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흘림 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이 있는 절은 부석사다. 부석사는 무량수전 앞에 탑도 없고 안에 아미타불 좌우에 협시보살도 없다. 왜 그럴까. 부석사 올라갈때 오른쪽으로 틀어 올라가면 한 스님의 비석이 있는데 거기에 그 이유가 써있다. 일승 아미타불은 열반에 들지않고 시방정토를 체로 삼아 생멸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석의 주인공은 고려 때 원융국사다. 내가 이 비석에 주목했던 이유는 공주 대통사의 대통과 같은 이름을 가진 (대통)지승불이 보이고 대통불의 큰 아들인 지적이 보여서였다. 고려 문종은 자신을 지적이라 칭하고 원융국사를 대통불이라고 하면서 마치 자식을 아버지를 받들듯 국사를 공경하였다.
백제의 '대통'사, 백제의 사택'지적'의 대통과 지적이 고려시대 원융국사비에서 다시 (대통)지승불과 지적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대통과 지적은 짝을 이루며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