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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이 후후후 May 28. 2022

나의 봉쇄일지|제15화 김치10kg 받으면 생기는 일

김치천사 덕에 누리는 호사

나의 봉쇄일지




제15화 김치10kg 받으면 생기는 일



10kg 김치 오픈샷 




은둔의 시간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지만,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선택적 대면과 선택적 소통이라는 이름 아래 말이다. 물리적으로는 단절된 삶을 살고 있지만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선물로 시도 때도 없이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선택적으로 말이다. 돌이켜 보니 지금 이 시기에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이야 말로 내가 ‘선택해서 연락하는’ 마음에서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넘어 비대면으로 나마 얼굴을 보고, 메신저로 주고받는 메시지로 나마 마음을 전한다. 그 덕분에 단절된 삶 속에서도 외로움에 비쩍 마르지 않고, 마음을 말리지 않고 잘 사람답게 살고 있다. 그래서 더 감사한 요즘이다.



“김치를 보냈어요. 라면 먹을 때 함께 마음껏 드세요.”



  상하이라는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봉쇄 라이프’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지인들과 그렇게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다르지만 비슷한, 비슷하지만 다른 봉쇄의 하루를 나눈다. 그러다 이곳에서 많이 의지하고 좋아하는 분이 갑자기 ‘라면이 남아 있냐’고 물어보셨다. 지금은 동네가 다르면 뭘 서로 갖다 주거나 배달해주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누가 뭐가 없어도 동네가 다르면 갖다 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뭐가 없다 있다 얘기하는 게 서로 편하다. 괜히 없다고 하면 보내주실까 하는 생각 자체가 소용이 없다. 그래서 편히 솔직할 수 있다. 그래서 네, 몇 개 있어요 하고 대답했더니, 다음에 오는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김치를 보냈어요. 라면 먹을 때 함께 마음껏 드세요.” 라면이 화두가 아니라 김치였다.    



앞서 말했듯, 내가 살고 있는 단지는 한인이 없어 여럿이 함께 사야 성사되는 김치 공구는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비비고 만두는 공구가 꽤 성사가 되었지만 김치는 아예 마음을 접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청정원 맛김치 두 봉지가 마음의 안정을 위한 용도로 자리하고 있었고 절대 아주 비상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던 참이었다. 라면을 먹거나 밥을 먹을 때도 김치는 꺼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부부에게 김치는 정서를 위한 용으로 보관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즉, 식탁에 매번 올라오지 않아도 괜찮은 메뉴라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김치가 있으면 할 수 있는 요리의 범위가 넓어진다. 뭐든 김치를 넣고 볶거나 끓이면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된다. 그러나 봉쇄 한 달 이후부터는 간소한 식탁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냥 잊고 살았던 김치였다. 그런 김치를 곧 만나게 된다니, 사실 처음에는 김치보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이 상황에, 이 시국에, 덩어리 취급을 받아야만 받을 수 있는 택배가 아닌, 개인택배라니.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양을 선택할 수 없어서, 많이 보냈으니, 나누기도 하고 마음껏 드세요.” 천사의 메시지였다.


김치천사가 보내준 10kg 김치 한 박스

  

서너 시간 후, 택배 기사님의 전화를 받았고, 김치가 도착했으니 가져가라는 정겨운 중국어를 들었다. 전화를 받고 바로 나갔더니 공구 박스들 옆으로 한국어로 <의성 김치>라고 적힌 하얀 박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려 10kg였다. 내 인생 이렇게 많은 양의 김치는 처음이었다. 천사가 보낸 김치라며, 나는 이 김치를 보내준 나의 소중한 분에게 ‘김치 천사’라 닉네임을 붙여 드렸다. 김치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 사는 지인들에게 김치 보내기 활동이 있어서 내가 생각나 신청했다며, 배송비만 부담했다고 별 거 아니니 편히 받고 맛있게 먹으라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어떻게 그 마음을 형용할 수가 없었다. 벅차고 감사한 마음에 하나도 안 무겁다며 직접 번쩍 들어 몇 걸음을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고는 짝꿍에게 귀한 마음을 들 수 있는 기회를 넘겼다. (^^) 김치 10kg는 상당했다. 집에 와서 박스를 열었다. 봉지에 꽁꽁 쌓인 김치의 붉은빛이 황홀했다. 얼마 만에 만나는 김치냐, 그리고 이 무슨 분에 넘치는 마음이냐, 바로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김치와 김치에 담긴 그 마음을 카메라에 담아 영구 보관하고 인증샷과 함께 ‘감사’라는 말로는 부족해서 다른 단어를 찾다가, 결국 실패하고 ‘감사하다’는 글자에 감사를 담아 보냈다.  



차곡차곡 통에 들어가는 중




   집에 있는 통이란 통은 다 모았다. 통마다 안쪽을 랩으로 한 번 싸고 김치를 한 포기씩 꺼내 썰고 차곡차곡 담았다. 이번 봉쇄 라이프로 처음 해본 일이 참 많은데, 이 김치 10kg 정리도 봉쇄 첫 경험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여유분의 통이 없고, 또 과연 누가 원할 것인가, 싶어 그냥 우리나 먹고 말까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받은 마음이 너무 크고 김치도 많았다. 그리하여 나는 용기를 내어 아파트 같은 동 단체 챗에 메시지를 올렸다. “친구가 김치를 많이 보내줬어요. 드시고 싶은 분 계신가요? 우리 집에 통이 없어요. 드시고 싶은 분은 통을 주시면 제가 담아드릴게요.” 그런데 갑자기 단체방에는 ‘김치 주세요.’라는 말 대신 각종 한국음식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국음식을 먹어 보신 이웃들이 인증샷을 보내며 추억 먹방 잔치가 된 것이다. 각자 사진첩에 고이 저장해둔 한국식당에서의 추억을 풀기 시작했다. 와, 생각보다 한국음식을 많이 드셔 보셨구나. 그리고 사진도 많이 찍어두셨구나. 그렇게 한국음식을 주제로 사담이 오고 갔다.    



#한국음식 주제 인증샷 잔치



그리고 두 집에서 연락이 왔고 통 두 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다른 분들은 식당에서는 먹어봤지만 스스로는 어떻게 먹을지 모르겠다며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고맙다고 했다. 올라온 통에 김치 냄새가 조금이라도 덜 배어 다음에 다시 통을 쓰실 수 있게 랩을 단단히 깔고 가득 김치를 담았다. 김치를 받은 두 이웃은 고맙다며 메시지와 이모티콘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한 집은 벨기에에서 온 이웃인데 상하이에 오기 전, 한국에서 8년을 근무했다며 하나뿐인 딸이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서 김치를 무척 좋아한다고 방금 받은 김치를 먹으며 엄지를 치켜올린 따끈따끈한 인증샷을 보내주었다. 서래마을에서 8년이 생각난다고 고맙다고 했다. 다른 한 집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을 때,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자주 한국 식당에 갔었다고 김치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난다고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그렇게 10kg의 김치는 우리 집 냉장고에 한가득, 그리고 김치에 추억을 갖고 있는 비한국인들의 냉장고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상하이 어느 동네의 어느 날 밤은 김치 향과 맛만큼 이 진하고 깊은 이야기로 물들었다. 나비효과처럼 한 천사의 날갯짓이 또 다른 이를 김치 천사로 만들어 봉쇄로 인해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일을, 그로 인한 추억을 선물하게 했다. 김치 천사의 마음을 오래오래 기억할 거다. 그리고 나도 배운대로 받은대로 누군가의 천사가 되리,,,  



이웃에게 가는 김치 중 하나





김치천사 덕분에 

 요즘 우리 집은 매 끼니마다   

김치를 아끼지 않고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하트) 사랑해요 김치천사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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