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0
마음이 내내 불안했다. 아침 7시, 덜거덕거리는 홈스테이 노부부의 부지런한 소리가 내 늦잠에 스스로 죄책감을 가지게 했고, 시간은 홈스테이를 떠나야 하는 4월 29일에 점점 가까워지는 반면, 뷰잉(방을 계약하기 위해 둘러보는 것)을 다녀왔던 곳에서 연락이 전혀 없어 불안했다. 부엌에 가서 없는 재료로 어떻게 배를 채울 것인가 고민하는 것 자체가 불안했고, 정해진 집도, 일을 구할 수 있는 거주증 발급도 아직이라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어 카페로 떠나는 발걸음 자체도 불안했다. 의류매장에 비치된 갖가지 잡화들은 유독 어지럽게 느껴졌고, 공장에서 막 나온 고무 냄새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신발을 신어볼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신발 대신 울렁거리는 속을 멈추기 위해 눈을 감았다 떴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오래 감고 있으면 ‘Are you OK?’ 질문을 하며 점원이 다가올 것만 같아 그마저 금방 떴다. 금방 일어나서 아무도 들리지 않게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주문을 외운다. 그런데, 뭘 해야만 하는 걸까? 뭘 할 수 있다 주문을 외웠을까. 아! 일단 쇼핑몰 밖을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나가는 것.
‘You need to be happy.’ 또 스스로 주문을 걸다가 ‘No, no, you don’t need to be happy, just be normal.’이라고 나를 조급하게 응원하기 시작했다. 행복할 필요 없다. '보통의 하루를 보내게 해주세요.'가 나의 제일의 기도 제목. 아직 아일랜드에 도착한 지 1주일밖에 안됐지만 마치 1개월이 지난 초조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집도 구해 야하고 돈도 벌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실현하고 떠나고 싶은데 나는 지금 아무 계획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집만 구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사촌 언니에게도, 삼촌, 작은이모에게 말하면서 안심시켰지만 결국 나에게 다짐을 시킨 말이었다. 집만 구하면 먹고 싶은 음식을 내 조리도구로 요리할 것이고, 금방 짐 쌀 염려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일단 그것만이라도 해결되면 모두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불안한 마음에 더블린 단체방에 문의했고 도움 주려는 한국인 전화 통화만으로도 짧게나마 안심이 됐다. (결국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다.) 걸려온 전화 통화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양치를 하다 물 한 번 헹구고 계속 거품을 휴지에 내뱉으며 통화를 했다. 사촌 언니라면 ‘제가 양치 중이어서 5분 있다가 다시 전화드릴게요’했을 텐데, 나는 그마저 내 순서를 놓칠까 봐 치약을 삼키면서 통화했다. 영화를 보면 보통 서양인들은 한번 헹구고 바로 끝나니 이까짓 치약 삼켰다고 죽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배려 하려는 나 자신을 ‘또’ 발견했다.
전화 통화를 끊고 집 주인들에게 보낼 메시지를 정리하고 방을 구하는 웹사이트 알림 설정을 다시 했다. 그 작은 액션만으로도 집을 금방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번 달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내가 이곳에서 실현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가시화했다. 목록을 정리하니 아직 실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런을 떤 거 같아 게으른 죄책감이 덜하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지낼 의지가 가득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