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1년 동안 보지 않았더니 생긴 일

How Silence Became My First Alignment

by 마인영

뉴스를 보지 않은 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번아웃이 깊게 내려앉던 시기, 나는 담배를 끊듯이 미디어를 끊었다. 일과 관련된 업계 소식만 예외로 두고.


예전엔 남편과 저녁 식탁 앞에서 뉴스를 보곤 했다. 정치 뉴스에 함께 열을 올리기도 하고, 사건·사고에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그러는 동안 내 감정도 그대로 끌려갔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소중한 에너지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미 바닥까지 지쳐 있었다. 친구에게 연락할 마음의 여유도 없던 시기. 그런데도 아이가 잠들면 커뮤니티 기사들을 뒤적였다. 도움이 되는 내용은 단 하나도 없는데, 습관처럼 스크롤을 내리며 또 다른 소음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감정의 작은 구멍들로 에너지가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실 뉴스는 늘 비슷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부정적인 헤드라인이 화면을 채우는 방식은 그대로다. “국제정세를 알아야 한다”,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는 말은, 미디어 생태계가 변해버린 지금, 잘 작동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더 강한 분노를 만들어내고, 더 긴 체류시간을 끌어내는 데 집중한다. 그래야 광고를 실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멈췄다.
더 이상 내 인생의 초점을 타인의 렌즈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에너지가 고갈된 나에게는, 방어가 아니라 ‘절약’이 필요했다.


놀랍게도, 뉴스와 거리를 둔다고 해서 삶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나쁜 쪽으로도, 좋은 쪽으로도.
놓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회사에서 “어제 그 뉴스 보셨어요?” 하면 그냥 그 자리에서 듣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고, 정말 큰 일은 굳이 뉴스를 틀지 않아도 주변에서 모두 알려준다.


좋았던 건 단 한 가지였다.
원하지 않는 슬픔과 무력감에 내 마음을 내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남는 시간엔 잠을 잤다. 요즘 내 취침 시간은 밤 10시다. 아이보다 먼저 잠들 때도 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커뮤니티 뒤적이다 늦게 잤네…” 같은 죄책감이 없다. 피곤함도 훨씬 덜하다.


통계적으로 보면, 이 세계는 늘 전쟁과 기근, 재난으로 흔들려왔다. 오히려 이전의 평온함이 비정상적인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지구에 사는 개인이 그 모든 사건을 실시간으로 알고 있을 필요도 없다.

물론, 그런 소식을 듣고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쉽게 흔들리는 사람.
바람의 방향을 최소한으로만 허용해야 하는 사람.
그걸 알기에 뉴스 소비를 끊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이 내가 내면의 정렬(alignment)을 찾기 시작한 첫 단추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엔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그저 “더 이상 슬픈 일은 보고 싶지 않아”라는 단순한 감정이 앞섰을 뿐.


마음의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면, 이 방식은 진짜 도움이 된다.
외부 소리의 강도를 낮출수록, 내부의 목소리는 더 분명해진다.


인스타는 못 끊었다. 예쁜 것들, 인테리어, 패션 보는 건 내 취향을 지키는 일이니까.
대신 추천 피드는 제한해두고 있다. 매달 설정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어느 순간 또 쓸데없는 영상에 낄낄대는 내 모습을 보면 놀라서 다시 ‘30일동안 제한’을 누른다.


결국 원하는 건 단순하다.
마음의 고요함.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소음을 먼저 끊어내야 한다.


마음의 고요함을 원하는 자 — 외부의 소리를 줄여라. 그것이 정렬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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