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난시에 약시까지 있어 안경으로 교정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약시인데 안경을 지속적으로 쓰면서 밝은상을 보여주면 좋아질 겁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정혜원(39세) 씨는 최근 아이와 함께 동네 안과를 찾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직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안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대학병원에서도 진료를 받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처방대로 안경을 씌우긴 했지만 아이가 평소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시력에 문제가 생긴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안구 형태에 따른 굴절 이상 원인
최근 주변에서 안경을 쓰는 어린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국가적으로 실시하는 영유아 검진으로 출산 후 시력 검진 시기가 빨라지면서 시력 교정 치료를 시작하는 나이 역시 과거보다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대체로 시력이 발달하는 시기의 유아가 안경을 쓰는 경우는 TV나 스마트폰 노출에 따른 시력 저하보다 안구의 생김새에 다른 굴절 이상, 사시 등 선천적·유전적 이유가 많다.
아이들은 태어난 직후부터 시력이 발달하기 시작해 평균적으로 만 8세가 되면 시력이 완성된다. 신생아는 태어난 후 한 달까지 망막 시세포가 아직 발달하지 않아 명암만 구분할 뿐 색은 구분하지 못한다. 생후 1개월이 지나야 20~25cm 정도 떨어진 거리의 물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며 이후 점점 더 멀리 있는 물체를 또렷하게 보게 된다.
5세 이하의 영유아는 대부분 근시(멀리 있는 물체가 흐리게 보이는)가 있으며 시력이 발달하면서 점차 증상이 사라진다. 따라서 근시만을 이유로 안경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약시·사시, 시력 교정 치료 서둘러야
하지만 초점이 망막 뒤에 맺혀 가까운 곳이 안 보이는 '원시'나 한 점에서 망막이 맺히지 않고 두 점 또는 그 이상의 점에서 초점이 맺히는 '난시', 안경을 쓰고서도 교정시력이 잘 나오지 않는 '약시', 한 쪽 눈의 시선이 다른 쪽 눈의 시선과 다른 '사시'의 경우엔 안경을 이용해 시력을 교정한다.
경우에 따라 원시만 있을 수 있고 근시만 있을 수도 있다. 또 근시와 원시, 약시, 사시 모두 다 있을 수도 있다. 한쪽 눈은 원시와 약시가 있는데 다른 쪽 눈은 정시일 수도 있다.
앞선 아이의 경우 오른쪽 눈과 왼쪽 눈 모두 원시와 난시가 있다. 가까이 있는 물체가 잘 보이지 않는 '원시'와 상이 여러 곳에 맺혀 전반적으로 흐리게 보이는 '난시'는 교정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는 시신경의 문제 등이 없는데도 교정시력(안경을 썼을 때의 시력)이 잘 나오지 않는 '약시'가 있는 게 문제다.
약시는 안경을 이용해 또렷하게 보는 연습을 하면 좋아질 확률이 높다. 반면 안경을 쓰지 않아 흐릿하게 보이는 것에 눈이 익숙해지면 그대로 시력이 굳어져 청소년기와 성인이 돼서도 시력이 안 좋은 상태로 지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양쪽 눈의 시력 차가 큰 것도 약시에 포함된다. 이럴 때는 가림막 치료라고 해서 더 좋은 쪽 눈을 패치로 가리고 좋지 않은 눈만 쓰도록 유도해 양쪽 눈의 시력을 맞추는 치료를 한다.
◇1세, 3세 안과 방문 후 시력 검사 필수
약시나 사시 모두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약시는 조기 발견해 일찍 치료를 시작하면 완치율이 95%에 이른다. 하지만 시력 발달이 거의 끝나는 8세 이후에 발견되면 완치율이 23%로 떨어진다. 따라서 영유아 검진을 통해 자세한 시력 검사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3세에 안과 방문을 통해 시력 검사를 해야 한다. 사시 증상이 보이는 경우 더 빨리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가끔 교정 치료하는 아이를 둔 부모 중 눈에 좋은 음식을 찾아 아이에게 먹이는 경우가 있는데 특정 음식에 집중하기보단 고른 영양가를 섭취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행진 서울대병원 소아안과 교수는 "눈에 좋은 음식이란 딱히 없다"면서 "성장기의 아이들은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는 게 눈을 포함해 모든 신체기관에 좋다"고 강조했다.
테니스나 축구, 야구 등 야외에서 공을 이용해 하는 운동을 하면 약시와 근시에 좋다. 집중해서 공을 보면 시기능 훈련이 되기 때문. 더불어 적정한 독서를 하면 더 세밀한 시자극이 되기 때문에 약시 치료에 도움이 된다. 물론 안경을 쓴 상태라는 전제 조건 하에서다.
◇안경 쓴 아이 보면?.."안경 얘기는 피해주세요"
간혹 안경 쓴 아이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고 어린데 벌써 안경을 써서 어떻게 하냐" 등의 말을 건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이로 인해 아이가 안경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되면 교정치료가 어려워져 시력 교정이 힘들 수 있다. 따라서 안경을 쓴 아이를 보더라도 보통의 아이와 똑같이 대해야 한다. 아예 안경 얘기를 언급하지 않거나 '안경이 예쁘다/멋지다'는 등의 칭찬을 해주면 좋다.
교정치료를 시작하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어린이집 선생님과 학부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미리 상황을 알리는 게 좋다. 아이가 처음 안경을 쓰고 간 날 친구나 친구 부모님들로부터 부정적인 얘기를 듣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앞서 언급했듯 안경으로 교정치료를 하는 영유아는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노출 정도에 상관 없이 선천적으로 약시와 사시, 근시를 타고 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안경을 쓰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옳지 않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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