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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26. 2022

꿈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서른한 번째 책 <플레이 볼>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어릴  꿈이 축구선수였습니다. 축구를 워낙 좋아하던 어린 아이라 당연히 축구선수를 꿈꿨죠. 학교 축구부에 가입하겠다는 저에게 어머니는 일류 축구선수가 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절절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축구하는 게 좋았고 그래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꿨던 저는 축구를 하는 일이 단순히 좋아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그때 이후로 접게 되었고 저는 이렇게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플레이 볼>의 주인공 한동구는 야구선수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야구가 좋아 야구부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계속 야구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동구에게 동구의 아버지는 "열심히 한다고 되는 건 아니야. 최선을 다한다고 최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동구는 그런 아버지에게 "그라모 어짜라고?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거가?"라고 답하죠. 동구도 동구 아버지도 서로 이해가 갑니다. 우리에게 좋아하는 일을 꿈꾸는 건, 사치일까요? 아니면 최고가 되지 못하더라도 가치가 있는 일일까요? <플레이 볼>은 6학년 야구부 주장 한동구의 시선에서 그 물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책입니다.


한동구는 구천초 선발투수이자 4번 타자 즉, 에이스입니다. 실력이 좋은 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야구를 하고 있죠. 별 볼일 없었던 야구부에 새 감독님이 부임합니다. 초등 야구계의 골든 글러브라고 불리는 감독님입니다. 감독님은 '최선이 아니라, 최고가 되어라'라고 구천초 아이들에게 주문합니다. 별 볼일 없는 구천초 야구부에게는 낯선 말입니다. 감독님은 최고가 되기 위해 팀을 꾸려가기 시작합니다. 실력에 따라 아이들을 구분 짓고 라인업을 결정하죠. 그동안 붙박이 주전이었던 6학년 푸른이와 은택이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후배지만 더 실력이 좋은 희재와 남종이가 그 자리를 대신하죠. 이기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동구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함께 행복하게 야구를 했던 친구들의 라인업 제외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친구들의 속상함에 마음이 쓰이니까요.


"근데 내는 아무리 애써도 안 된다. 아무리 야구를 좋아해도 잘할 수가 없다. 진짜 좋아하는데... 진짜 잘하고 싶은데..." (127쪽)


푸른이는 좋아하는 야구를 그만두게 됩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야구를 꿈꾸기에는 실력이나 재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동구는 그런 푸른이를 말리지 못합니다. 이제 중학교 진학을 앞둔 동구나 푸른이에게 야구를 하는 일은 더 이상 2학년 때, 함께 야구를 시작했던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요. 동구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아버지의 말처럼 좋아한다고 다 잘할 수는 없다는 걸 아프게 깨닫는 중입니다. 동구도 자신의 재능 혹은 실력을 의심합니다. 영민이 때문입니다. 동구의 자리를 위협하는 영민은 야구를 시작한 지 고작 4개월입니다. 하지만 재능이 뛰어난 영민은 순식간에 6학년 아이들과의 격차를 줄이더니 팀의 에이스까지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제구가 안 되긴 하지만 빠른 구속, 홈런을 쏘아 올리는 엄청난 타격, 절체절명의 순간에 번트를 댈 수 있는 센스까지. 영민은 확실히 야구를 잘합니다. 동구가 4년 동안 쌓아온 걸 한 번에 뛰어넘을 정도로 말입니다.


기정이가 영민이를 보며 내게 물었다. "천재 아이모, 뭐꼬?" 그러게, 그러네. 그렇다면... 나는 뭐지? (106쪽)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오히려 동구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욕심이 많아지고 그 욕심은 아쉬운 실수들을 부르죠. 결국 4번 타자는 영민에게 넘어가고, 동구는 감독의 눈밖에 나 9번 타자까지 타순이 내려갑니다. 결정적인 순간의 마운드에도 투수 자리는 영민에게 양보해야 했죠. 처음으로 동구는 야구가 하기 싫어졌습니다.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전국 소년체육대회 예선전 결승이 열리던 날, 동구는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으로 가지 않고 도망을 칩니다. 동구가 향한 곳은 부산 사직구장. 이제는 야구를 그만둔 푸른이와 자주 오던 곳입니다. 텅 빈 경기장을 내려다보는데, 문득 동구는 야구가 하고 싶었습니다. 잘 못하고 지더라도 야구가 하고 싶었습니다. 동구는 꿈꾸고 싶었습니다. 꿈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동구는 꿈을 향해 서고 싶었던 것입니다. 동구는 곧장 사직구장을 나와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요.


"감독님, 인자부터 제가 던지겠습니다. 오늘 경기 끝내겠습니다." (175쪽)



가까스로 늦게 도착해 오른 마운드에서 동구는 마운드를 끝까지 지킵니다. 성적은 6실점. 구천초는 결승전에서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동구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을 잡고 던졌습니다. 야구를 향한, 꿈을 향한 동구의 순수한 사랑이 담겼으니까요. 동구는 다행히 묵묵히 패한 경기에서도 끝까지 공을 던지던 모습을 좋게 봐준 아람중 야구부 감독 눈에 들어, 동구는 아람중 야구부에 입부하게 됩니다. 아직 동구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처럼 어쩌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나마 분명한 건, 지금 야구를 그만두는 건 후회할 일이라는 것이죠.


"잘 지는 법을 알아야 된다. 질게 야구하는데,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헐타. 3할 치모 강타자다. 이대호도 열 번 중에 세 번 밖에 몬 친다 이 말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잘나갈 때도 이길 때 반, 질 때 반이다. 이기는 기야 다 잘하지. 그렇지만 야구하는 기 내내 지는 일이다. 잘 질 줄 알아야 된다. 인생은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다, 리그." (181쪽)


정답은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축구부에 들어가 축구를 계속했더라도 좋은 축구선수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동구가 앞으로 야구를 계속하면서 그만두게 될지, 아니면 프로로 입문해 선수로서 야구를 계속하게 될지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꿈꾸는 일,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언젠가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푸른이처럼 야구선수로서 포기하지만, 취미로 야구를 하게 될 수도 있고 동구처럼 끝까지 야구선수가 되는 꿈에 도전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선택했느냐 보다 중요한 건 행복하게 꿈을 꾸었다는 일이 아닐까요. 아이들의 맹랑한 장래 희망들 속에서 걱정이 앞서는 선생님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맹랑한 꿈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내가 품고 있는 하나의 꿈에 대한 가치,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꿈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플레이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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