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리몌 Jul 05. 2018

강아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개가 행복한 나라 - 호주

나는 "두부"라고 이름 지은 몰티즈와 시츄 교배종을 키우기 시작한 지 고작 여덟 달 된 초보 보호자다. 우리 두부는 겨우 열 달을 조금 넘긴 말괄량이인데 두부가 태어난 날이 남편과 내가 연애를 시작한 기념일과 같아서, 첫눈에 의미부여를 팍팍해버렸다. 우린 어쩔 수 없는 애정관계이다.



사실 난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어릴 땐 왜 그렇게 골목길에 길 강아지들이 많아 던 지, 하굣길에 녀석들을 마주하면 언니와 나는 아예 그 골목을 포기하고 빙 둘러 하교하는 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단순히 어려서 그랬던 건 아닌 듯싶다. 퇴사를 하고 언니와 여행길에 나섰을 때, 그리스에서 만난 강아지들 때문에 하마터면 우리 자매애의 얕기를 확인할 뻔했었다.

다음날 아침 배를 타고 Kos 섬으로 넘어가기로 하면서, 호텔 로비에서 몇 번이고 맞는 항구와 배 시간을 확인해두었다. 걸어서 15분이란 말에 가서 아침도 좀 사 먹을 겸 넉넉히 시간을 두고 나섰더니, 아직 매표소가 문을 열기도 전에 우린 항구에 도착해버렸다. 여유롭게 브런치도 좀 시키고 바닷가를 배경으로 사진도 좀 찍고. 한껏 기분이 좋았는데, 음식이 나오기 직전 매표소가 문을 열어 확인했더니 직원은 우리 배가 그 항구에서 출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왘!

아직 먹기 시작하지도 못한 브런치들을 포장해,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멀리 있는 다른 항구를 향해 갔다. 빡빡한 차들의 숲을 지나,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배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제야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다.

인터넷으로 구매했던 티켓을 바꿔야 했기에 다시 한번 매표소에 줄을 섰는데, 짐짓 내 주변으로 허리만큼 오는 개 두세 마리가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아까워 포장해 온 토스트 냄새가 솔솔 퍼져나간 모양이다.

"언니야 우야노! 얘들 음식 냄새 맞고 다 모여들었다! 이거 버릴까?"

하고 다급하게 돌아봤는데, 심지어 음식도 들고 있지 않던 우리 언니는 이미 저만치 도망간 뒤였다. 웃프지만 난 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좀 놀리긴 했다.)
그렇게 우린 요란하게 강아지를 무서워했고, 강아지와 특별한 접점도 없었다.



그러던 내가 강아지를 키우기로 마음먹은 건, 호주가 강아지 특화된 나라라는 점도 컸고, 집과 생활이 안정되자 뜬금없이 샘솟았던 "연약한 것들을 보살피고 싶다"는 충동 때문이었다.


나라마다 강아지를 대하는 모습은 정말 진짜 정말 다르다.


UAE에 사는 1년 반 동안 난 단 한 마리의 강아지도 보지 못했다. 아랍권 나라들 중 일부에서는 강아지를 몹시 싫어한다고 했다. 보이면 총으로 쏴 죽인다는 소문도 있었다. 다양한 이유들 역시 풍문으로 떠돌았는데, 이슬람의 정신적 지주였던 누군가가 적을 피해 숨어 지내다 개 짖는 소리에 발각됐다는 얘기도 있었고 코란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강아지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Trinidad & Tobago는 더했다. 인도와 아프리카 출신의 덩치 좋은 주민들이 모여사는 이 자그마한 섬나라는 그들의 큰 키와 덩치에서 풍기는 압도적인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아주 작고, 연약한 것들을 썩 좋아했다.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집들이 그랬고, 엄지만 한 컵케이크도 그곳에서 처음 봤던 것 같다.

(사진들은 무려 싸이월드를 뒤져서 찾았다. )

그곳에서 강아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적이었다. 이 작고 귀여운 것만 좋아하는 장신의 체격 큰 사람들은 강아지들이 새끼를 낳고 나면 키우던 어미를 버리고, 새끼만을 키우는 이상한 문화가 있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두세 살 남짓의 어린 강아지들은 평생 사람 손에서 먹고 씻고 자고.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생존"의 문제에 출산 직후 준비 없이 갑자기 내던져진 것이다. 하루아침에 아이도 가족도 잃은 어미와 아비들은 무리 지어 눈을 번뜩이며 자신들을 길바닥으로 내버린 사람들을 공격했다. 그곳에서는 골목 끝에 있는 편의점에 갈 때 조차도 효자손 같이 생긴 막대를 손에 들어야만 했다. 실제로 개에게 공격당한 친구들이 이따금씩 생겨났다.


반면 호주는 강아지가 살기에 정말 좋은 나라다. 대형견을 선호해서 소형견을 찾기 어려웠을 만큼, 영화에서 보던 골든 레트리버나 101마리 강아지에 나왔던 달마티안을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큰 공원은 목줄 없이 강아지를 산책시킬 수 있는데, 이 곳에선 사람들의 이해심도 엄청나다. 아기와 함께 피크닉 중인 곳 위로 강아지가 뛰어들어도 화를 내기는커녕 "강아지 공원에서 밥을 먹는 우리가 이해해야지" 해버렸다.


호주가 이런 곳임을 확인했고, 남편이 이미 세 마리 이상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있기에 믿고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유기견 보호소를 찾았는데, 놀랍게도 호주의 유기견 보호소에는 강아지가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호주 사람들이 몽땅 다 입양해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강아지 목 뒤에 심어놓은 마이크로칩으로 주인의 거주지를 확인했음에도,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은 경우 유기견으로 입양이 결정되는데 일단 분양을 시작하면 그 날 혹은 늦어도 그다음 날이면 모두 다 분양된다고 했다. 늙은 강아지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유기견 입양은 커녕 보호소에서 강아지를 구경도 하기 힘들었다.


다음 단계로, 그래! 샵에서 분양해주는 강아지를 데려오자! 하고 몇몇 샵을 찾았는데, 가격이 세상에나 2백만 원은 우습게 넘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부의 상징이구나 싶었다.


결국은 남편이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해, 정부에 등록은 되었지만 전문적이지 않은 브리더들을 연락하기 시작했다. 키우던 강아지가 여섯 마리, 일곱 마리 이렇게 새끼를 낳으면 키우지 못하는 새끼 강아지들을 공인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광고로 분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저녁 7시에 강아지를 보러 가기로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서면 6시쯤에는 이미 강아지가 모두 입양됐다는 연락을 받기 일쑤였다. "나는 내 강아지의 새끼들이 행복하기를 바라" 하며, 내 비자 상태, 거주지, 직업까지 확인하는 브리더도 있었다.

그렇게 강아지 얼굴도 보지 못하고 분양을 실패하기를 서너 번, 우린 마침내 두부를 만날 수 있었다.

두부는 6남매 중 한 마리였다. 글이 올라온 지 30분도 안돼 부랴부랴 집을 나섰지만, 이미 그곳엔 두부의 다른 남매를 안고 있는 가족이 있었고, 두 마리는 분양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중 한 녀석은 너무나 부산스러워 온 마당을 온통 휘저었고, 한 마리는 너무 작고 조용한 성격이라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중 두부는 적당히 까불고 사람 손에 안기면 조용하게 변하는 내가 "딱 기대하던" 강아지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고민도 없이 그 날 바로 우린 두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하루 저녁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다. 수건들을 꺼내 덮어주고, 브리더가 건네준 사료를 하루 먹이면 되겠지. 내일 가서 강아지 집이랑 목욕제품이랑 목줄이랑 사 와야지 하면서 안일하게 생각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부는 내 무릎에서 꼬물꼬물 몸을 뒤쳤였다. 설레었다. 너무 작고 따뜻하고 연약했다.

하지만 그 날부터 삼일 정도는 정말 멘붕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아빠가 "아기가 태어나면 정말 애정이 샘솟고 사랑에 빠질 것 같니? 물론 사랑스럽고 신기한 감격의 연속이긴 한데, 진짜 사랑하게 되는 건 추억이 쌓이면서 서로의 매력을 느껴가면서야"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니 아빠는 서운하게.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에 푹 빠진 달콤한 사이라고 말 좀 해주지 싶었는데, 두부를 보고 조금은 그런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두부는 작고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우린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1.5kg도 안 되는 작은 강아지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집안을 뛰어다녔고, 어디로 튈지 정말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다. 자기도 새로운 환경이 낯설어 왈왈 소리를 내며 짓는데, 난 어쩐지 뒤에 선 두부가 내 아킬레스건을 꽉 물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부가 좀 무섭기도 했다. 처음 며칠은 우습게도 두부가 소리 내며 달려오면, 서른 배가 넘는 덩치를 가진 나는 움찔움찔거렸다.

밤이 찾아왔고 엄마와 떨어져 낯선 통에 첫날밤 두부는 30분마다 깨어나 낑낑 소리를 내며 짖었다. 결국 남편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두부를 함께 눕히자 진정이 되었는데, 덕분에 다음날 아침 충격은 배는 커졌었다.


세상에 두부 몸에서 벼룩이 나온 것이다! 우리 집은 카펫 바닥인데!
남편이 어제 이불에서 재웠는데!!
 


당장 동물 용품점으로 가 벼룩 퇴치 약을 사고, 두 달 만에 두부는 첫 목욕을 했다. 뜨거운 물에 움직임이 둔해진 벼룩을 남편이 손으로 한 마리씩 잡아 냈는데 어찌나 징그럽던지. 뜨거운 물을 씻기기 좋은 등부터 적셔가자, 강아지의 얼굴로 열 마리 남짓의 벼룩이 몰려들었다. 집안을 방역하느라 온 살림을 꺼내 약을 치고, 뜨거운 물로 이불 빨래를 하고. 정말 상상도 못 한 생 고생의 연속이었다.

그때부터 남편과 나는 강형욱 씨가 나온 모든 강아지 프로그램의 유튜브를 다 찾아봤다. 정말이지 다 봤다. 배변 훈련, 음식량, 산책 방법 그리고 사회화까지. 모든 게 낯설었기에 우린 꽤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 공부를 했고, 이제는 슬그머니 그녀를 가족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제부턴가 제법 감정교류도 한다. 우리가 화가 나 목소리 톤이라도 높아질라 치면 "아 나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구만!"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와 남편을 교대로 달래며 분주하게 애교를 부린다. 한 번은 내가 가만히 혼자 앉아 울고 있자, 내 무릎에 앞발을 올린 채로 같이 침울해져 20분을 꼼짝도 않고 앉아있었다.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참 놀랄 만큼 위안이 된다.



두부를 데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는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면서, 반려견에 대한 시각 차이가 꽤나 무서울 만큼 시끄러웠다. 솔직히 난 개를 무서워하기도 했고, 지금은 가족으로 키우기도 하기에 모두의 입장이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단지 안타까운 건 아직 우리나라는 반려견을 모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에 문화도 법규도 충분한 공간도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주 강아지의 평균 수명은 18년이라고 한다. 매일 산책하는 문화가 갖혀져 있고, 목줄을 메야할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정해져 있으며, 강아지 배변 봉지가 공원 초입마다 설치되어 있다. 쇼핑몰 앞에는 강아지를 묶어 둘 바가 설치되어 있으며,  목줄 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공원들 심지어는 바닷가도 있다.

강아지 공장이 생겨나는 걸 막기 위해 새끼를 치기 위한 충분한 공간과 위생상태가 법으로 정해져 있고, 사람들은 주인의 동의받지 않으면 다른 이의 강아지들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마치 강형욱 씨에게 단체로 훈련이라도 받은 것 마냥, 그가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을 이미 호주 사람들은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짜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강아지들도 이빨을 세우는 경우가 잘 없다. 스트레스 제로가 낳은 기적이라고 난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이민을 와 살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언제나 찬반이 있다.

호주는 분명 여유롭고, 자유롭지만 그만큼 느리고 심심하고 불편한 곳이다. 병원, 편의시설, 배달문화, 친절한 서비스업, 훌륭한 공산품, 맛깔스러운 음식, 빠른 인터넷. 많은 부분에서 한국은 호주를 완벽하게 압도한다.


하지만, 반려견만 딱 두고 봤을 때는 모든 면에서 호주의 압승이 아닌가 싶다.

정말 이 곳은 개가 살기 좋은 나라가 확실히 맞다.


keyword
소속 직업매니저
쓰고 그리는 걸 사랑하는 엔지니어예요. 23살부터 7년동안 삼성을 거쳐, 지금은 호주 멜버른에 살고 있지요. 20대의 모난 나에게 해주고 싶은 따뜻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