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노트 Nov 20. 2017

세상에 ‘식은 죽 먹기 육아’는 없다

아들 둘 둔 친구: "야, 넌 참 우아하게 사네. 좋겠다. 아들 둘 있어봐라. 전쟁이 따로 없다"


아들 하나 둔 회사 선배: "넌 딸 키우니까 모르지~ 이리뛰고 저리뛰고 애들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 딸들은 가만히 앉아서 노니 얼마나 편해"


딸 하나 아들 하나 둔 친한 언니 "태평이 같은 애면 셋도 키우겠다. 너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


아들 둘 둔 회사 상사 "딸 하나 키우면서 뭐 그리 난리냐. 둘 셋 키우는 사람은 죽겠다"


딸을 낳고 키우면서 난 지난날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 했던 말과 그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됐다. 그 친구는 남자들 모임에 가서 군대 얘기 나올 때가 가장 싫다고 했다. 화제가 군대로 맞춰지고 나면 그때부터 본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알만 굴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유는? 자신이 군 면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이 친구 말로는 남자들 세계에선 군대 얘기가 나오면 해병대 나온 자가 가장 큰 소리를 내고 GP 나 GOP 등 최전방 출신, 후방, 공익근무요원 순으로 목소리가 작아진단다. 그러니 '면제'인 이 친구는 아예 아무 말도 못한다고 말이다.


나는 아이를 낳은 후 이런 저런 관계(친구 선후배 등등)로 엄마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그 남자 사람 친구가 말한 소위 '보이지 않는 서열(?)'을 느꼈다. 말하자면 아들 둘 키우는 엄마는 해병대 출신, 아들 하나 딸 하나 엄마는 최전방 출신, 딸 둘 엄마는 후방 출신, 딸 하나 엄마인 나는 공익근무요원 정도랄까.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딸 엄마와 아들 엄마는 친해질 수 없다는 말도 있나 보다)


아들 키우는 엄마, 애 둘 이상 키우는 엄마들의 '헬 육아'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내 얘기는 1도 못하고 맞장구만 치다 돌아오기 일쑤다. 거기까지만 해도 좋으련만 꼭 헤어질 때 쯤 "그래 너는 그렇게 우아하게 딸 하나만 키워" 혹은 "딸 하나는 식은 죽 먹기더라. 둘째는 절대 낳지마" 등의 조언을 한다.


하나도 키우기 힘든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해한다. 특히나 그 아이들이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마구 분출되는 아들이라면 더 그럴 거다.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하며 존경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딸 하나 키우는 건 식은 죽 먹기라거나 우아하게 살 수 있어 좋겠다는 식의 말을 듣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림 보고 웃었다고 삐쳐서 놀이방으로 들어가 버린 태평이. 기분 나쁜데 사진 찍었다고 더 삐졌다. ;;;;;벌써부터 이러면 사춘기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다.

보통 딸은 아들보다 상대적으로 얌전하지만 상대적으로 예민하기도 하다.(물론 아이 성향에 따라 남자 아이도 예민할 수 있다. 모든 걸 100%라 전제하지 않겠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태평이는 소심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하루에도 몇번씩 삐쳤다 풀리길 반복한다.


태평이 같은 아이면 셋은 낳아서 키우겠다고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밥 먹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밥은 앉아서 먹는 거야. 너랑 같이 식탁에 앉아서 밥 먹고 싶어서 일찍 왔는데 이러면 엄마는 속상해"를 녹음기 마냥 셀 수 없이 무한 반복해야 했고 혼자서 일찍 잠드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지난 4년간 9시도 되기 전에 불을 끄고 강제 취침했다.


형제자매가 없어 행여나 외로울까 항상 같이 놀고 수다를 떨어야 하는 건 물론, 부모님과 이모님 도움 없이 오로지 남편과 둘이서 등원과 하원을 번갈아 하면서 서로 일이 겹치는 날엔 발을 동동 굴려야 한다. 태평이 하원 후 밥하고 설거지하고 집안일까지 하고 나면 매일 밤 체력은 바닥난다. 그래도 다음날 먹을 아침까지 준비해 놓고 나야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다. 식은 죽 먹기라고 치부하기에 '나는' 너무나 힘들고 고되다.


모든 시대의 20대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다


몇 달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현재의 20대가 역사상 가장 불행한가?'를 두고 한 대학생과 토론을 벌일 때 유시민 작가가 한 말이 있다.


난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동감한다. '조건과 상황이 다를 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진 고난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얘기는 엄마들에게도 적용 가능하다고 본다. '아이의 수와 성별, 그리고 주변 상황이 다를 뿐 모든 엄마에게 나름의 힘듦이 있다'고 말이다.


누구나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고 느낀다. 사람이라면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생각이 '나랑 다른 너는 안 힘들어 좋겠다/편하겠다'로 이어지면 불편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는 이 시대에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지'니까.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저작권자 © 올리브노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충분히 좋은 아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