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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님 Jan 13. 2022

당신을 웃게 만들 뮤지컬 | 공연 큐레이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젠틀맨스 가이드> <썸씽로튼>

공연큐레이션 | '연뮤 입덕'이 늘고 있는 요즘, 어떤 공연이 재미있는지 혹은 함께 보러 가기에, 혼자 보러 가기에 좋은 작품은 무엇이 있는지 주제와 상황과 맞는 공연큐레이션을 선사합니다...라고 쓰고 극에 대한 사실적 정보와 주관적인 감상에 기반한 '영업글'이라고 읽습니다. [편집자주]



'새해에 처음으로 듣는 노래의 가사가 한 해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다소 플라세보 효과를 노리는 듯한 속설이 있다. 그렇다면 새해 첫 달에 보는 공연 작품에도 의미를 부여해 보면 어떨까. 올 한 해 웃는 일만 가득하시라고, 웃으러 가기 딱 좋은 뮤지컬 세 편을 소개해 본다.



각 포스터





감동이 있는 웃음 <빌리 엘리어트>
1980년대 영국 탄광촌을 배경으로, 복싱을 배우러 다니던 체육관에서 우연히 발레 수업을 들은 꼬마 빌리가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명의 원작 영화로도 잘 알려졌다.


https://youtu.be/fBzNhl7qnw0


<빌리 엘리어트>의 키워드를 세 개 꼽으라면 '춤'과 '배우' '메시지'를 들 수 있겠다.

먼저 춤! 극의 핵심인 발레를 비롯해 탭댄스,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한 안무가 주를 이룬다. 빌리들의 유려한 발레 동작은 감탄을 자아내고 빌리와 마이클이 선보이는 탭댄스는 흥을 돋우며, 앙상블들이 호흡을 맞춰 완성하는 군무 신은 보는 사람을 소름 돋게 만든다.

그리고 이 춤들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이 <빌리 엘리어트>의 가장 큰 보물이다. 이 작품은 주요 배역들이 어린이이기 때문에 이들이 배역을 보다 잘 소화해낼 수 있도록 오디션과 연습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시즌 역시 1년여간의 오디션을 거쳐 발탁된 빌리 역의 김시훈, 이우진, 전강혁, 주현준을 포함한 모든 어린이 배우들이 연기와 노래, 춤 어디 하나 모자란 데 없이 출중한 실력을 보여줘 그 자체만으로 왠지 모를 감동을 선사한다. 어린이 배우뿐 아니라 올해 여든 하나가 되신 박정자 선생님이 빌리의 따뜻하고 귀여운 할머니를 연기하시며 무대 위 '세대통합'을 이뤄 주신다.

여기까지 작품을 구성하는, 일종의 기술적인 요소에 관해 칭찬했다면 작품 자체가 갖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은 극 중 빌리의 아버지와 형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통해 1980년대 영국 탄광촌 대파업 시기의 고단했던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그 속에서 발레리노의 꿈을 키우는 빌리는 한 줄기 빛처럼 비치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인 빌리에게 파업에 참여 중인 광부들은 물론 파업을 포기했던 광부들까지 힘을 모아주는 장면에서는 가슴 벅찬 희망을 느낀다. 이해관계의 대립, 이념의 갈등 같은 걸 넘어 인간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끈끈한 무엇. 그것의 가치. 여러모로 <빌리 엘리어트>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여파로 캐스팅 변경이나 공연 중단 등의 이슈를 숱하게 겪은 <빌리 엘리어트>는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최근 공연 기간을 연장했다. 이에 따라오는 2월 13일까지 신도림역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런 분들이 보기에 좋아요

가족과 함께 볼 뮤지컬을 찾는 분

꿈에 대한 희망과 응원 위로가 필요한 분

'복합장르'로서의 뮤지컬을 경험해 보고 싶은 분

여태 뮤지컬에 대해 잘 몰랐을지라도 한 번쯤 '유명한 뮤지컬' 보러 가고 싶은 분




블랙코미디의 진수 <젠틀맨스 가이드>
런던에 사는 가난한 청년 몬티, 어느 날 자신이 백작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듣는다. 그러나 몬티가 백작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하려면 다이스퀴스 가문의 앞선 후계자들이 사라져야 하는 바, 몬티의 위험한 계획이 시작된다.


https://youtu.be/CfwkPU4glI0


시놉시스만 놓고 보니 스릴러로 만들어도 될 법하지만 <젠틀맨스 가이드>의 장르는 블랙코미디다. 몬티가 다이스퀴스 가문의 일곱 후계자들을 하나씩 처치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고 여기에 관람 포인트가 있다. 나름 선량하게 살아온 몬티가 처음에는 살인 계획을 세우며 벌벌 떨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를 써서 일을 꾸며내는 모습이 첫 번째 포인트, 몬티에 의해 처단당하는 다이스퀴스 가문의 인물들을 모두 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두 번째 포인트다.

몬티가 다이스퀴스 가문 처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대부분 넘버와 함께 진행되므로, 몬티는 거의 랩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가사가 빠르게 이어지는 넘버들을 소화한다. 밝은 멜로디 위에 얹어지는 가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다이스퀴스 역의 배우들이 성별불문, 성직자부터 배우, 재수 없는 백작 할아버지까지 혼자서 여러 명의 인물을, 그것도 이미지가 겹치지 않게 소화해내는 걸 보는 게 <젠틀맨스 가이드>의 가장 큰 재미이다.

고난도의 넘버와 1인 다역 연기를 완벽히 소화하는 배우들로는 뮤지컬을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얼굴들이 열연 중이다. 몬티 역에 유연석, 이석훈, 고은성, 이상이 모두 드라마나 영화, 가요 무대, 오디션 프로그램 등으로 시청자를 만난 바 있다. 다이스퀴스 역에 오만석, 정성화, 정문성, 이규형도 드라마 등 방송 활동을 병행하는 인물들이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젠틀맨스 가이드>는 대본의 여러 군데에서 배우의 애드리브를 허용하는 작품이고 때문에 몬티 역과 다이스퀴스 역이 보여주는 호흡이 저마다 다르다. 여러 조합을 경험해 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조합을 찾는 것도 <젠틀맨스 가이드>를 여러 번 보게 만드는 힘이 되겠다.

뿐만 아니라 몬티의 연인 시벨라 역에 이정화, 유리아, 몬티에게 반해버린 다이스퀴스 가문의 피비 역 김아선 등 출연하는 모든 뮤지컬 배우들이 실력자이기 때문에 어떤 날짜를 골라 가도 만족할 만한 관람을 경험하고 오리라 자신한다. 내달 20일까지 압구정역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한다.


이런 분들이 보기에 좋아요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고민할 필요 없이 깔깔깔 웃고 싶은 분

뮤지컬 배우를 잘 몰라서 익숙한 얼굴이 나오는 작품을 찾는 분

압구정역 근처에 살거나 자주 다니면서 문화생활을 하고 싶은 분




'뮤지컬 잘알'도 '알못'도 빵빵 터진다 <썸씽로튼>
영국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망할 위기에 처한 연극 제작자(이자 연출가이자 각본가이자 배우) 닉 바텀이 당대 스타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맞서 성공할 만한 작품으로 뮤지컬 장르를 개척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https://youtu.be/MEt9RlNjpXo


고전 희곡의 상징,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뮤지컬'이 등장했다면? <썸씽로튼>은 발칙하고 유쾌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런 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유쾌한 톤을 잃지 않아 보는 내내 웃기 바쁘다. 넘버들은 모두 경쾌하고 앙상블이 보여주는 군무들은 신이 난다. 특히 극 중 닉 바텀이 셰익스피어를 이겨보겠답시고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에게 앞으로 인기를 끌 만한 작품이 무엇일지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노스트라다무스가 '뮤-우지컬'을 처음 언급한다. 그러면서 부르는 넘버 'A Musical'에는 국내외 유명 뮤지컬들의 대표 넘버가 다수 패러디되는데 이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는 <썸씽로튼>이 제시하는 셰익스피어의 새로운 해석이다. 작품은 셰익스피어를 인기에 취해있는 톱스타로 그리고 있다. 이에 따라 셰익스피어 역의 배우 서경수, 윤지성은 각각 젠틀하고 능글맞은 슈퍼스타와 도도하고 자기애에 흠뻑 빠진 슈퍼스타의 연기를 펼치는데, 이 대목이 웃음을 준다. 그런가 하면 이 슈퍼스타들이 2막에서 선보이는 반전의 캐릭터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건 이 작품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앞서 언급한 넘버 'A Musical'에는 "여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어" "위풍당당 여자들"과 같은 가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썸씽로튼>의 주요 여자 배역인 비아와 포샤를 통해서도 보인다. 극 중 닉 바텀의 아내인 비아는 벌이가 시원찮은 남편과 유약한 도련님(나이젤 바텀, 닉의 동생으로 형제 모두 연극 만드는 일을 한다)을 대신해 사냥을 나가거나 남장을 하고서 돈을 번다(당대에는 여성의 사회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를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는 닉에게 "당신 오른팔이 돼주겠다"며 "이건 성차별"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또 다른 여자 캐릭터 포샤는 극 중 청교도 목사의 딸로, 욕망의 표출을 억압받지만 아버지 몰래 시를 읽고 또 깊이 사랑하며 자신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인물이다. 성차별이 만연, 아니 당연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성평등을 요구하고 자기 주체성을 확실히 가진 여자 캐릭터를 그려낸 것만으로, 여성 캐릭터의 쓰임에 관해 논란이 많은 뮤지컬계에서 <썸씽로튼>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번 시즌 한국 프로덕션의 행보인데, 지난 시즌에 넘버 중 등장했던 '오조오억 명'이란 가사가 시츠프로브(공연 전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춰보는 연습 과정, 개막 전 생중계로 공개됐다)에서 '사천 사백 명'으로 변경됐던 것이다. 최근 '오조오억'이란 신조어의 어원을 두고 일어난, 근거 없는 성별 갈등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데(이 표현이 남성 혐오적 의미를 품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커뮤니티에서 기인한 논란인데, 실제로 이 표현은 남자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팬이 자신의 최애를 칭찬하는 과정에서 유행했다) "여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라고 외치는 작품에서 여성 혐오를 기반으로 번진 논란에 이런 방식으로 반응했다는 것이 씁쓸하다. 게다가 이 가사는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팬이 오조오억 명이라고 말하면서 언급되는데 오조오억을 사천 사백으로, 그 숫자의 단위를 왕창 줄여버린 것도 우스운 일이다. 개막 후 현재는 '사천 사백 명'이 아니라 '끝없는 팬들'로 최종 수정해 공연 중이다.

지난 초연부터 <썸씽로튼>을 사랑했던 만큼 아쉬움이 크지만, 뮤지컬을 많이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과 함께하기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어 추천한다. 아차산역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오는 4월 10일까지 만날 수 있다.


이런 분들이 보기에 좋아요

뮤지컬은 잘 모르지만 유명하다는 작품들은 얼추 아는 분

셰익스피어를 알거나 그의 작품을 아는 분

유쾌하고 발랄한 에너지를 느끼고 싶은 분

아차산 신토불이 떡볶이 먹으러 가고 싶은데 선뜻 마음이 안 먹히는 분(유니버설 아트센터와 신토불이 떡볶이는 도보로 7분, 공연 전후에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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