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여기 있었네
임기를 마치고 자택으로 돌아가는 이명박 전 대통령. 그에게 최승호 PD가 다가간다. 그리고 그에게 '4대강 수심 6미터 지시여부'를 묻는다. 그의 질문은 외면당하고, 그는 경호원들에 의해 밀려난다. 그리고 '이명박'을 연신 외쳐대는 지지자 사이에서 홀로 외친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이명박-박근혜 9년은, '질문을 못하게 하는 시대'였다. 정부의 정책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려던 프로그램들을 없애고, 이를 만들던 PD와 기자들을 쫓아냈다. 언론사 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질문을 하지 않는' 언론인들. 그렇게 9년이 흘러갔다.
그리고 언론은 망가져갔다. 세월호 참사현장상황과 전혀 다른,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육해공 구조작업 총출동'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현장은, 아무것도 하는게 없어요!', '빨리 좀 구해줘요! 살려주세요!' 라는 울부짖음만 터져나오는 상황.
이 상황에 대해 언론은 의문을 갖지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세월호 탑승자 가족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한다. 언론이라면 이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해야했건만, 오히려 언론은 정부가 아니라 이들에게 질문한다.
쓰촨 대지진 당시 중국인들은 총리에게 물병을 던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대륙 전역이 애국적 구호로 넘쳐났다
이 말에는 '너희들 좀 자중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들어가 있다. 쓰촨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를 비교하며 세월호 탑승자 유가족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질문의 역할을 내팽개친 언론은 이렇게나 무서웠다. 그리고 이렇게 망가진 언론은 나라도 망가뜨렸다. 정부가 질문을 받지 않으니, 자신의 논리를 그냥 밀어붙이면 될 터. 질문이 없어진 자리를 채운 것은 '불통'과 '일방주의'였다. 그렇게 우리는, <공범자들>을 통해 '질문을 못하는 언론'이 나라를 어떻게 만드는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았다. 세계를 놀라게 한 1700만 촛불로, 어떤 폭력도 없이, 정권을 심판해버렸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데, 어떻게 이 극적인 반전이 가능했을까.
<공범자들>은, 질문을 못하는 '기레기들'이 나라를 어떻게 망쳤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한편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저항하는 '기자'들을 비춘다.
'그게 언론학자로서의 양심입니까. 그렇게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까'라며 되묻는 기자들. 'MBC 뉴스를 망친 당사자라는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보세요'라며 묻는 기자들.('질문하지 못하는 언론인'들이 대답 또한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다)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외침으로 MBC사옥을 가득 채운 언론인들. 이렇게 질문하고 저항한 '기자정신'이 있어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되돌아보면, 국민들의 뇌리에 '최순실'이란 이름을 각인시켰던 것은 지난해 9월 20일의 한겨레 보도였다.( 해당 기사)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이게 한 것은 JTBC의 '태블릿 PC 보도'였다. 그리고 '팔짱끼고 웃으며 조사받는 우병우 사진'을 건져낸 조선일보의 쾌거까지.( 해당기사) 박근혜 정권 심판의 중요국면마다,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준 언론보도가 있었다. '현장은 아무것도 하는 게 없더라'는 세월호 탑승자 가족의 그 절규 또한, 그 시간 현장에 있었던 어느 기자의 취재를 통해 우리는 접할 수 있었다.
<공범자들>의 기획의도는,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언론을 망친 사람들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들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언론을 지키기 위한, '기레기'가 아닌 '기자'들이 있었음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기억하고, 응원함으로써,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질문하고 저항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26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공범자들>이 유튜브에서도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20일 유튜브에서 영화가 공개된 지 일주일째, 현재 조회수는 180만에 육박한다. 이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으로도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 진정한 '기자'들에게 많은 응원이 될 것 같다. 11월 3일까지만 한시적으로 공개한다고 하는데, 이번 주말, 친구와 연인과 <공범자들>을 함께 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