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 즉각적인 보상이 없다. 개운하고, 상쾌하다. 깨끗해진 유리창과 베란다를 보며 마음 한 켠에 쌓아둔 무언가가 싹 내려간 듯 개운하고 상쾌했다.


 두 번 째로는 사진을 정리했다. 클라우드와 외장하드, 그리고 휴대폰에 쌓여있는 사진들, 사진을 다시 보며 시간여행을 하고, 추억여행을 하고, 또 과감하게 아니다 싶은 것은 지워버린다. 사진 촬영이 일상이 된 요즘, 무조건 찍고 보자, 남는 건 사진이다라는 생각으로 일상 속 소유하고 싶은 순간을 모두 찍어대는 탓에 인물이며 사물이며 풍경이며 사진이 많다. 디지털에서도 무소유가 필요하다며 사진을 찍던 그 때보다는 조금 객관적인 시선과 낮아진 마음의 온도로 과감하게 삭제하며 디지털 다이어트를 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사진이 있었다. 작년 스촨베이루(四川北路)에 새로 연 상업 문화 단지 금조8농 今潮8弄에서 열린 주말 마켓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도시 농부의 부스에서 예쁘게 누워있는 야채 더미가 시선을 사로잡아 찍은 사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 자체보다 거기에 누워있는 야채에 시선이 닿았다. 그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보이는 이 야채. 바로 워순(莴笋)이다. 


  해외에 살아도 관심이나 애정이 없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현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적다. 특히 상하이처럼 한인사회가 넓은 곳에서는 더하다. 현지 음식 한 번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언제든 익숙한 제품을 살 수 있는 한인마트가 있고,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 되어 있어 원하는 고국의 물건을 구하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 타지살이의 고단함을 나눌 수 있는 교민이라 불리는 한국인이 주변에 많고,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더욱 접근이 쉽다. 나는 비교적 한국인이 많은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내 삶도 비슷하다. 덕분에 언어가 잘 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기도 한다. 음식면에서는 워낙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서 중국 내 다양한 도시 요리점을 찾아다니며 문화 감수성을 키워왔지만 덕분에 요리하는 횟수가 적고 하더라도 한국 요리도 야채를 활용한 요리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서 현지 야채도 샐러드 거리 아니고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나의 상하이 라이프였다.


버리는 줄 알고 봉지에 담은 줄기(왼) 상추마냥 먹으려고 씻어둔 이파리(오)


  격리를 하면서 총 4번의 구호품을 받았다. 그 중 두 번째가 야채꾸러미였다. 친숙한 상추와 많이 본 것 같긴 한데 알 수 없는 ‘야채’가 있었다. 야구 방망이 정도의 지름의 줄기에 상추를 닮은 이파리가 붙어 있어서 뿌리만 있었으면 마치 나무의 묘목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구호품으로 받아도 모르는 야채라 손질법도 모르고 귀찮아 버리는 분들도 더러 봤는데, 제한된 자원 안에서 오랜만에 만난 ‘새로움’이 반가워 알고 싶어졌다. 당연히 이파리를 먹는 거겠지 하고 다음 날 먹기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 이파리를 떼서 하나하나 곱게 씻었다. ‘못 먹는 줄기는 왜 이렇게 두꺼워, 물론 야채니까 줄기도 먹으면 먹겠지? 오늘은 첫 만남이니 우선 이파리만 샐러드로 먹어보자’하며 중얼 중얼 읊조리며 정성껏 씻었다. 향긋하면서도 고소한 야채의 향이 꽤 마음에 들었다. 손질을 마치고 이파리는 가지런히 정리하고 버릴 줄기는 따로 빼두고 하루를 마무리 하려던 찰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문을 구하고자 어렸을 때부터 중국에 살아온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야채의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게 먹어야 맛있게 먹는지 물었다. 친구의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줄기를 먹는 거야, 워순이라고 종종 먹어 봤을거야. 워순 무침” 아뿔싸, 반대였다. 서둘러 다시 주방으로 가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려 따로 빼둔 줄기를 다시 구해냈다. 다행히 그 날 음식물 쓰레기가 없어서 줄기 혼자 새 봉지에 덩그러니 들어 있던 상태라 줄기의 부활은 어렵지 않았다. 친구가 보내준 요리 영상을 보고 사전을 찾아가며 양념장과 순서를 공부했다. 생존 중국어 정도 실력인 나에게 사실 각종 양념장과 야채의 중문 이름은 매우 생소했다. 내 좁은 세계가 점점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모르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짜릿함을 느낀 밤이었다. 

내 인생 첫 워순 무치

  다음 날 워순의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딱 그 중간 밀도의 워순 줄기 알멩이를 채썰어 살짝 소금에 절였다가 식초와 간장 조금으로 버무렸다. 음식의 마지막엔 항상 깨든, 허브가루든 뿌리는 습관에 의거하여 나의 첫 워순 무침에는 통깨를 뿌렸다. 워순의 향이 은은하게 감돌고 부드러운 아삭한 식감이 먹는 행위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또 하나의 최고의 식사가 되었다. 


  알고 보니 워순이 한국에서는 ‘궁채’라는 이름으로 모닝글로리 또는 공심채처럼 이색적인 야채로 아는 분들 사이에선 꽤나 인기 있는 아이였다. 물론 한국에는 말린 워순만 구할 수 있고 고급 한정식 집에서 들깨궁채무침이라는 이름으로 반찬으로 나온다고 한다. SNS 계정에 워순을 올렸더니 중국에서 생활하다 한국으로 귀국한 분이 한국에서 그 맛을 찾기 못해 많이 그립다고 하는 댓글도 보았다. 그렇게 ‘희한하게 생긴 야채’는 격리기간동안 구호품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와 ‘워순’이라는 꽃이 되었다. 내 인생 사전에 등재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누군가에겐 친숙한 야채였을 것이다. 이미 워순은 세상에 존재했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존재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이 이 야채뿐이겠는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의 반경 안에서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사는 나의 오만함을 발견한다. 나이 드는 외모에 가꾸는 에너지만큼 마음에도 쏟아보자. 인생이 무기력하다고, 재미없다고, 심심하다고 말하기 전에 그 마음이 익숙한 안전지대 안에서 지내며 병든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보자. 새로움에 마음 한 켠 내어주는 데 주저하지 말자. 그렇게 나는 항상 ‘젊은이’, ‘청춘’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잠깐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아 몰랐던 많은 것들이 내 삶을 들어오고 있는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질문과 비판적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최대한으로 살고 있는 나, 그리고 함께 격리 라이프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도 선물 같은 하루가 되길 바라며. 집에서의 다섯 번 째 주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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