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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언니 육아일기
by 올리브노트 Dec 04. 2017

나는 그렇게 친정엄마로부터 독립했다

니 새끼는 니가 키워.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된다

지난 해 여름 갑작스럽게 회사에 일이 터져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가능성은 50% 이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급한데 하원 한번은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렵게 꺼낸 나의 부탁에 돌아온 것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엄마의 대답. 처음엔 심장이 벌렁거리더니 이내 원망스러움이 밀려왔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으리라..' 그 뒤로 나는 정말 1년 동안 엄마에게 전화나 문자 한 통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독한 마음을 먹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조리원에서 나오는 날 이후부터 단 한번도 엄마에게 태평이를 맡긴 적이 없다. 조리원에서 나오기 전날 엄마는 우리집에 가서 청소를 모두 마치고 난 후 내가 오기 전에 집으로 가버렸다. 아마도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엄마는 우리집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언제나 나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엄마가 없는 육아 현실은 너무나 고달팠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한 후 돌아올 때까지 혼자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하고 밥을 먹는 일상은 날 너무나 외롭게 만들었다. 그저 엄마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육아 스트레스에 찌든 나를 살려줄 것 같았다. 그래서 힘들 때면 엄마를 찾았지만 돌아오는 건 늘 "나는 내 가족, 네 아빠 챙길 테니 너희 가족은 네가 알아서 챙겨"라는 칼같은 거절이었다.

태평이를 낳고 휴직 기간에 썼던 육아일기. 내용의 절반은 태평이 이야기, 절반은 딸에게 한 번도 오지 않는 엄마에 대한 야속함이다.

안 그래도 외로운데 주변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 서글픔까지 더해지며 내 기분은 지하를 뚫고 내려갈 정도로 가라 앉았다. 어떤 친구의 친정엄마는 멀리 지방에서 KTX를 타고와 1~2주일 아이를 봐주고 내려가시고 또 금새 또 올라오셨다. 또 친정이 가까운 친구는 아예 친정엄마 집에서 살다시피했다. 그 친구들이 웃으며 하는 "우리 엄마 낙이 애 보는 거잖아"라는 말은 내 마음을 후벼팠다. 그럴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엄마는 우리 태평이도 안 봐줄까'라는 생각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회사에 복귀한 이후엔 서글픔에 미움까지 더해졌다. 아이와 관련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딸이 열심히 살아보겠다는데 어떻게 한번을 도와주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식이란게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데 어떻게 그리 혹독한 현실을 안겨줄 수 있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터진 그날 그 사건 이후 나는 이를 악물고 내 삶에서 항상 따라붙는 옵션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를 지우려고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급할 때면 엄마 전화번호를 눌렀다가도 종료 버튼을 누르길 여러 번, 언젠가부턴 급한 일이 생기면 엄마를 떠올리기보다 나와 남편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기 시작했다. 특히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특히 나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을 것 같았던 절대적 존재에게 거절 당하는 과정이 사라지자 머리도 덜 복잡하고 마음도 덜 아팠다.

고구마줄기를 다듬고 있는데 태평이가 앞에 앉았다. 순간 어린시절 이렇게 똑같이 앉아 고구마줄기를 다듬던 나와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펑펑 울었다.

물론 현실은 '멘붕' 그 자체였다. 상사가 지나가듯 하는 '애 하나를 유난스럽게도 키운다'는 등의 말은 애교. 퇴근할 때쯤 갑자기 회의가 소집되면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해 회사로 이동한다. 그 사이 남편은 자신의 회사에서 급히 택시를 타고 와 아이를 데려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나는 회의에 늦었다고, 남편은 일찍 자리를 비웠다고 쌍으로 욕 먹는 날이다) 혹은 아침 등원 준비가 늦어진 어느날 남편이 회사 근처에 차를 세운 후 동료에게 아이를 잠깐 맡기고 출근 도장을 찍는 사이 내가 헐레벌떡 차 있는 곳으로 가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 적도 있다. 그렇게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3년 반을 버텼다.


물론 나와 남편의 노력만으로 견뎌낸 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도움은 없었지만주변의 따뜻한 마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이를 조금 늦게 데리러 간다고 연락하면 낯을 많이 가리는 태평이가 당직선생님과 둘이 있기 불편할까봐 늦은 퇴근을 자처했던 어린이집 선생님, 이유 없이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눈치껏 눈감아줬던 선배, 가끔씩 어린이집에 혼자 남은 태평이가 안쓰러워 본인의 아이와 함께 하원시키고 돌봐줬던 어린이집 친구 엄마..


이런 따뜻한 마음과 함께 무슨 일이든 우리끼리 알아서 척척 해결하면서 깨달았다. 아마도 엄마가 그렸던 큰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엄마로부터의 완벽한 독립. 그리고 강한 엄마가 된 나. 가족애로 똘똘 뭉친 우리 가족. 그걸 깨달은 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1년 만에 '엄마'를 불렀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나와 오빠를 정성을 다해 키워냈다. 그런 엄마가 장성해 결혼까지 한 딸의 딸까지 봐줄 의무는 당연히 없고, 나 역시 모자랄 것 없이 키워준 엄마에게 내 딸까지 봐달라고 주장할 권리는 없다. 엄마가 내 아이를 봐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잘못된 거였다.


당시엔 너무나 혹독했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고 우리끼리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마음도 편하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해낼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만 해도 온 몸이 다 아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재. 가족 중 누구 하나 불만 없이 각자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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