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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연 Jan 19. 2021

#8. 스트레스 해소 음식

새우 멘보샤 한 입에 가득 가득이었던 스트레스 게이지가 쭈우욱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옛날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를 하며, 스트레스가 가득한 딸에게 음식을 사준다거나 바캉스를 데려간다거나 하면 스트레스 지수가 뚝뚝 떨어지는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이상했고, 신기했다.


나는 원래 먹는 걸로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되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에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 아무리 맛있는 걸 내 눈 앞에 가져다 놔도, 쳐다보는 것도 짜증이 나는 그런 비글 같은 성격이었다. (비글 미안)


그런데 최근에 딱 두 번, 이렇게 스트레스가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느낌을 준 먹을 것이 있었다. 하나는 브라우니 쿠키였고, 나머지 하나가 오늘의 새우 멘보샤다.


브라우니 쿠키는 사실 처음에 옆 자리 입사동기 느님이 손에 두 개 쥐어준 것을 집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집에 가서 먹어야지 하고 가방에 야무지게 넣어놓고는, 다음 날 재택을 하면서는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다. 그런데 뭐 때문에 또 스트레스가 만땅을 채운 순간 불현듯 생각이 나서 가방을 뒤적였다.


반투명한 포장지를 쪽 하고 찢어서는 이 브라우니는 무슨 맛인고 하고 물었는데 한 입 물어 우물거리는 순간 나는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프린세스 메이커 딸내미가 되어 있었다 (ㅋㅋㅋ).


그 맛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나는 브라우니 포장지를 까뒤집어서 홈페이지 주소 하나를 찾아냈고, 초록 창의 총명한 가게에서도 그 브라우니 쿠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다음 단계는 친구에게 선물 주기와 내게 셀프 선물로 한 박스 보내기였다.


새우 멘보샤는 오늘 저녁 반찬이었는데, 멘보샤라는 걸 처음 본 나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관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씹는 순간 oH! Oh! 탱글탱글 마쉬써! 어깨춤을 추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브라우니 쿠키와 멘보샤는 정말 이례적인 먹을 것이었다.

아마 한 입 크기 정도가 아니었다면 신경이 바짝 올라있는 상태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엄청 행복한 일이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먹을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난제의 정답을 아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명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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