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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연 Jan 18. 2021

#7. 누군가의 윗자리

직장생활 11년 차, 사회생활 최대 딜레마에 부딪혔다.

누군가의 선임으로, 상사로 자리한다는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건만 이제 와서 인생 최대 난제를 부여받은 느낌이다.


나는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시절, 그때의 선배들과 상사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정말 싫었다. 기획사 특유의 상명하복과, 직장은 군대다!! 를 외치며 일방적인 지시만을 내리는 것이 싫었고, 툭하면 야!!!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못 한다고 타박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내가 만약 위로 올라간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나름대로의 기준 선을 세웠다.


1. 업무를 내릴 때는 충분한 설명과 취지를 곁들일 것

2. 화가 나는 순간에도 언성을 높이지 않을 것

3. 한 번에 많은 일을 내리기보다 순차적으로 내려서 적응할 시간을 줄 것


다른 많은 기준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절대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은 위의 세 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이 세 가지를 지키고자 했을 때, 새로운 변수가 내게 와서 부딪힐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한 손의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 90년대 생을 마주했다는 것과, 11년의 사회생활 동안 나는 나름대로 한국사회와 타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능청스럽게, 때로는 묵묵하게.


Why를 입에 달고 사는 나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니 위에 자꾸 물음표를 던졌던지라, 신입에게 일을 내릴 때 '이러이러하니 이렇게 해 와라' 하고 얘기를 하거나, 기본적인 행동의 매너로 '누군가에게 뭔가 물을 때가 생기거든 되도록 직접 가서 묻고 와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게 돌아온 것은 띠용스럽게도 '네'가 아니라 자신이 한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명분을 가장한  '제 생각은요'였다.


Whyrano...?


1차적으로는 화내지 않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니 설명해주면 따라올 줄 알았다. 그러나 설명 후에도 이 병아리는 없는 닭 볏을 꼿꼿하게 세우며 '근데 저는요'를 남발했다. 결국 나는 폭발했고,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병아리의 회의실 소환이 6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3번 정도 발생하고 말았다.


모르는 게 많을 때니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호기심이 일의 우선순위를 놓치게 해서는 안된다.

디테일을 새겨듣고, 기억을 못 하겠으면 반드시 적어라.


등등 수도 없는 타이름이 거듭되었지만, 나를 마주 보는 시선에는 '나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데 왜 훈수질이야'라는 삐딱함이 가득한 불만이 묻어 나왔다.


성질(?) 같았으면 친정의 군대문화에 빙의해서 이 새끼 저 새끼 같은 친숙한 호칭과 함께 육두문자가 남발하고도 남았겠으나, 지금의 내 직장과 특히 내 부서는 친정과는 아주 먼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제일 위가 평온한데 중간에 있는 내가 양은냄비처럼  파르륵 거려봤자 좋을 일이 없는 것이다.


위의 평온하신 그 분과도 면담을 했으나 돌아오는 소리는 더 어이없었다. 성향이 다른 것이다. 나는 쟤가 어떻게 일하는지 모르니 뭐라 해 줄 말이 없다. 혹은 쟤가 엇나가서 본인한테 안기면 나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다 등등.


위에서 어이가 사라지고 밑에서 띠용 하고 튀어 오르는 꼴이라니, 작년 말에 박수무당이 해 준 사람한테 치여 속이 썩을 거라는 얘기가 이 상황을 가리키는 말인가 싶었다.


오늘도 팀 대리와 함께 프로젝트 예산에 대해서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7시 땡 치자마자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메고 들어가 보겠다는 말에 기어이 심지가 뒤틀렸다.


하루 종일 하라는 일은 되어 있지 않았고,

미리 짜뒀던 방향성은 안드로메다로 날려 먹었으며,

그동안 가르쳤던 모든 것은 처음 듣는 것인 양 행동했던 그 아이에게.


"우리는 지금 이 프로젝트 예산 때문에 머리 짜고 있는데, 너는 집에 가니?"


팀 대리도 이 프로젝트는 중요한 건이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랬더니 또 두 눈에 반항심 가득 담고 앉아, 안 해도 그만인 말들만 내뱉고는 5초에 한번 꼴로 핸드폰을 쳐다보는 그 병아리 새끼.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욱 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꾹꾹 누르느라 얼마나 애를 썼던지. 예산의 골자가 잡힐 때까지 병아리를 붙잡아두고 그 이후에나 보내면서, 그리고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면서 머리의 복잡한 생각들을 비워내며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렀다.


나는 이제까지 '호랑이 같은 매서운 리더' 형이었다. 목표를 설정하고 끌고 나감에 있어 상벌이 분명했고 일 이외의 사담은 섞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와서 회사 및 팀 분위기에 맞춰보겠답시고 성질에도 맞지 않는 '친구 같은 리더'형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도 해가며 수다도 떨어가며, 옛날 같았으면 불호령을 낼 일도 타이름으로 대신하며.


누군가의 윗자리에 선다는 것은 독재적인 위치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하하호호하며 캐주얼한 분위기가 능사가 아닌 것이었다.


결국에는 내 방향성 설정이 지금의 이 문제를 야기했나 싶었다. 정답도 오답도 없는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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