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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때문에 이민갈 수 있을까
by 리몌 Jun 06. 2018

아이를 위해 호주로 -1

아이를 위해 호주로 이민해야 하는 이유들

아이를 위해 호주로 이민해야만 하는 이유들


여느 날처럼 북적거리는 출근길이었다.


아침 운동 탓에 조금 일찍 길을 나섰더니 오히려 학생들의 등교시간과 겹쳐 기차와 트램 정거장은 평소보다 붐볐다. 트램이 오기까지 3분. 스케줄 전광판을 보며, 도착한 순서대로 나는 도로 쪽 가장 앞줄에 서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3분이야 3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왼쪽 아래에 내 허리만큼이나 오려나 싶은 어린아이가 초등학교 교복을 입고 기다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조용히 해"

곧 북적이는 정류장, 바로 내 뒤에선 아이 아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2분. 2분. 아아아아아아아아~"

아빠 말을 듣지 않고, 다시 트램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한 아이가 조금 더 높은 톤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니까 그러려니 하며 내려봤는데 뽀얀 피부가 귀여운 남자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 머쓱하게 웃었다. 귀여운 표정에 따라 웃게 됐다.

곧 트램이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듯, 도로 한복판으로 지나다니는 트램을 위해 차들이 속도를 낮추어 섰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도록 트램 길이만 한 공간을 만들었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트램 문 양쪽으로 다시 길을 만들었고, 그 사이로 한 무리의 사람이 내렸다.

제일 앞줄에 있던 나는 사람들이 다 내린 것을 확인하고 트램으로 올라타려는데, 조금 이상한 기운에 멈칫하고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곧 거기 선 사람들 모두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까 그 소리 지르던 아이와 아빠가 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제대로 본 아이 아버지는 몸이 조금 불편해 보였고, 보조기구 없이는 잘 걷지 못했다.

아이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아이를 먼저 트램에 태웠고, 그들이 적당한 자리를 잡아 앉을 때까지 어느 누구도 재촉하거나 앞서는 사람 없이 기다렸다. 놀랍도록 차분하고 질서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트램에 곧 올라탔고 1, 2분 안에 그 많던 사람들은 트램을 차곡차곡 메웠다.

8시 20분경. 하루 중 가장 바쁜 출근 시간의 일이다.


배려가 넘치는 나라다.

휠체어나 목발을 쓰기 편하도록 공공시설은 물론 가정집에도 문턱이 있는 걸 보기가 힘들다. 길거리에 노숙자 조차도 복지 혜택의 사각에 놓이지 않았기에, 20대 젊은이가 노숙을 선택했다고 해도 최저 생활비를 받을 수 있으며 앞선 두 편에 글에서 언급했듯, 출산과 워킹맘에 대한 복지도 물론 잊지 않았다. 가족 중 누군가 장애가 있다고 해도 생계가 막막해지지 않고, 큰 병 앞에 수술과 병원비로 가세가 기울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가능한 그 누구도 궁지에 몰려 막막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낮은 곳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 놓은 게 참 안심이 된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호주에 대한 인상은 그랬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자식을 낳게 된다고 해도 그들이 살아갈 내내 가파른 모퉁이에 떠밀려 날 선 느낌이 들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이따금씩 하게 된다. 내가 자식을 위해 호주 이민을 택하게 된다면 이런 사회 분위기와 보장이 가장 첫 번째 이유겠지.




그리고 두 번째는 법의 울타리 안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나라라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아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벌금과 처벌이 정말 엄청나게 세다. 그리고 이런 엄격한 법이 비교적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다.

공대 출신답게 항상 수치로 봐야 마음이 편한데, 한 가지 예로 들고 싶은 게 바로 법치주의 지수 (ROL, Rule Of Law)라는 것이다. 각 나라별로 청렴도, 정부의 개방 정도, 민사 형사 법 제도 등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데, 호주는 소득과 법치주의 지수에서 2017년 113개국 중 10위로 캐나다와 북유럽 국가들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한국도 20위로 결코 낮은 점수는 아니지만, 등수가 조금씩 떨어지는 한국에 비해 호주는 해를 거듭할수록 좋은 점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법의 테두리가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단단해진다.
한 예로 12살 이하의 어린이를 혼자 두면 불법이다. 등하교는 물론이고, 아이를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것도 사실상 아동 학대에 해당된다. 신고당하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까지 실형에 처할 수 있는데, 워낙 확고한 법안이다 보니 회사에서 업무시간 중에 "아이 데리러 간다"며 빠져나가는 걸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단한 법의 기반 위에 서 있고, 이 울타리 안에만 있다면 신경 쓸 부분이 거의 없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부터도 한국에서는 곧잘 남의 시선을 의식하곤 했었는데, 호주는 그런 시선이 훨씬 가벼워 좋다.

 

호주는 유행이란 게 거의 없어 무슨 옷을 입든 무슨 가방을 들든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패션은 언제나 중구난방이고, 그 누구도 서로의 패션에 지적하지 않는 편이다. 그 자유로움이 어느 정도냐 하면 한 겨울은 멜버른도 꽤 쌀쌀한 편이어서 두꺼운 파카를 입고 다니는데, 맨발로 명동 같은 시내를 쏘다녀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가 없다.

실제로 재작년쯤 8월에는 20대로 보이는 호주인 한분이 시내 거리에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했다. 소복하게 팔에 내려앉은 닭살이 그녀가 느끼는 추위를 짐작케 했지만, 길 끝에서 등장하면서부터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그녀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태연한 척을 했고, 그 누구도 그녀의 일탈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반면 한국은 남녀 할 것 없이 인형처럼 예쁘고 단정한 사람이 많고 그만큼, 옷 입는 것, 화장하는 것, 신발 할 것 없이 서로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한 번은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자 마자, 눈치 없는 남자 선배 하나가 내 블라우스를 가리키며

"어! 이 패턴! 작년에 정말 유행한 건데!" 했다.

동시에 엘리베이터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 옷으로 쏠린 건 당연했다. 거기에 한번 더 눈치 없이

"아, 이래서 여자들은 매년 옷을 사야 하나 봐. 난 여자 친구 옷 산다고 구박만 했는데, 바로 티가 나네" 하는 순간, 난 세상 가장 구질구질한 옷을 입은 기분으로 변해버렸었다.

바로 작년에 사 몇번 입지도 않은 새 옷이었는데.


남자 친구가 없던 시절에는 남자 안 만나냐는 질문,

남자 친구가 생기자 언제 결혼하냐는 질문,

결혼 날짜를 잡으니 아기는 언제 가지냐는 질문,

첫째를 낳으니 둘째는 언제 낳냐, 텀이 길지 않아야 좋다는 질문.

항상 보이지 않는 진로와 외모의 규격 같은 게 정해져 있고, 여기서 벗어날라 치면 부담이 되어 목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반면 호주의 경우 확실히 지켜야만 하는 규칙들이 법이란 이름으로 분명하고, 이 테두리 안에만 머무른다면 다른 건 얼마든 어떤 형태로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다.

유난히 남의 시선에 신경 쓰던 내가 미래의 내 아이에게 가장 선물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점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안개가 자욱해 조금 쌀쌀했던 지난 주말, 집 근처 코필드 공원 (Caufield Park)에서는 총 6개의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축구와 호주인들이 즐기는 크리켓 경기였는데, 자세히 보니 공을 쫓아 우르르 거리는 게 귀여운 꼬마들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팀까지 각양각색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6개의 축구 경기가 한 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공원이 지역마다 수도 없이 있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친구들과 마음껏 뛰논다. 강아지를 목줄로 멜 필요도 없다. 그냥 공원 끝에서 끝까지 뛰놀며 뒹굴고 장난을 친다.


집집마다 조금씩 여유를 둔 정원에서는 방방, 봉봉으로 불렸던 트램펄린을 설치해 두고, 하교 후 오후 시간에는 깔깔거리며 친구들끼리 서로의 집을 방문해 시간을 보낸다.

골목마다 주말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난 주말만 해도 아침나절부터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오후 무렵까지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한둘과 어린 꼬마 두어 명 그리고 술레가 되어 쫓는 아이들까지. 금세 모여들어 우리 강아지가 몇 개월이냐, 이름이 뭐냐 조잘거리며 이뻐하더니, 또 금세 "우리는 노는 중이었어. 미안" 하며 쫓아온 술레에게서 도망가며 잡기 놀이를 이어간다. 숙제나 학원 같은 압박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국에 있을 당시, 한 번은 방송에서 "왜 놀이터에서 안 놀아?"하는 기자의 질문에 "놀이터에 가면 친구가 없어서 혼자 놀아야 해요" 했던 아이의 인터뷰를 봤고, 너무 오래 가슴 아팠었다. 친구들을 만나려면 학원을 가야만 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말 "유기농"처럼 자유롭게 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지 내내 겁이나기만 했었다.


콜스나 울월스같은 대형 슈퍼마켓에는 마트에 따라나선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과일이 준비되어 있다.



여기까지 한국에서는 누리기 힘든 호주의 장점들로 내가 이민 온 이유이자, 누군가 이민을 고민할 때 긍정적으로 작용할 사항들을 나열해 보았다.  

호주는 정말 좋은 나라다. 내가 만난 호주에 사는 이민자들 대부분은 조금 심심한 것을 빼면, 호주를 좋아했다. 북적이고 바쁘지만 그만큼 매력 넘치고 다이내믹한 한국에 비하면 호주는 당연히 심심하지만, 그 부족함을 아이나 가족이 채워준다면 호주는 빈틈없이 행복하기에 참 좋은 곳이란 확신이 든다.

영주권을 받기 전 한동안 혼자 그리고, 탈고하지 못했던 웹툰의 제목은 "나는 멜버른을 짝사랑해요"였다.

짝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애정.


하지만 이 곳에 살면서 호주의 어두운 부분도 분명히 실감해 나가고 있다.

다른 기대와 가치관으로 내 아이와 살 곳을 고민한다면 절대 호주로는 이민 오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분명 있기에,  다음 글에서 이런 주제들을 조금 다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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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아이 때문에 이민갈 수 있을까
소속 직업매니저
쓰고 그리는 걸 사랑하는 엔지니어예요. 23살부터 7년동안 삼성을 거쳐, 지금은 호주 멜버른에 살고 있지요. 20대의 모난 나에게 해주고 싶은 따뜻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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