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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작가 May 16. 2019

기도

 2년간 나는 한 단체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모임에서 우리는 다과를 나누며 간단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 모임은 연령대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해서 인지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러다 보니 모임은 꽤 유쾌한 편이다. 오늘도 하염없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 녀석이 스쳐 지나가는 말로 공동체에 섭섭함을 표현했다. 


“사진에 다들 나왔는데 나만 없네.” 


친구의 문장은 가볍지만 제법 진지하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번 모임에서 찍은 사진이 화근이었다. 당시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오랜만에 보이는 미세먼지 없는 서울 하늘에 우리 모두는 설레었다. 모임을 마친 우리는 하늘을 떠나보내기 아쉬워 한강을 걸었다. 당산역에서 출발하여 여의도 한강공원까지 거진 40분 정도를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의도 한강공원에 다다르기 전 다 함께 강을 마주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 속에 그 친구 녀석은 나오지 못했다. 먼저 움직였던 무리가 사진을 찍는 사이, 뒤늦게 출발한 친구는 소외되었다.


 의도된 연출은 아니었음을 그도 알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 2주일간 묵힌 녀석의 섭섭함이 고스란히 오늘 전달되었다. 사람에게 소외란 사소한 일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그의 문장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직장 동료들이 나만 두고 커피를 마신다던가, 친구들이 나 빼고 여행을 갔다던가 혹은 가족들이 나를 제외하고 외식을 갔다던가, 때론 남자 친구가 나와 상의 없이 먼저 최신 개봉 영화를 본다던가. 이럴 때면 분통이 터진다. 


 이러한 경험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외시킨 경우는 드물다. 상황과 맥락에 의해 필치 못한 사정으로 그러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느끼는 소외감은 감출 수 없다. 마치 친구 녀석처럼 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이 어쩌면 건강한 관계임을 나타낼 수도 있다. 우리의 관계에 애착이 있는 만큼 섭섭함도 큰 법이니까. 


“사진에 다들 나왔는데 나만 없네.” 

오늘따라 친구 녀석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잠에 들기 전 그를 위해 고요히 책상 앞에 앉아 눈을 감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린다. 그가 슬퍼하지 않게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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