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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이 후후후 Jun 04. 2022

나의 봉쇄일지|제17화 해제 후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6월 1일, 상하이 해방의 날: 상하이 대환장 파티 



나의 봉쇄일지





제17화 해제 후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봉쇄 해제 후, 약속이나 한 듯 와이탄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출처: 인터넷)



6월 1일, 00시를 기점으로 두 달간 ‘납치’ 당했던 상하이는 인민에게 돌아왔다. 00시가 땡 하자마자 와이탄으로, 시내로, 아무튼 단지 밖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장관이 펼쳐졌다. 그간 입구를 막아뒀던 펜스나 나무판자를 뜯어내는 행사(?)를 펼치며 손뼉 치는 단지도 있었다. 5월 31일 밤에는 이곳저곳에서 폭죽 소리가 들렸다. 춘절과 정월대보름에 폭죽을 터트리는 풍속이 있는 곳이라, 도심지역은 법적으로 불가하지만 외곽지역은 가능해서 멀리서 들리는 폭죽 소리를 듣고 명절에 남은 폭죽을 해제에 맞춰 터트리는구나 했다. (지금 폭죽을 구매하긴 물류가 마땅치 않으니) 현지 네티즌들은 봉쇄 기간이 마치 외지인들이 대부분 고향으로 가서 조용한 도시의 모습과 닮았다고 춘절이냐며 냉소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폭죽을 터트리나 보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평소처럼 잠자리에 든 나는 다음 날 인터넷에 올라오는 다양한 영상과 사진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람으로 가득 찬 와이탄, 그동안 텅 비어있던 도로에 줄 지어 이동하는 차량들, 도대체 우리가 지난 두 달 동안 무엇 때문에 봉쇄를 한 건지, 그냥 사회 실험을 위해 닫아두었던 건지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보통 방역이 완화되는 과정에서 그 정도가 차츰차츰 진행되어 단계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상하이의 6월 1일은 정말 갑자기 상하이를 옭아매던 모든 것이 마법처럼 전부 없어진 마냥 모두의 고삐가 풀린 마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정말 겉으로 봐서는 완벽한 일상의 하루처럼 보였다. 식당과 상점이 문을 열었고 자급자족에 지친 사람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매장 내 취식이 안 되는 곳도 많았지만 되는 곳도 많아서 누군가가 6월 1일 상하이 어느 곳의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상하이 같아 보였다. 그간 나들이에 목말랐던 사람들은 공원으로 강변으로 소풍을 떠났다. 강변공원으로 유명한 시탄 또는 West Bund라 물리는 와이탄의 서남쪽 공원의 잔디밭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6월 1일 중국의 어린이 날을 맞아 단지 내 엄마들이 준비한 단지 놀이터 어린이날 행사도 봉쇄 해제와 함께 취소되고, 모처럼 단지 놀이터가 조용했다. 모두 아이들을 데리고 더 좋은 곳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해제는 정말 기뻤지만, 내가 느낀 감정의 더 큰 부분은 ‘행복’이 아닌 ‘배신감’이었다.   


West Bund에서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 거리두기고 뭐고 전혀 없다. (출처: 위챗)


   

  인터넷으로 전해지는 도심 곳곳과 상하이 랜드마크의 모습을 보며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행정적으로 해제는 됐지만, 나가 노는 걸 몹시 좋아하는 나지만, 방역이 완화되긴 했어도 개인 방역은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감기 같은 코로나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확진자가 되었을 때 어떤 상황을 맞이할까 가 걱정이었고, 나로 인해 내가 속한 공동체에 피해가 갈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차근차근을 말하기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지쳤고 힘들었던 걸까. 우리는 그럴 수 있지만, 정말 거리두기 하나 없는 방역이 그간의 정책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72시간 이내의 pcr 검사가 있어야 쇼핑몰이나 상점 등 입장이 가능하고, 확진자가 나와 다시 단지 봉쇄에 들어간 동네의 소식도 들리고, 친구네 동네도 양성자가 나왔다고 자정에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서 pcr 전수조사를 시키는 등 여전히 긴장을 놓지 않고 있는 부분도 보이지만 사진과 영상 속 모습은 거리두기도 전혀 없고, 인구밀도도 상당했고 한데 모여 먹고 마시는데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심지어 확진자로 인해 자정에 pcr 전수 조사를 받은 동네에서 500m 떨어진 곳에서는 밤새 길에서 서양인 동양인 어우러져 술 파티가 열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기도 하다. 푸토우취의 한 pcr 검사소는 주민들이 더 이상 pcr 검사 그만하라며 검사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인민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진행한 이 무리한 정책의 결과가 6월 1일을 기점으로 상하이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다.   


손님들이 가득 채운 한인타운의 야외석 (출처: 지인)


  

분명히 밝히건대 나는 ‘해제’가 싫은 게 아니다. 오해 없길 바란다. ‘해제’는 정말 반갑고 행복하다. 그러나 깁스를 풀자마자 갑자기 달리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와! 저 사람 회복 속도가 놀랍다!’ 이거나 ‘뭐야, 그동안 가짜 깁스였던 거 아냐?’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내가 느낀 배신감은 후자에 무게가 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제로 코로나가 성공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고 이 봉쇄가 별 의미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하루빨리 정부에서 오미크론에 대해 파악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인민의 상태를 헤아려 방향을 바꾸길 바라 왔다. 그리하여 이 나라의 정치판에서도 경제를 우선시하는 총리와 그 파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리하여 이런 해제의 결정이 난 것에 대해서는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문은 열렸지만 이 찝찝함과 찜찜함은 어찌할 수가 없다. 왜 일이 힘들어도 보람되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일이 마친 후에 뿌듯함이 들지 않는가? 6월 1일 해제의 그 강도는 그동안 우리가 한 폐쇄의 시기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이 상황이 우스워 들떠지지 않았고 이런 멍청한 정책에 동요하지 않고 내 갈길 가겠다며 나는 전과 같은 하루를 보냈다.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해야 해서 했지만 그래도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고 발버둥 친 만큼 이번 해제로 인한 일상의 첫날인 6월 1일은 단계적 회복과는 분명히 거리가 멀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의 모습이 당황스럽다가, 황당하다가, 배신감마저 들었다. 도대체 그동안 뭐 때문에 그 난리 브루스를 춘 걸까?   



        

 나는 그 음악에 춤을 추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영업을 재개한 우리동네 마트,, 마트를 보고 편안함을 느낄 줄이야 
문전성시 미용실 바쁘다 바뻐 (왼), 남이 말아준 칵테일 한 잔, 동네 바가 문을 열었다 당분간은 동네 라이프 위주로(오)



6월 1일. 나는 4월, 5월과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집에서 일을 했고 퇴근 후 전날과 같은 코스로 산책을 했다. 아파트마다 매일 실시했던 pcr 검사도 이제는 거점지역으로 원하는 사람만 실시하면 되는데, 출근해야 하거나 놀러 갈 사람들은 pcr 72시간 또는 24시간이 필요했다. 산책 코스에도 거점 pcr 검사소가 있었는데 그 줄이 상당히 길었다. 저런 바보 같은 정책에 끌려가면서까지 놀러 가고 싶지 않았고, 저런 정책에 동조하지 않겠다며, 길게 늘어선 pcr 줄을 지나쳐 가며 우리는 산책을 계속했다. 우리 동네에는 산책 코스 중간에 있는 상점 밀집지역 외에는 작은 마트 하나, 편의점 하나 있는 게 전부라 처음 산책을 하며 내가 느낀 변화는 좋아했던 마트가 영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괜히 들어가 구경을 하고 마실 것을 샀다. 오랜만에 알리페이를 열어 바코드 기계에 갖다 댔다. 해제의 혜택을 누렸다. 그리고 동네 바에서 짝꿍은 생맥, 나는 칵테일 한 잔을 했다. 동네여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봉쇄 전 나의 생활은 집과 직장, 그리고 시내 이곳저곳이어서 동네는 잘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춤추지 않겠다'는 건 풀어줬다고 신나서 예전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돈 쓰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분간은 동네 라이프로 살아가겠노라. 그리고 산책 중간 지점인 상업구역에 도착했을 때 어제처럼 사람이 많았다. 우리 동네는 동네 안에서는 제한이 풀린지는 몇 주가 되어 이 구간에는 우리처럼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꽤 북적였다. 다만, 영업을 하는 가게는 없었다. 모두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직접 가져온 맥주와 안주거리를 즐길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상점들이 영업을 시작했다. 물론 야외석인 테라스 좌석에서만 손님을 받았다. 어제보다 더 활기가 넘쳤다. 와인잔을 부딪치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부부, 친구들과 함께 킥보드를 타며 즐거워하는 꼬마들,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생맥주와 요리사가 해준 음식을 곁들여 회포를 푸는 부부동반 모임들, 활기가 넘쳤다. 보기 좋았다. 그러나 이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했다. 이미 두 달의 시간 동안 각자 지내는 삶에 또 적응해버린 나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또 배신감을 느끼면 뭐하나, 그냥 또 이에 맞게 살고 즐기면 되지 싶지만 인간의 존엄을 해친 정책에 그렇게 협조적이고 싶지 않은 일말의 ‘개김’이다. 이렇게라도 나는 나의 존엄을 잠깐이나마 지켜보련다. 분명 나는 또다시 이 분위기에 적응할 것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을 만나고 나가 즐길 것이고 상하이는 더욱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또 한 번 이 정부가 미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반드시 회복해야 하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이 황당한 기분은 잊지 말자며 나의 봉쇄 기간의 위로가 된 <나의 봉쇄일지>의 후반부의 이야기로 기록한다.   


이 아름다운 도시 상하이가 다시는 납치되는 일이 없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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