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친 당신을 위한 계단의 인문학

차가운 계단이 건네는 따듯한 삶의 위로

by 곽명의 프리즘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오르며 삽니다. 인생이란 끝없는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죠. 그러다 문득 우리가 사는 사회가 하나의 거대하고 가파른 계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더 높이'만을 강박적으로 외치는, 어쩌면 설계 오류가 난 계단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건축학이 숨겨놓은 작은 위로를 건네보려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딛는 이 계단이 삶에 대해 어떤 말을 해주는지, 그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높이보다 중요한 것은 '발을 딛는 면적'


2R + T = 63

건축에는 계단을 설계할 때 반드시 지키는 황금률이 있습니다. 계단의 높이를 R(Riser), 디딤판의 너비를 T(Tread)라고 할 때, 그 합이 우리 보폭인 약 63cm 내외가 되어야 한다는 공식이죠.


image.png 출처 : 헤럴드경제


경사가 가파르다는 건, 단높이(R)는 높은데 내가 발을 딛고 설 너비(T)는 좁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도 이와 참 비슷해요. 성취의 높이만 쫓다 보면, 정작 내가 마음 편히 발을 붙이고 서 있을 '오늘'이라는 면적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발붙일 곳이 없으니 단 한 번의 헛디딤만으로도 추락하기 너무 쉬워지죠. 지금의 삶이 유독 고통스럽다면, 혹시 단기간의 성취를 위해 스스로의 단높이를 너무 무리하게 높여 잡은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야 합니다.




비효율의 미학, '계단참'이 우리를 구원한다


cdd20-stair-5831253_1920.jpg 출처 : pixabay


여러분, 혹시 '계단참'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아마 용어는 생소해도 무엇인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계단 중간중간에 존재하는 넓고 평평한 구간을 말하는데요. 건축법에 따라 계단은 일정 높이마다 반드시 이 계단참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계단을 오르는 '목적' 측면에서만 보면, 계단참은 비효율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 비효율 덕분에 우리는 안전해지고, 잠시 멈춰 서서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됩니다. 만약 계단참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한 번의 실수로 계단 맨 아래까지 곤두박질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단참이 있기에 우리는 더 큰 부상을 피할 수 있고, 힘들면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인생의 정체기나 슬럼프를 만나면 '남들보다 뒤처졌다'며 자책하곤 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그것은 다음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삶에 설계된 '필수적인 공간'입니다.




보이지 않는 지지대, 평소엔 잊고 지내던 '난간'


bejan-stair-6517492_1920.jpg 출처 : pixabay


위기의 순간, 우리 손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난간입니다. 난간 역시 계단참처럼 법적으로 의무 설치 대상입니다. 보행자의 안전과 추락 방지를 위해서죠.


우리 삶에서 난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아마도 가족, 친구, 혹은 나를 지탱하는 확고한 삶의 원칙들일 것입니다. 아무리 빨리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라도 난간이 없다면 그 계단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결코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당신 곁에 있는 '난간' 같은 존재들을 평소에 소중히 여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를 때는 보지 못했던, 내려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andibreit-stairs-1458533_1920.jpg 출처 : pixabay


이번에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생기는 '시선의 비대칭'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계단을 올라갈 때는 오직 '다음 칸'만 보게 됩니다. 목표가 명확하기에 시야는 극도로 좁아지죠. 발밑의 콘크리트만 보며 숨을 헐떡이다 보면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주변 풍경은 어떤지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모두가 위만 바라보는 사회가 팍팍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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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려올 때는 비로소 시야가 넓어집니다.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내가 살던 세상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비로소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죠. 많은 이들이 '하강'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하강은 시야의 확장입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삶을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죠. 인생에는 오르막길만큼이나 내리막길이 필요한 법입니다.




당신의 계단은 오르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계단은 중력이라는 현실을 거스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가장 물리적인 장치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이 거대한 중력을 이겨내며 오르는 일을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꼭 기억해 주세요. 계단은 단지 위로 가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딛고 서 있는 '공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요. 지금 삶의 계단이 너무 벅차다면 단높이를 조금 낮추고 '오늘'이라는 면적을 조금 더 넓혀보세요. 무너질 것 같은 날엔 곁에 있는 난간을 꼭 붙잡으시고요. 때로는 계단참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오르는 이 계단은 단지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나은 풍경을 발견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니까요. 오늘 전해드린 이 계단의 인문학이 당신의 고단한 걸음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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