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 May 03. 2023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책 읽기 프로젝트 50 #44

고정관념은 존재한다. 내가 부산 사람이라는 걸 아는 타지역 친구들은 부산 사람이니 수영을 잘할 거라거나, 회를 안 좋아하는 게 말이 안 된다거나, 부산 사람이라 역시 과묵하다고 이야기한다. 별로 공감할 만한 이야기는 없다. 그중에 반가운 말이 있다면 “롯데 팬이겠네” 정도랄까.


그렇다. 나는 *지금 9연승 중인* 롯데 자이언츠 팬이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야구를 보러 다닌 정도의 팬은 아니고,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사직 앞에 가서 5회가 지나면 잠시 야구장에 들어가 보고 했던 정도였다. 중학교 때는 야구부가 있는 학교였고, 한국을 떠나면서는 야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베이징 올림픽이 있던 그해까지.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고, 국가대표팀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자, 부산은 다시 야구로 들썩였다.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 있으면서 동생과 친구들과 열심히 야구를 보러 다녔다. 다시 중국에 돌아가서도 종종 야구를 챙겨보았다. 특히 준플레이오프에 나갔던 때는 한화 팬이었던 선배와 모여서 함께 생중계를 보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내 최애 선수를 꼽으라면 당연히, 무조건 이대호 선수다.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처럼 국가대표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기도 했던 이대호 선수가 작년 은퇴를 했다. 은퇴를 예고하고 시작한 시즌은 그 전 몇 년보다 더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내가 최고일 때, 모두가 박수칠 때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 같았다. 이대호 선수의 엄청난 활약에 팬들은 환호하고 은퇴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어느 날 등장한 응원 문구를 보고 방송사도, 해설위원들도, 팬들도 모두 공감했다.


이대호 은퇴하지 '마요'


특히 시즌 막바지 한 달 동안 만루홈런을 세 개나 몰아치면서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 주기도 했다.


사족이 길었다. 이대호 선수의 에세이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가 출간되고 바로 읽었다.



돌아보면 야구 선수가 되기까지 수많은 우연과 호의가 있었다. p.35


프롤로그에서 이대호 선수가 이야기하듯 이 책은 고마움을 표현한 책이다. 자기를 야구의 길로 이끌어 준 친구부터 할머니와 가족들의 지지, 어려운 형편에도 야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감독님들, 선수 생활을 함께한 동료들, 결혼 생활 내내 선수 생활을 응원해 주고 가정에서 빈자리를 채워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응원해 준 팬들에게 애정을 가득 담아 감사 편지를 보낸다.


목차만 보아도 이대호 선수의 선수 생활이 한눈에 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으로 전학을 온 추신수 선수의 손에 이끌려 야구부에 들어가게 된 이대호 선수는 큰 덩치와 힘으로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다. 시장에서 된장 콩잎을 파시던 할머님은 야구를 하고 싶다는 손자의 말에 이대호 선수의 삼촌들과 상의해 지원해 주기로 하셨다. 어려운 형편에 일찍 철이 든 이대호 선수는 실력이 좋아야 야구를 계속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비를 면제해 주겠다는 중학교 감독님 집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야구를 계속하기도 했다.


생각은 곧 내게 ‘절실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누군가는 주어진 환경에 낙담하고 쓰러지지만, 누군가는 그 환경을 거름으로 삼아 새로운 싹을 틔워낸다. 고된 일상이 역설적으로 나를 더 일으켜 세웠다. 주어진 조건이 나를 짓밟으려 할수록 나는 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실력으로 나를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P.55


경남고 에이스로 고향 팀이자 자신이 가고 싶었던 롯데 자이언츠에 2차 1라운드로 지명이 되었다. 투수로 입단했지만, 어깨에 문제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타석에 설 기회가 있었고, 그 모습을 본 감독이 타자로 전향하기를 권유했다. 그것이 ‘조선의 4번 타자’의 시작이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상으로 한참을 뛰지 못하고 그라운드를 떠나있는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돌아와서 롯데 자이언츠의 간판타자가 되었다.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든 마음먹은 대로 받아들일 수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 쿵 하고 머릿속에 내려앉았다. 어떤 일이든 관점만 조금 바꾸면 한 가지 경험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107


팀은 부진했지만 2006년 이대호는 타율, 홈런, 타점 부문을 석권하며 22년 만에 타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2008년부터 시작된 로이스터 감독의 노 피어(No Fear)야구의 중심에서 4년 연속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2011년 시즌이 끝나고 이대호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롯데에서 100억 원을 제시했지만, 일본에 진출하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최전성기에 일본에서 4년을 보낸 그는 일본 시리즈에 두 번 우승했고, 마지막 해에는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있던 팀에서는 더 남아주기를 바랐지만, 이대호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선택을 했다. 일본에서 약속하는 아주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연봉은 물론 주전선수 자리도 보장되지 않는 그곳으로.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할 때는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된다. 안전한 장소, 안전한 커리어, 안전한 환경에 안주하며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소극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세상, 더 큰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P.171


다시 한번 절실함을 크게 느낀 이대호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로 다시 돌아왔다. 우승하겠다는 꿈과 함께. 물론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야구장에서 배운 가장 큰 가치는 ‘겸허함’일지도 모른다. 최고를 꿈꾸지만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이룰 수는 없다는 것,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다는 것, 무엇보다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을 이 시기에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P.245


2022년 은퇴하는 선수의 성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록으로 전국 구단을 돌며 은퇴 투어를 마쳤다. 사직구장에서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을 하며 20여 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대호 선수는 “2022년 가을부터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면서, 부산의 덩치 크고 목소리 큰 극성 야구팬인 인간 이대호로서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고 말한다.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나의 영웅의 새로운 시작을 더욱 응원하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치 (The Beac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