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 다시 쓰는 육아일기

9년 차 엄마. 내면아이를 돌아보는 글

by 묘연한삶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이번 달도 육아 일기를 거의 쓰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방법으로 써보기로 했다. 운전을 하면서 이동하는 시간에 음성으로 녹음을 하고 그걸 텍스트로 변환해 일기를 완성하는 방식-


분명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선 시간은 벌써 오후 2시. 어제 새벽까지 회사에서 하던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원 면접을 앞두고 작성한 에세이를 다시 읽어 보며 8년간의 일들을 떠올려본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은 부지런해야 해"라고 하루에게 말을 하곤 하는데, 그건 사실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하루는 지금의 나를 닮아서 하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아 바쁜 아이다.


반면, 어릴 적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아이였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어찌 보면 굉장히 둔한. 그냥 조용히 거기 있었던 아이. 어쩌다 나에게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건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고 하기 싫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나의 하루는 매일 무난히 지나갔다. 엄마는 어릴 적 나를 보고 "애살이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 경상도 사투리로 무언가 하고 싶은 의욕이 없다는 의미)


매일 일 벌리고 돌아다니기 바쁜 지금의 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어릴 적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무방한데, 어릴 적부터 나를 봐왔던 친구들은 모두들 너는 어쩜 그대로 똑같이 자랐냐고 말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모습을 친구들은 봤었던 걸까?




가끔 주변 엄마들에게 너는 참 육아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는 한다. 그건 단연코 나와 하루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은 이르게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늦으면 20대 30대가 되어서야 아이와의 이별을 상상해 보곤 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 이른 시기에 하루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사실이 나에겐 아니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는 누구보다 그 각각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긴다. 아침에 등교를 시키고 일을 하러 가는 순간도, 회사를 퇴근하고 하루를 만나러 오는 육아하는 시간도 소중하다. (일과 육아를 따로 할 수 있다니! 거기에 나만의 시간도 있다니!)


나의 모든 시간들이 다른 역할로써 쪼개져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본다. 내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탓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기 때문에 그저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이제는 너무 훌쩍 커버려 일방적인 육아가 아닌, 함께 하는 놀이 같은 우리의 시간이 나는 여전히 천천히 흐르길 바란다.




내 커리어의 대부분은 육아와 병행되었다. 일을 한 지 1년 만에 하루가 찾아왔고, 36살이 된 지금 경력 10년 차 그중 육아 경력이 9년 차다. 조금 이르게 와준 덕분에 하루는 내 결혼식에도 참석했고, 나의 첫 직장에도 함께 출근했다.


2017년, 첫 직장의 동갑이었던 여직원이 대표님과 결혼을 하는 덕분에 우리는 갓난쟁이 둘을 공동 육아하며 일을 해내는 메이트가 되었다.


한 명이 택배를 싸러 가면 한 명이 두 아이를 돌보고, 두 아이가 번갈아 낮잠을 자주면 그 시간을 쪼개서 일을 했다. 18개월이 된 하루를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까지 1년 여의 시간 동안 두 아이가 동시에 낮잠을 잔 건 딱 하루였다. 매일 그 짧은 한두 시간을 일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씨름을 했다.


회사 복도에는 아주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가을이 되면 창문 밖으로 노랗게 물든 단풍잎이 보이곤 했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내가 볼 수 있는 건 딱 그 창문 하나 정도의 크기인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한 시절이었다.




우리는 이제 학교와 회사,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함께 만나는 시간을 기다린다. 9년 차 워킹맘인 나의 세계와 9살 하루의 세계는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끝은 갑작스러우니까-


어릴적 나
그리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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