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박사 엄마가 읽은 『실패를 통과하는 일』

인생의 데이터를 다시 설계하다

by 첨예하니

“실패를 분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실패가 데이터였고, 재현 가능한 변수였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인생을 통과하다 보니, 실패는 통제가 아닌 감정으로 다가왔다.

박소령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펼쳤을 때, 나는 다시 그 오래된 단어와 마주했다.

‘통과’


공학자로 일하는 나는 여전히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엄마로서는 문제를 ‘함께 통과하는 사람’이 된다.
아이의 무너진 시험 점수를 마주할 때면, 나는 종종 통제 불가능한 감정의 파도를 맞는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묻는다. “나는 얼마나 잘 실패할 줄 아는가?”

박소령은 실패를 감정이 아니라 과정으로 본다.
저자는 “실패는 통과하는 일이며, 그 안에는 반드시 배움의 잔재가 남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연구 데이터를 다루는 내 일상과 닮아 있다.
한 번의 실험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연구를 중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류의 패턴을 기록하고, 다음 결과를 더 정교하게 만든다.
결국 실패는 실험의 일부이며, 인생 역시 그렇다.

이 책의 문장들은 우리 세대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언제 실패를 끝으로 보았나요?”
50대의 실패는 젊은 날의 그것보다 무겁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다시 통과하라. 그것이 당신의 리빌드다.”
공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인생은 리셋(reset)이 아니라 리빌드(rebuild)다.
실패의 데이터가 쌓일수록 구조는 더 단단해진다.


나는 때로는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또 때로는 입시컨설턴트로서 많은 학생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실패를 ‘결과’로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많다.

점수나 등급으로 스스로를 단정 지어버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런 나에게 박소령의 문장은 새로운 지도를 건넨다.

“아이들에게 실패를 분석하게 하지 말고, 통과하게 하라.”

그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내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교육의 방향이기도 하다.

실패를 평가가 아닌 ‘과정’으로, 감점이 아닌 ‘성장’으로 바라보게 돕는 일.

그것이 내가 앞으로 계속하고 싶은 진짜 컨설팅이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주도권과 책임감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이 자신을 치유하는 데 있었다고 고백한다.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기억과 반성, 잘못된 의사결정을 털어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고백이 유독 무겁게 다가왔던 건, 아마도 나 역시 인생의 키워드가 주도권과 책임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뚫고 나갈 수 있었지만, 통제력을 잃고 휩쓸려갈 때 가장 불행했다”라고 말한다.
이 깨달음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내가 직접 시작한 일이니 끝도 내가 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창업을 시작할 때부터 끝낼 조건을 미리 정해두고, 그 과정만큼은 자신이 주도해야 한다는 성찰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깊은 공감을 주었다.


저자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배움은 ‘나만의 컨피던트(confidant)’, 즉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조언자 그룹을 만드는 일이다.

10년간 고립된 의사결정이 악순환을 낳았음을 깨달은 후, 박소령은 “조언을 듣는 자문단을 만드는 것이 성장의 시작”이라 말한다.
대학원 시절 한 교수에게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으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컨피던트로 만들어라”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조언자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부끄럽고 취약하며 어리석은 부분까지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조언자 관계가 시작된다.”
나를 벌거벗은 채로 내어놓았을 때, 상대가 그것을 수용하고 도와주려는 순간, 신뢰가 쌓이고 관계는 단단해진다.
그녀는 이러한 조언자 풀을 회사의 상하관계 속이 아닌, 느슨하지만 진정성 있는 네트워크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혼자 통과하지 않는 실패’의 중요성을 배웠다.
인생은 독주가 아니라 합주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그 문장이 머리에 남았다.


“실패를 통과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통과하는 사람이다.”


이제 나는 실패를 피하지 않는다.
실패를 통과하는 나의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는 일.
그것이 내가 지금 통과 중인 인생의 다음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