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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작가 Apr 18. 2019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

 새벽빛을 보며 아침을 맞이할 때면 하루가 감사하다. 새벽은 우리에게 고요함을 주어 어제를 돌아보게 해 주며 오늘을 계획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먹었던 고기반찬과 시금치 된장국을 생각하게 해주며 점심에 만나 친구와 먹던 순댓국을 떠오르게 해준다. 오늘 있을 수업과 공부할 것들 그리고 만날 사람들을 새벽은 연결시켜준다. 그래서 나는 새벽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저녁 11시면 잠이 들어 7시간 후에 만날 새벽을 기다린다.


 새벽에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커피 한 잔을 내려 먹으면 배가 든든해지고 마음도 포근해진다. 아침을 시작하는 첫 한 끼를 먹으면서 몸속으로 생명의 힘찬 기상 소리가 들어옴을 느낀다. 아버지는 늘 아침을 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어릴 적 7남매 속에서 아버지는 아침을 드시지 못했다고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겪었던 굶주림의 고난을 아버지 역시 경험했던 것이다. 아침 대신 당신은 새벽 신문 배달을 하며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를 타셨다. 아버지의 말씀(아침을 먹어라)은 본인이 뼈 속까지 체험했던 몸속에 담긴 경험이 서린 문장이었을 것이다. 대학교 1,2학년 때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콧방귀로 들었다. 


 24살까지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먹으면 먹고 안 먹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 해가 지나 25살이 되어 자취를 하며 혼자 생활을 하다 보니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이전까지는 고등학교까지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학교 급식 어머님이 식사를 책임져주셨다. 군대에서는 전우들이 챙겨주었고 대학교에서는 기숙사 어머님이 식사를 챙겨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려주시는 밥을 떠먹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자취를 해보니 손수 밥을 짓고 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면서 밥을 하는 일이 무척 귀찮고 피곤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되며 밥을 차리면 많은 에너지가 소진됨을 느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밥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귀찮아서 끼니를 챙겨 먹지 않는 날이 종종있었다. 그럴 때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다른 이들이 들었을까봐 창피하기도 했지만 배가 고파 해야할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해 불편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밥을 먹는다는 것이 중요하고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을 잃고 생명이 꺼지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 식사도 점차 거르지 않게 되었다. 아침 9시쯤 일어나 헐레벌떡 학교에 갔었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점차 규칙적으로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른다. 다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몸에 생기를 불어 넣는 아침 식사는 더 이상 거르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없으면 편의점이나 분식가게를 들러 바나나 하나 혹은 김밥 한 줄이라도 챙겨 먹으려고 한다. 


 새벽에 밥 먹는 일 말고 또다른 중요한 일과를 수행한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묵상을 한다. 이 일은 나에게 꽤나 중요한 활동 중 하나이다. 내가 존경하는 한 친구가 있다. 그녀는 어느 날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일러주었다.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일,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기억하는 일 혹은 내가 믿고 따르는 신념을 기억하는 일. 기억을 되새김질 하며 끊임없이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었다. 현대인은 고민할 것이 많고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을 까먹을 때가 있다. 머리 속에 기억해야 할 혹은 신경써야 할 급한 일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소중한 일은 제쳐두고 급한 일 먼저 처리하게 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 친구는 '기억'이라는 한 단어로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물론 이런 변화는 갑작스럽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지속적으로 조금씩 변화하여 나의 삶을 바꾸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내가 믿는 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의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녀가 의도한 일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고 한 말을 통해 나의 삶은 작은 변화를 이루었고 그것은 나비효과가 되어 나타났다. 기억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묵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성경 말씀을 읽으며 하루를 살아간다. 묵상을 할 때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기억하게 되고 신을 믿는 기준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한 기준점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그녀의 말에 깃든 생명력이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묵상을 하고 난 후 변화를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아니든 새벽에 일어나 삶에 대해 묵상을 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스스로 조금의 변화, 더 나아지고 있다는 시그널을 느끼기 때문이다. 튼튼한 대들보가 지붕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아침 묵상은 하루의 태도를 결정짓고 나의 태도가 나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지시한다. 결국 이러한 행동양식은 내가 좀 더 나아지게 만들어준다. 


 대학에서 조직론 수업을 들을 당시 교수님은 늘 새벽을 강조하셨다. 본인 스스로는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가 내 나이 23살이었다.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드디어 그의 권유를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다. 게으름이 가득한 사람이라 선배들의 말을 자주 거스르는데 인생 선배님의 말씀을 들어서 손해 보는 일은 없음을 다시금 느낀다. 


 새벽은 나를 새롭게 하고 새로운 하루를 열어준다. 새벽에 일어나 몸과 마음을 챙기는 일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나에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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