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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작가 Jun 11. 2019

실과 나

 관계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1시쯤 점심을 먹어 눈이 감기는 시간대였다. 청중들도 꽤 있었고 강사분도 괜찮은 분이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강연 도중 팔짱을 낀 채로 두 눈을 감았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나의 정적(靜寂)과 악수를 나누고자 했다. 그러나 수면 아래 의식이 잠길 찰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관된 톤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강연자의 목소리 톤이 조금은 올라가서였을까. 잠이 확 깨어 의자 옆에 놓인 물 한 잔을 마시고 기운을 내어 다시 강연을 들었다.  


 강연자는 종이컵과 실을 꺼내어 실 전화기를 만들며, 어렸을 적 친구들과 실 전화기 놀이를 했던 추억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간단히 실습을 하고자 청년 한 명을 섭외해 강단에 세웠다. 두 종이컵 사이로 실이 있었고 종이컵 너머로 강사와 한 청년이 있었다. 


 두 사람이 종이컵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서로가 어떤 말을 했는지 확인해보니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청년의 목소리도 연사의 목소리도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연사는 청년을 강단에서 내려보내고 실 전화기로 청년과 대화를 나눌 때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실을 살짝 느슨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 전화기는 우리의 관계와도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70여 분의 강연이 끝나고 나는 ‘관계의 팽팽함’에 파묻혀 눈물을 쏟았다.  


 두 손을 포개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고 싶었던 그 사람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사람이 우리의 관계를 팽팽하게 잡아당길 때, 나는 느슨하게 풀었고 내가 팽팽하게 잡을 때면 그 사람이 느슨하게 줄을 풀었던 그러한 때를 말이다. 


 집에 돌아와 생각을 정리하며 어릴 적 했던 테니스 레슨을 떠올렸다. 당시 선생님은 타이밍을 강조하셨다. 공이 라켓에 오는 순간을 잘 맞춰 팔을 정확히 움직여야 적은 힘으로 공을 날릴 수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런데 테니스만이 타이밍이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나는 ‘다시 한번 더 나에게 공이 던져진다면 그 사람과의 실을 팽팽하게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슬프고도 행복한 하루에 쌓여 오늘 밤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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