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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작가 Jun 02. 2019

올바름이란

 어제저녁, 아버지와 대판 싸웠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숨길 수 없는 아버지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서로의 감정의 골을 깊게 파이고 싶지 않았지만 나 역시 강하게 항거했다. 


 우리 대화의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차분하게 서로의 입장을 주거니 받거니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주장과 근거를 토대로 주고받던 이야기가 어느새 풀리지 않은 분(憤)만 쌓이게 했다.


 1시간가량의 대화는 <나의 직업 선택>이라는 주제로 일관되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A와 B라는 직무로 아버지와 나는 깊이 갈등 중이었다. A라는 직무는 대학 4년 동안 배운 내용을 활용해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직업이다. 배운 것을 활용하기 때문에 경험을 쌓는 데 있어 어려움도 적은 편이다. 반면 B라는 직무는 1년 정도 직업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B라는 직업은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는 루트지만 새롭게 생긴 직업이기에 뽑는 인원이 적고 매뉴얼화되어 있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B에 대한 전공 지식이 얕아 직장을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 


두 가지 대안을 놓고 8시 즈음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한번 결정한 직무를 되돌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찾고 싶어 먼저 연락을 걸었다. 직업은 마치 요리와도 같아서 재료가 같아도 레시피가 다르면 전혀 다른 맛이 난다. 고등어를 굽게 되면 고등어구이는 되지만 초밥은 될 수 없듯이 말이다. 구이를 먹기 싫다면 생선을 새로 사서 회를 뜨고 숙성을 시킨 후 초밥을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마케터로 업을 쌓다가 헤어 디자이너로 전직을 하기란 쉽지 않다.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고 직업 수련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 직업을 바꾸게 되면 밑바닥부터 쌓아 올려야 하는 리스크를 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고 여러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내가 A라는 직무를 선택하기를 바라셨다. 4년간 배웠기 때문에 대우가 좋은 곳을 갈 수 있고 좀 더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안에서 직무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생각이었다. 반면 나는 B라는 직무를 하고 싶었다. B를 통해 역량을 쌓아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직업은 처음은 힘들 수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업이다. 


 1시간가량 통화를 마치고  분()이 쌓인 채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았다. 무언가 놓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자 하는 말은 다했지만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 통화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버지와 대화를 하며 나는 내 주장을 주입시키기 위해 논리와 다양한 근거로 무장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태도가 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 인해 아버지가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이 마음을 해집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이야기하는 듯한 태도, 강압적인 말투 따위로 혹여나 유리잔에 스크래치를 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말이다. 


생각을 마치고 눈을 떴다. 30여분이 지나있었다. 식탁에 놓여진 핸드폰으로 다가가 카카오톡을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께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세안을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면 제 뜻을 포기할게요. 사랑합니다.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린 결론이었다. 


 아버지와 나 모두 사실 어느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도사도 혹은 예언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와 나 과정의 올바름성은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앞으로 전진한다면 과연 그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이번 일을 계기로 고민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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