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7분

내가 나를 가장 싫어하던 밤

by 마인영

새벽 2시 7분.
집은 고요했다.


아이는 잠들었고, 남편은 옆방에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 텅 빈 프링글스 통을 바라봤다.


‘조금’ 먹은 게 아니었다.
통째로 다 먹었다.


이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해야 할 걸 너무 잘 아는 사람.
일찍 자야 하고, 내일은 상쾌하게 일어나야 하고, 운동도 하고,
글도 써야 하고, 아이에게 더 다정해야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사람.

하지만 지금 나는 프링글스의 마지막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긁어내고 있었다.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자기계발 영상을 봤다.
팟캐스트를 들었고, 다짐을 써 붙였고,
‘감사 일기’를 쓰며 나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심지어 ‘끌어당김의 법칙’을 따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삶을 바꾸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 흩어진 부스러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의 증거 같다고.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꿈은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내가 기대하는 나의 모습은
매일의 피로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정작 에너지는 늘 바닥이었다.

머릿속은 항상 돌아가고 있었고,
내 하루는 늘 “해야지”와 “못했다”의 사이에서 맴돌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모든 걸 단순히 ‘나의 게으름’으로 생각했다.

“내 의지가 약해서 그래.”
“나는 왜 이렇게 꾸준하지 못하지?”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왜 나만 안 될까.”


하지만 최근 들어 몸이 이상했다.
눈은 침침하고, 머리는 묵직하고,
가슴 한가운데엔 이유 모를 피로가 늘 깔려 있었다.

운동 부족인가 싶어 PT를 끊었고,
수면이 문제인가 싶어 10시에 억지로 불을 껐다.
비타민도 챙겨 먹고, 피검사도 했다.

하지만 컨디션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단 한 번 몸이 가벼워졌던 순간은
사우디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새벽 비행, 3박 5일의 강도 높은 일정,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였는데
돌아오자마자 느꼈다.

“몸이 이상하게 가볍다.”


그때 알았다.

몸이 말하고 있었구나.
일상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는지를.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동안
내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 깨달음은 잠시였지만,
그날 밤 부엌에서 프링글스 통을 내려다보며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문제는 다이어트 실패도, 운동 부족도,
심지어는 의지의 부재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불일치’였다.
내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삶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 사이의

조용하지만 커다란 간극.



나는 늘 ‘정렬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회사에서는 전략을 맞추고, 계획을 세우며
모든 일을 완벽하게 구조화하려 애썼다.

하지만 내 삶은 늘 뒤엉켜 있었다.
현실은 지저분했고, 감정은 산만했고,
나는 늘 ‘해야 한다’는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날 밤, 프링글스 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이건 단순히 밤 늦게 과자를 먹은 죄책감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실망한 감정’의 잔해였다.

그 부스러기 속에는 내가 쌓아온 수많은 자기 부정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게으른 게 아니야.”
“지금의 나는, 마음이 정렬되지 않은 상태야.”


그 문장들을 떠올린 순간,
모든 게 설명됐다.

내가 왜 피곤한지, 왜 무기력한지,
왜 반복적으로 무너지는지.


나는 방향이 어긋난 채로
속도만 높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달려도,
결국 제자리였다.


그날 이후 나는 내 하루의 끝에

아주 짧은 질문을 남긴다.


“오늘 나는, 어디가 어긋나 있었을까?”


작은 문장 하나가 내 마음의 지도처럼 작동한다.
할 일의 목록보다,
이 질문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이제 안다.


Alignment, 정렬.


그건 완벽하게 살아가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맞추는 연습이다.



나는 여전히 종종 무너지고,
밤늦게 과자를 먹고,
게으른 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순간에도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안다.
이건 나의 불일치가 알려주는 신호라는 걸.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건
다시 나를 정렬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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