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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님 Feb 04. 2022

新부모님전상서 |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이토록 솔직한 자식의 고백이라니

※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람 전 조금의 스포도 원치 않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문화 콘텐츠에서 '부모님'의 존재는 치트키다. 사람들은 엄마, 아빠란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이상해진다. 원인과 형태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이 '울컥'하는 감정 속엔 고마움과 사랑, 미움과 원망, 후회가 공존할 테다. 부모를 향한 이 복잡한 심경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창작산실 신작으로 올라온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포스터

공연정보

상연시간 | 100분 (인터미션 없음)
기간 | 2022. 1. 8~2. 6.
장소 | CJ아지트 대학로
출연진 | 병삼 役 이정열, 정의욱 / 주영 役 박슬기, 이아진 / 시계토끼 외 役 홍준기 / 도도새 외 役 박혜원 / 쳇셔고양이 외 役 정현우


줄거리

동화작가 지망생 주영은 아버지 병삼의 암이 재발했단 소식을 듣는다. 주영은 모진 소리를 일삼는 병삼이 밉지만, 간병을 위해 고향인 부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뇌까지 암이 전이된 병삼은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는 지경에 이르고, 주영은 십대 소년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마주한다.


단평

요약하자면, 사이가 소원했던 부녀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야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내용이다. 자칫 뻔하고 편한 길로 흐르기 쉬운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무대, 캐릭터와 서사에 특별한 지점들이 분명 있다.


사진=다아트뮤지컬


호평

캐릭터 간 상호보완이 된다. 이야기 주축인 주영과 병삼 부녀의 관계가 전형적인 대신, 주변 캐릭터를 톡톡 튀게 만든 덕이다. 극 중 주영이 쓰는 동화 속 캐릭터 시계토끼, 도도새, 쳇셔고양이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들은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을 하고서 몽환적이거나 발랄한 넘버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며 주영의 내면을 보여준다. 전개 상 분위기가 무거워질 때마다 이를 환기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무대를 보는 재미도 있다. 이 작품에선 무대 위에 영상을 쏘아 보여주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동화 속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대 배경이 되는 흰색 세트에 앞뒤가 다른 문을 달아 침대, 선반 등을 표현한 것이나 프레임 형태의 구조물을 이동하여 공간의 전환을 표현하는 것, 선명한 색의 조명으로 인물의 내면-현실 상황을 오가는 것 등의 연출이 보는 눈을 지루할 틈 없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나라의 아빠>를 가장 특별하게 만들어준 건 '주영'이란 인물이다. 극 초반 주영과 병삼의 갈등은 도무지 돌이킬 수 없어 보일 만큼 그 골이 깊게 그려진다. 그러다 병삼이 자신을 십대 소년으로 착각하면서 그 역시 한때는 주영처럼 글 쓰는 사람을 꿈꿨으나, 꼭 병삼처럼 엄했던 아버지(주영의 할아버지)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던 사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영과 관객은 병삼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다만 '조금'일뿐이다. 병삼의 유년이 불행했다고 그걸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부모-자식 간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면 이 대목에서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감동하며 끝났을 일이다.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작품이 특별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병삼은 또 주영에게 화를 내고 주영은 상처받는다. 설상가상 주영이 병삼의 간병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오자, 주영은 "아빠가 살기를 바라는지 죽기를 바라는지 모르겠다"라고 털어놓는다. 자식의 속 깊은 데 응어리진, 부모에 대한 얼룩덜룩한 마음을 이토록 솔직히 꺼내어 보여준 작품이 있었나. 기승전결을 예상하며 보고 있던 내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대목이었다.



불호평

결말이 다소 흐지부지 마무리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시놉시스에 언급된 '주영이 동화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극 중 병삼이 애타게 찾으러 다닌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확실하게 와닿는 것이 없다. 특히 작품의 제목부터 작중 캐릭터에까지 영향을 미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단순히 소스를 빌려온 것 이상으로, 극 중 주영과 병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연출 면에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던 만큼 이야기를 조금 더 정돈하여 정기공연으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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