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린이집 6~7세 통합반 아이들과 4시간 정도 함께 할 기회가 생겼다. 어린이집으로부터 '일일 교사' 요청을 받은 것이다. 아이가 내게 일일 교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었고 육아 전문 매체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라도 한 번은 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당일 아침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으로 올 때는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를 반성하게끔 한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8시50분~9시20분: 견학 준비
오전 8시50분에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교실로 들어가자 총 24명의 아이들 중 절반 정도가 등원해 있었다. 오전 9시 전에 오는 아이들은 아침을 먹지 않고 등원하는 경우가 많아 간단한 간식을 먹는다. 나는 눈치껏 테이블에 앉아 아이들이 간식 먹는 걸 도왔다. 20분쯤 지나자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아이들에게 단체복 조끼를 입히고 두 줄 기차로 화장실에 가서 줄을 서고 손 씻기를 함께 했다.
출발 전 어린이집 정문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향해 정식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 일일 선생님입니다. 잘 부탁해요!"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워낙 체력이 좋아 충분히 잘 할 거라고 자신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친구 엄마가 선생님이 된 게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봤다. 가장 많은 질문은 "이모라고 하면 안 돼요?"였다. 나는 당차게 "오늘은 안돼요.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답했다. 그땐 몰랐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9시30분~10시10분: 횡단보도 3번, 계단 3번, 에스컬레이터 1번 지나고 '이미 방전'
견학 스케줄은 도보로 15분 정도 이동 후 지하철을 타고 4정거장을 간 뒤 5분 정도 걸으면 있는 공원이었다. 결석한 아이들을 빼고 총 22명을 6명의 선생님이 맡았다. 1명당 3.6명의 아이를 맡은 셈. 거리도 가깝고 내가 봐야 하는 아이의 수도 그리 많지 않다는 계산이 섰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 손을 잡고 거리로 나갔다. (대체로 20명 정도의 인원이면 2~3명의 선생님이 함께 하신다고 한다. 그날은 내가 함께 해 훨씬 수월했다는 선생님들의 후일담이다)
출발한 지 2분도 채 되지 않아 내 입은 모터가 달린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뛰지 말고 빠른 걸음으로 앞 친구 뒤로 붙으세요. 줄을 서야 해요. 앞을 보고 가세요. 어어~ 횡단보도 안쪽으로!" 손은 2개인데 봐야 하는 아이는 4명 정도 되다 보니 눈과 귀, 손과 다리가 제각각 움직여도 바빴다.
안전을 위해 이동할 때는 두 줄로 서고, 횡단보도에서는 네 줄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는 한 줄로 서서 봉을 잡고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아이들을 두 줄로 세우고 선생님은 위아래 두 칸에 발을 딛고 서서 손잡이 없는 쪽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줄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의 발이 꼬이지 않게 일사불란하게 앞에서 정리를 해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 앞으로 어떻게 줄을 설지 미리 얘기하고 아이들이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했다.
횡단보도 3번, 계단 3번, 에스컬레이터 1번을 통과한 후에 드디어 지하철 개찰구에 닿았다. 등에는 땀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한 분이 표를 사러 가셨다. 아이들은 공짜인 줄 알았는데 미취학 아동은 성인 한 명당 한 명만 무료이고 나머지는 단체표를 사야 한다. 단체표를 사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20분. (그날 전산 상의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고 한다) 그동안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초가을이라 꽤 기온이 높았던 탓에 아이들이 더 지쳐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며 조금만 참으라고 다독였다.
#10시10분~10시30분: 눈치보랴 아이보랴 '긴장감 100배 지하철'
드디어 표를 산 선생님이 오시고 개찰구를 지나 지하철을 기다렸다. 담임 선생님은 "어르신들이 계시면 양보하는 거예요. 서서 가도 괜찮아요. 참을 수 있죠?" 아이들은 알고 있다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네!"를 외쳤다. 그렇게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발이 끼지 않게 조심하며 지하철에 올랐다.
좌석은 만석이었고 선생님들은 각자 맡은 아이들과 함께 안전봉을 잡고 섰다. 지하철이 출발하자 힘이 약한 아이들이 뒤로 밀려났다. 나는 아이들 뒤에 서서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게 버텼다. 다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봉을 잡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 누구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게 내심 속상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일부 승객들이 내리자 몇몇 아이들이 자리에 앉을 기회가 생겼다. 아이들 사이에 샌드위치로 낀 대학생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는 그 학생을 향해 미안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이며 아이들 다리를 학생 반대편으로 살짝 밀었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가 되자 아이들이 조금 소란해 지려고 했고 선생님 모두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줬다. 아이들은 금세 다시 조용해졌다. 혹시라도 두고 내리는 아이가 있을까 하는 걱정에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안을 살폈다. 내리고 나서도 정원을 셌다. 이번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까지 올라갔다. 3분 정도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첫 번째 관문은 안전하게 통과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0시30분~11시50분: 눈은 아이들 체크·입은 설명·손은 사진 '선생님은 신!'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누구 하나의 질문에만 대답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우고 두뇌를 풀로 가동했다. 먼저 물어본 친구에게 설명을 하면서 다른 친구의 질문을 한 쪽 귀로 들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다음 질문을 한 친구와 눈을 맞추며 설명했다. 그러길 몇 차례 아이들이 흥미가 떨어졌는지 쪼르르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을 따라 나도 뛰었다. 한낮 기온이 30℃에 이르는 날씨였던 터라 땀샘이 폭발했다.
아이들에게 잠깐 그늘에 앉아 쉬자고 했다. 몇몇이 좋다며 앉아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통을 가방에서 빼달라는 아이부터 입에 물을 넣어 달라는 아이까지 이래저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쉬는 게 아니었다. 그런 동안 다른 선생님들의 모습을 살폈다. 입으로는 설명을 하고 눈으로는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까 체크하면서 손으로는 사진까지 찍으셨다.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선생님들의 능력을 따라가보려고 해봤지만 결국 사진 찍기를 포기했다.
실외 전시를 다 보고 난 후 실내 전시를 보러 들어갔다. 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렀다. 선생님 한 분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고 한 선생님은 세면대 쪽에서 아이들이 손 씻고 나가는 걸 도왔다. 나머지 세 명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볼일 보는 걸 살폈다. 6~7세 아이들이었지만 여전히 혼자 화장실 가길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가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게 가르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모두 나간 후 남겨진 아이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체크하고 나왔다.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이미 앞쪽 아이들이 움직이고 있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따라갔다.
#11시50분~12시30분: 지친 아이 달래기 '극한직업 절감'
실내 전시실에는 중고등학생들도 많이 있어 더욱 신경 쓰였다. 혹시라도 큰 아이들에게 밀리지는 않을까 큰 아이들에 가려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해 더욱 촉각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무사히 관람을 마치고 줄을 서서 밖으로 나왔다.
여기저기서 "선생님 다리 아파요" "선생님 배고파요" "선생님 힘들어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한 아이가 다리에 매달렸다. 나머지 다리에도 다른 아이가 매달렸다. 당황스러웠지만 조금만 참자고 달래면서 뛰어간 아이들을 데려왔다.
내 뱃속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순간 '아침을 먹고 오는 거였는데 잘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체력은 바닥났는데 아이들이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내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려고 했다. '아, 어린이집 선생님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구나! 진짜 극한 직업이다!'
순간 "이제 집에 갈 거예요! 다시 줄 서세요!"라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처음엔 들은 체 만 체 했지만 선생님이 두 번, 세 번 얘기 하자 자기 짝을 찾아 순서대로 줄을 섰다.
#12시40분: 촉박한 시간에 서서 밥말아 먹는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지친 아이들은 지하철을 기다리다 주저앉았다. 나도 멍하게 앉아 있는데 순간 한 선생님이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들에게 달려가 다리를 주물러 주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평소 아이가 지쳐할 때마다 은근히 짜증을 부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내 주위의 아이들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는 기차 안에서는 많은 어르신들이 웃으며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또다시 에스컬레이터 1번, 계단 3번, 횡단보도 3번을 건너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조끼를 벗었다. 혼자 벗을 수 없는 아이를 도와주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겼다.
일정이 많이 늦어져 점심시간이 2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아 선생님들은 바로 점심 먹일 준비를 했다. 담임 선생님은 일일 교사 일정이 끝났으니 집에 가봐도 좋다고 했다. 바로 집으로 갈까 했지만 잠시 쉴 틈도 없이 또 일정을 시작하는 선생생님들한테 음료수를 사드리고 싶었다. 커피를 사들고 들어가면서 창문으로 본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밥 먹을 시간이 없었는지 일어선 채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아예 마시고 계셨다. 감사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 그리고 죄송한 마음이 한데 섞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집에 와서 밥을 먹는데 귀가 멍멍하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제정신을 차리는데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한 몸은 주말 내내 낫지 않았다. 목소리도 쉬어 잘 나오지 않았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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