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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이 후후후 May 16. 2022

나의 봉쇄일지|제12화 우리집에 찾아오는 유일한 손님

22년 S/S 새로운 배송방법: 언제 도착할지 모릅니다... 

나의 봉쇄일지




제12화 로켓 배송보다 더 좋은 배송



금요일에 주문한 시내 버거, 월요일 오후에 받았다.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하는 그런 은둔의 하루
오늘 또 무엇을 할지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오늘도 상하이에도 어김없이 해가 떴다. 공구 방은 여전히 바쁘다. 코스트코나 샘스 공구가 생긴 걸 보니 이제 대형마트도 슬슬 움직이나 보다. ‘곧 기다리는 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하며 조심스레 희망을 품는다. 



변태 같지만 계획이 흐트러질 때의 이상한 쾌감이 있다.


오늘도 여전히 내가 만드는 온전한 나의 하루다.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하는 그런 은둔의 하루. 오늘 또 무엇을 할지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최대한 화려하게 세운다. 그리고 몇 개는 지키고 몇 개는 지키지 않는다. 변태 같지만 계획이 흐트러질 때의 이상한 쾌감이 있다. 소심한 일탈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은둔의 시간 속에 허락된 유일한, 반가운 손님이 있다. 바로 구매한 물품의 도착이다. 온전한 나만의 하루에 유일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으니 와서 가져가라’는 메시지가 내 하루의 유일한 손님이라 참 반갑다. 

 

유일한 손님


 오늘은 지난주 구매한 물건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 공구는 대형마트에서 다양한 물건을 주문한 형태라 공구 기간과 배송을 합쳐 6일 정도 걸렸다. 주문하고 잊을 만하면 도착하는 공구 물품 덕분에 내가 사놓고도 뭔가 선물 받는 느낌이다. 도착했다는 소식이 오면 그렇게 반갑다. 누군가에 의해 내가 짜둔 계획이 틀어지는 짜릿한 순간이다. 계획을 이행하려 마음먹은 이에게는 분명 훼방꾼이지만,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은 이에게는 명분을 제공하는 반가운 손님이다. 짜증 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반갑다. 이 무슨 괴이한 마음인가 싶지만, 재미가 인생의 목표인 사람에게 별일 없이 할 일만 가득하여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서 허락된 유일한 외부 세계에 의한 이벤트라고 설명한다면 그 반가움이 조금은 납득될 수 있을까. 뭐, 납득이 되지 않아도 상관 없다.


2022년의 상하이


  오늘은 지난주에 공구한 시내 수제 버거 가게의 햄버거와 치킨이 왔다. 덕분에 저녁 준비는 면했다. 이 역시 계획한 저녁 메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오늘의 짜릿한 일탈이라 저녁 준비 해방으로 좋은 기분이 더 좋았다. 분홍색 종이가방 두 개가 성인 두 명을 이렇게 기쁘게 만들 줄이야. 작은 것에도 기뻐하게 만드는 이곳은 2022년의 상하이다. 로켓 배송도 아니고, 새벽 배송도 아니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랜덤 배송의 매력을 느끼는 이곳은 2022년의 상하이다. 잊을 만하면 도착하는 공구의 매력을 느끼는 이곳은 2022년의 상하이다. 도착하면 정 없는 메시지로 택배 번호 던져주는 편리한 시스템이 아닌, 퇀장이 직접 도착했다고 가져가라 연락을 주거나 엘리베이터에 살며시 밀어놓아 주는 이 아날로그의 매력을 느끼는 이곳은 2022년의 상하이다. 


 단지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삶에 대한 나의 ‘태도’다


  ‘봉쇄’라는 외부적인 요소로 많은 이들의 올해 계획에 크고 작은 차질이 생겼다. 계획된 대로 되지 않는 건 분명 ‘어려움’이 맞다. 어른들의 말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던데, 그렇다면 이건 인생의 정석이 아닌가. 나도 계획이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틀어졌다. 그런데 그래서 더 좋다. 그 변태 같은 마음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내 계획은 사실 내 제한된 정보와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외부 세계에 의해 뭔가 달라진다면 그것도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잘못 들어섰다고 생각한 길에서 생각지도 못한 장면과 경험을 만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여행이 즐거운 것 아닌가. 계획을 틀어지는 것이 화낼 일은 아니다. 단지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삶에 대한 나의 ‘태도’다. 어떤 가능성으로 이어질지 그냥 슬쩍 논리적이지 않은 기운에 내 삶을 맡겨본다. 사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크지만 그래도 맡겨본다. 적어도 이 순간 어떤 휘몰아치는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그 어떤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니까. 완벽한 개인의 시간에서 계획이 틀어지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듯, 살짝 틀어져도 괜찮은, 아니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을 ‘틀어짐의 미학’에 올해의 나를 맡겨본다.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모른다. ‘좋은 일만 생겨라’는 마술보다 ‘어떤 일이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은 일’이라는 마법이 더 좋다. 그냥, 적어도 걱정보다는 기대로, 염려보다는 설렘으로 맞이하는 내일은 오늘만큼 즐거울 테니까. 재미난 내일을 위하여. Manners Maketh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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