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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이 후후후 May 11. 2022

나의 봉쇄일지|제10화 오늘부터 1일, 관계의 시작

완벽한 타인이 '이웃'이 되는 그 짜릿한

나의 봉쇄일지




제10화 우리 오늘부터 1일


4주 차, 이웃의 재능기부로 탄생한 단지 이발소 (사진 찍기가 취미인 이웃이 촬영)






완벽한 타인이 '이웃'이 되는 그 짜릿한 순간


    

호랑이 기운 솟아난다며 '(어) 흥하세요'를 외치고 시작한 2022년.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코로나와 함께 우리의 봄이 순간 삭제, 순삭 되었다. 멀리 꽃놀이를 가거나 봄 내음 흠뻑 느낄 캠핑 한 번 가지 못하고 우리의 봄은 반경 500m 안으로 제한되었다. 봄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어느 때보다 ' 봄'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는 장면이 다채롭다. 흐드러지게 피는 봄꽃은 많이 보지 못했지만 또 다른, 예년과 다른 꽃의 피어남을 매일 마주 한다. 바로 이웃이라는 꽃이다. 언어는 생활의 거울이라 하던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쓰는 단어가 이웃이다. 물론 중국어로 말이다. 중국 생활 5년 만에 이웃을 의미하는 '邻居 [línjū]'라는 단어가 비로소 선명해졌다. HSK로 따지면 초급 정도인 3급에 속하는 단어로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고 쉬운 단어지만 사실 그간 나의 상하이 라이프에는 쓸 일이 없던 단어였기에 이번에 제대로 그 생김새와 병음을 알았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한다. 

邻居 [línjū]


 격리 7일 차, 나를 점점 불안하게 만든 건 줄어들 것 같지 않던 원두가 슬슬 바닥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생존력과 생활력으로 무장한 '우리'들이 이 상황에서 최상의 방법인 공동구매라는 새로운 구매 시스템을 이 땅에 구축해 나름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덜었지만, 초기에는 예상보다 길어진 격리 상황에 사전에 준비한 음식이 점점 떨어져 가는데 마트도 문을 닫고 배달도 안 되는 상황이라 모두 걱정이 많았다. '이웃'이라지만 그간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더라도 눈인사 살짝 주고받고 휴대폰 보거나 멍 때리기 바빴기에 같은 단지에 살아도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지금 이 순간을 지내고 있는지 모르는 대상은 그저 '타인' 일뿐이었고 내 속내나 어려움을 밝히기엔 쉽지 않은 대상이었다. 게다가 나에겐 필수품인 '원두'는 사실 보통은 기호품이지 않은가! '원두'에 대한 필요를 말하는 것이 이 시국에 상당히 도의적이지 않고 비인간적이며 철없고 개념 없는 행동인 것 같아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눈치 게임을 하는 사이 단지의 개척자들에 의해 유제품, 고기, 주식과 같은 생필품 분류로 공동구매 방이 생겼다. 구매 방이 생긴 이상, 용기를 내어 200명 남짓 있는 방에 물어보았다. 서툰 중국어에 용기를 담아.     


“你好  咖啡豆可以买吗?” 

-안녕하세요. 커피 원두를 살 수 있나요?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누르고는 해냈다는 뿌듯함과 아무도 대답 없을 민망한 상황에 대한 걱정이 순식간에 몸집을 키워 내 마음을 잠식하려 할 때, 갑자기 처음 보는 이가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我看你要咖啡豆”   - 커피 원두가 필요하군요.

“我家有多”         - 우리 집에 많이 있어요.

“可以给你救个急”   - 급한 대로 이거 쓰세요  

 

메시지 내용



예상치 못한 메시지에 나는 순간 정말 오랜만에 타인에 의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일상에선 너무 쉽게 주고받았던 타인과의 마음이나 교류, 그리고 그로 인해 따뜻하게 유지되거나 금방 식을지라도 화르르 뜨거워지곤 했던 마음의 온도가 지속되는 봉쇄로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금방 식어버리곤 했던 며칠이었다. 식어버린 마음을 다시 데우려 랜선으로 수다도 떨고, 미디어로 좋아하는 것도 골라 접하고, 평소 미뤄두었던 취미 생활도 해보지만 타인이 지피는 마음의 불꽃만큼의 힘을 발휘하는 건 없었다. 밖에서 많은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 걸 재차 확인하며 나의 사회생활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삶의 요소라고 소리 내어 중얼중얼 읊조리던 격리 3주 차에 만난 타인이 피운 마음의 불꽃이었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은 격리 6주 차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간 '외향'에 가려져 역량 발휘 못 하던 '내향'이 깨어나 점점 선택적 대면의 삶을 굉장히 즐기게 되었고 비로소 두 성향의 균형이 이루어진 듯하다. (그러나 건수만 생기면, 기회만 닿으면 외향이 비대해질 것이 뻔하다.) 아무튼 스스로 피어내는 불꽃과 타인과의 연결로 피어나는 불꽃은 확실히 분야가 다르다. 좋고 싫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중용과 균형의 예술이 필요하다. 


  다시 메시지로 돌아와서, 모르는 타자의 도움의 손길이 담긴 메시지를 받은 나는 온몸의 혈관에 뜨거운 무언가가 휙 하고 한 바퀴 크게 순환한 기분을 느꼈다. 그날 내 마음의 불씨를 키운 나의 이웃은 원두를 엘리베이터에 두었다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최적의 배송 방법으로 원두를 보내주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정말 오랜만에 누르는 엘리베이터 버튼이었고,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타인의 손길이었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한가운데에 종이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원두라 쓰고 마음이라 읽는다.


“우와~~~~~~~~~~~!!!” 



정말 소리를 질렀다. 종이가방을 집어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집 안 까지 세 걸음도 안 되는 곳을 껑충껑충 뛰어 들어왔다. 같이 사는 이는 그런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그게 그렇게 좋아?”하고 물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다시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신날 일이었나, 난 뭘 또 그렇게 호들갑이었나 싶지만 당시엔 너무 감동적이었다. 당분간 커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물론 있었지만 그냥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이 나고 즐겁고 감동적이었다. 종이가방과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불빛, 공기, 습도, 온도가 생생하다. 내가 받은 건 원두에 담긴 마음이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고소하고 짙은 향기를 숨을 크게 들이쉬어 두 코로 가득 품었다. 종이가방 안에서는 세게 볶은 원두들이 투명 비닐봉지에 담겨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 회로는 빠르게 회전하고, 나는 부랴부랴 집에 있는 가장 귀한 걸 꺼내 새로운 종이가방에 담았다. 바로 한국 라면과 한국 커피믹스 한 꾸러미였다. 다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문을 열고, 한가운데에 예쁘게 두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눌러보라고, 너무 고맙다고 그날의 나의 천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비닐 뚫고 향내 폴폴 풍기는 천사의 원두


가진 게 많다고 누구나 나눠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언제 이 생활이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같은 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손 내밀어 주는, 가진 걸 나눠 줄 수 있는 마음은 굉장히 거대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공동구매나 물품 구매가 그때처럼 어렵지 않지만 당시엔 언제 물건을 살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는 시기였다. 큰 마음이었고, 나도 그런 마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역이었다. 그렇게 한 건물에 살면서도 완벽한 타인이었던 우리는 비로소 '이웃'이 되었다. 그 후에도 그녀는 우리 동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나를 살갑게 챙겨주고 도와주고 있다. 그 후 같은 엘리베이터를 쓰는 가구끼리의 단체 채팅방이 개설되었는데 원두 이후에도 나는 주방세제나 계란처럼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것을 도움을 받았다. 또 그냥 주실까 봐 말하지 말아야지 하다 방법이 없어 구매하는 방법을 물어보면 ‘우리 집에 여분이 있어요. 쓰세요.’하며 보내주는 바람에 성은이 망극한 적이 잦았다. 그리고 나도 조금이라도 여분이 있거나 나눌 것이 있으면 나눴고, 공구가 활성화된 후에는 하나 살 거 두 개 사서 내려 보내고, 뭘 두고 가면 서로 알려주고, 치워주며 그렇게 우리는 비극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이 시기를 정말 따뜻하게 보내고 있다. 이 시기만 끝나 봐라, 내 한국의 정을 음식으로, 술로 표현하겠노라, 마음으로 매일 다짐 중이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온 세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서는 선택할 수 있기에



 비단 내가 살고 있는 곳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인의 아파트에는 “필요한 분 쓰세요”라는 이름으로 엘리베이터에 한아름 나눔터가 벌어졌고, 아파트마다 로비에 서로 필요하신 분 쓰세요 하는 코너가 생겨 공유하는 모습들이 사진으로 영상으로 많이 보였다. 어떤 분은 왕래가 없던 아랫집 이웃이 어린아이들은 잘 먹어야 한다며 고기를 올려 보내주어 받았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고 어떤 분은 이웃들이 직접 한 음식을 나눠주어 잘 먹었다고 미담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전해지는 영상 속 상하이는 너무 무섭고 잔인하다. 가짜 뉴스라고 할 수는 없다. 상하이라는 도시 어딘가에서 분명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도 있다. 개인의 서사를 들여다보면 겨울에도 피어나는 꽃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위기와 위험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계하고 불평하고 또는 공격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듯, 연결되고 함께하고 도울 때 행복함을 느끼는 것도 인간의 알고리즘이라 한 가지만 발현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서는 선택할 수 있기에 이 비극에서 나는 이웃이라는 꽃이 피어남을 보며 오늘도 꽃놀이를 하고 있다 기록하겠다.           




어느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나눔 공간 (출처: 위챗 모멘트) 



이젠 공동구매도 활성화되어 있고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물론, 특정 수를 채워야 구매가 가능한 경우에는 나와 같은 필요를 느끼는 이웃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담도 늘지만 갈등도 느는 것은 분명하다. 항상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적어도 내 주변의 이야기는 내가 만들 수 있다. 내 행동에 달렸다. 이렇게 매일매일 꽃처럼 아름다운 이웃의 향기를 맡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봄날을 살아간다. 불특정 다수였던 '그들'이 '이웃'이 되었다. 좋은 사람들 곁에서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면 곁에 더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순환. 좋은 동네를 만드는 건 결국 '좋은 사람들'. 위로의 최상 단계는 '도움'이 아닌 '함께 겪는 것'이라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함께 겪고 있음'이라는 최상의 위로를 선물하고 있다.  그리고 바라고 바라는 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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