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아이가 다니는 기관의 형태(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를 떠나 '통학버스'를 태워 아이를 보내는 부모라면 한번쯤은 했을 만한 고민이다. 어린이들의 교통안전을 위해 노란 페인트칠은 물론 승하차 시 '어린이가 내려요 STOP'이 쓰인 빨간 표지판까지 펼쳐지는 통학버스에 왜 '어린이 전용 벨트' 혹은 '카시트'는 없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올리브노트가 서울시 마포구, 서초구, 영등포구 등에 있는 영어유치원 10곳을 무작위로 선정해 확인한 결과 통학차량에 어린이 전용 안전벨트나 카시트 등을 설치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영어유치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유는 많은 영어유치원들이 △수준 있는 영어교육 △상대적으로 뛰어난 아이들 케어 능력 등을 높은 원비의 근거로 들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 빈틈..'어린이 전용 벨트' 등 명확한 보호장구 제시 안해
원생들의 안전 문제에 민감한 영어유치원 운영자들이 통학차량 안전벨트에 신경 쓰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선 법 조항을 살펴봤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 제53조(어린이통학버스 운전자 및 운영자 등 의무)에 따르면 '②어린이 통학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은 어린이나 영유아가 통학버스를 탈 때 모든 어린이나 영유아가 좌석 안전띠(어린이나 영유아의 신체구조에 따라 적합하게 조절될 수 있는 안전띠를 말한다)를 매도록 한 후 출발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여기서 '좌석 안전띠(안전벨트)'라는 단어가 문제가 된다. 대개 부모라면 '어린이 신체구조에 따라 적합하게 조절될 수 있는 안전띠'라고 했을 때 카시트나 어린이용 안전벨트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법적으로 '어린이용 안전벨트'나 '카시트', '부스터' 등 정확한 보호장구 명이 기재돼 있지 않아 길이 조절이 가능한 성인용 안전벨트만 장착해도 문제가 없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법에 길이 조절이 가능한 좌석 안전벨트라고 명시했기 때문에 성인용 안전벨트도 상관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 운영자 "법적 문제 없는데 비용 들일 필요 없어"
이렇다 보니 유치원 운영자 입장에서 굳이 비용을 들여 어린이 전용 안전벨트나 카시트 등을 장착할 필요가 없다. 통학버스로 사용하는 승합차나 버스 등은 생산 시 손으로 직접 길이 조절을 하는 성인용 2점식 벨트가 기본으로 장착돼 있다. 따라서 3점식 혹은 4점식 안전벨트로 바꾸거나 어린이 전용 시트, 카시트 등을 장착하기 위해선 개별적으로 비용을 들여야 한다.
한 영어유치원 관계자는 "(성인용 벨트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 건의도 없었다"며 "그런 안전벨트나 카시트를 달려면 돈이 드는데 기사님과 유치원 중 어디서 비용을 지불하느냐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인용 2점식 안전벨트는 아이들이 길이 조절을 하기 힘들어 헐거운 상태로 착용할 뿐만 아니라 사고 시 목을 조르거나(3점식) 안전벨트가 위로 올라와 배를 압박해(2·3점식) 장이 파열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났을 때 2차 상해를 막기 위해선 성인용 안전벨트를 아이에게 매도록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관계자는 "어린이가 성인용 안전벨트를 착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통학버스는 어린이용 안전벨트 등 어린이를 지킬 수 있는 카시트 등의 보호 장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 어린이 연령대 다양..보호장비 필수 장착 현실적 불가능"
정부는 지난 2014년 말 통학버스로 인한 어린이 안전사고를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법(세림이 법) 개정에 나섰다. 개정된 법(앞서 살펴본 도로교통법 53조 포함) 내용은 △통학버스 신고 후 운행 △신고 시 안전조건 통과 차량 한해 운행 △통학버스 등하차 도우미 동반 탑승 △탑승 어린이 안전벨트 착용 확인 △운전자 안전관련 교육 이수 등이다.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특히 통학버스 승인을 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안전조건에 '어린이 전용 안전벨트나 카시트 등 어린이 전용 보호장구를 반드시 장착할 것'을 추가했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법이 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사실 통학버스에 타는 어린이들의 나이대가 다양하다"면서 "한 종류의 카시트를 부착해 놓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통학버스 내 유아나 어린이들이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을 때 벌금을 내도록 법적으로 규제를 한 것"이라며 "단속은 경찰이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탑승 유아나 어린이에게 안전벨트를 착용시키지 않은 채 운행한 통학버스 운전자가 경찰의 단속에 걸렸을 때 내야 하는 과태료는 6만원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결국 알맹이 없는 법적 제재 아래 현재로선 유치원과 학부모, 운전기사의 의견 조율을 통해 통학버스를 타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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