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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구 Jun 29. 2022

아시럽에서 발로 쓰는 명상록 (마지막 연재

아시럽 시민이 되어 돌아오다.


에필로그

(아시럽 시민이 되어 돌아오다.)


나는 끝장을 보기 위하여 편도 항공권을 끊어서 지구의 서쪽 끝으로 가 그곳의 지는 노을에 큰 호흡을 한번 하고는 지구의 해가 뜨는 동쪽 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구의 끝을 향해 달리며 피 터지고 대가리 깨지는 전쟁의 끝, 온갖 비열함과 저급함이 묻어있는 분쟁과 대립의 끝을 향해 끝없이 달렸다.


그렇게 달려 압록강을 건너고 대동강을 건너면 우리 선조들이 무릉도원이라 부르고 파라다이스라 부르며 샹그리라라 부르던 평화의 세계를 만나리란 믿음으로 모험에 나섰다. 떠날 때 이 모험에 모든 것을 걸었었다. 무릉도원이라 부르고 파라다이스라 부르며 샹그릴라라 부르는 평화의 세계 언덕에서 허망하게 발걸음을 돌렸지만 내 발걸음은 멈춘 것이 아니라 더 큰 희망과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지금 DMZ 구간을 달리면서 우리가 겪었던 분단의 아픈 세월을 느끼면서 모든 사람과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 모든 아픈 세월이 이제는 우리에게 약이 되어서 평화가 이 땅 위에 꽃피워 평화의 씨앗이 민들레 꽃씨처럼 비단길을 따라 흐드러지게 훨훨 퍼져나가는 세계를 그리어본다.


압록강을 바라보며 한참을 넋을 잃고 서 있다 고개를 돌렸었다. 눈꺼풀 밑으로 뜨겁게 차오르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았었다. 통일이 될 때까지는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꾹꾹 되밀어 넣고 북쪽을 향해서는 눈물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별을 위해 서울을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돌아가기 위해, 돌아가되 앞으로 세세만년 우리가 대륙으로 뻗어 나갈 그 길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왔었다.

산도 길이고 물도 길이고 하늘도 길인데 길이 있어도 못 가는 길이 있다. 내 아버지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송림 숲에 가면 왜 이리 늦었냐고 질책하며 반길 것 같은데 이리 먼 길을 달려와도 갈 수 없는 길이 있다. 남과 북 두 정상 손을 맞잡고 분단의 선을 폴짝폴짝 넘나들던 것은 지금으로서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그 먼 길을 온갖 고초 다 겪어내며 달려온 것도 지금으로선 하나의 가녀린 몸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시럽 평화의 길이 뜨거운 가슴을 가진 각자가 손을 맞잡아 만들어내는 가슴 벅찬 미래라는 것도 확인했다.


개인의 삶은 국가의 삶과 평행을 이룬다. 국가가 단절되자 내 할머니와 아버지의 5형제들의 삶도 단절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자손인 내게도 내 사촌들에게도 쫓아다녔다. 우리 땅에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이웃 동네 마실 다녀오듯이 길을 나섰다가 70여 년이나 혈육과 단절된 채로 살고 있고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불편을 견디고 이기는 사람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불편을 못 견디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이 단절의 불편부당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내가 만났던 아시럽의 자연은 폭넓은 스펙트럼의 특질을 보여주었지만, 그건 인간이 보여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린 자주 낙담하고 용기를 잃었지만 아시럽의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싸워 얻어터지고 깨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나 용기를 잃지 않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승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찼다.


현재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대부분 나라의 의원들은 전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상위 5%만 대변하는 왜곡된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전쟁의 시대에는 군 장성 출신들이 많고, 그렇지 않은 시대에는 판, 검사, 언론인, 교수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하다. 그들은 ‘법과 원칙’이라는 명분으로 칼춤을 춘다.

법과 원칙은 거미줄보다도 촘촘하여 그들이 덧씌우려 들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의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군인이나 판, 검사가 아닌 시인이 가슴을 가진 노동자, 농민, 상인, 교수가 아닌 교사, 청년, 연예인이 정치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배들이 편하게 정박할 수 있는 천혜의 군항이며 무역항이다. 그곳에서 강은도 교무님과 귀국선에 몸을 실었다. 갑판에 올라가 쓸쓸히 사방을 둘러본다. 항구는 자궁처럼 깊어서 못 이룬 혁명의 꿈을 접기에 너무 아늑해서 슬펐다. 아침 햇살에 부서지는 황금빛 가루들이 물속으로 스몄고 수면을 스치는 잔바람에 물방울이 깊은 탄식과 아우성으로 일어났다. 어려운 길이었고 잊지 못할 길이였다. 그리고 끝을 보아야 할 길이다.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어두운 밤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은 늘 보던 달이었다. 14개월을 한 걸음 한 걸음 모아 빼곡히 달려왔지만 북을 통과해서 저 태백산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한반도를 종주하고 싶은 꿈은 이루지 못했다. 갑판을 딛고 선 다리에 힘이 빠진다. 어느덧 여명이 밝아오자 저쪽으로 태백산맥의 산등성이가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온다. 밝음의 바다 저쪽에서 다가왔고 어둠은 등 뒤로 물러가고 있었다.


아버지를 평생 괴롭히던 울렁증이 내게 전이 되었나 보다. 이 울렁거림을, 처량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과연 평화는 긴 인류 역사의 물결 속에 잠시 요동치고 사라지는 물보라인가? 차가운 바람이 볼을 때리고 지나간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내 마음에 어리는 저 산 너머 마을의 아침 그림자를 흩어버리지 못한다.

그냥 동해항에 들어가 달리기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직도 긴 아쉬움이 남아 DMZ를 따라 달려 임진각에서 일단 내 달리기는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제 분단의 도시 철원으로 들어와서 철원 시민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되새겨본다. 철원의 노동당사를 지나며 그곳에 새겨진 총탄 자국과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분단의 아픔과 또 우리가 만들어 갈 평화의 세기를 머릿속에 그리어본다.


언제나 희망은 허망한 순간부터 다시 온다. 내가 달려가지 못한 그 길을 분단의 상징인 DMZ를 달리며 어머니의 외아들, 새댁의 신랑이 죽어 흙이 되고 먼지가 된 그 길을 그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니 이 빈 들판 빈 하늘에 이름 없이 뿌려진 저 영혼들이 내 발걸음을 오히려 위로한다. 이 길이 다시 열리기를 간절히, 간절히 빌어본다. 우리 앞에는 묵묵히 더 달려야 할 길이 남아 있다. 내겐 절망할 시간이 없다. 내가 가진 시간이라곤 앞을 향해 나아갈 시간밖에 없다. 나는 희망에 내 인생을 걸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발걸음을 멈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수만 년 전부터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며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한번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상처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언제나 상처를 받고 수탈을 당하며 인권을 유린당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극소수의 제국주의자들과 특권층을 뺀 인류 전체이다. 그리하여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아파하며 함께 손을 잡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아시럽 대륙을 촘촘히 달리면서 나는 저 너머에 있는 개벽시대의 아침 햇살을 언뜻 보았다. 우리가 함께 손잡고 가서 안착할 곳이다. 인디언들의 기우제는 언제나 염험하다고 한다. 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니까. 내 달리기가 그러할 것이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숨결이 거칠어져 새 숨결이 열리도록 통일이 오고 평화가 올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무더운 여름밤 사막의 한가운데, 하늘에 가득 찬 빛나는 별들과 별똥별, 광대무변한 대지에 가득한 정적과 침묵을 가슴에 품었다. 눈 덮인 코카서스산맥을 넘을 때 지나온 캄캄한 터널도 기억난다. 사람들은 내게 대륙을 무사히 횡단한 비결이 무어냐고 묻는다. 나는 답한다. 약간의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할 뿐이라고. 힘들 때마다 다가오는 새 시대를 꿈꾸었을 뿐이라고. 꿈은 용기를 주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며 인생을 깊고 폭넓게 한다고. 결국 꿈 하나면 모든지 가능하다고.


평화의 가치는 모든 가치에 우선하고 평화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며 지속적이고 대대손손 이어나갈 것이다. 이 귀한 가치가 한반도에서 폭발적으로 새로워져서 비단길을 타고 퍼져 나갈 것이다. 평화 그 안에서 용솟음쳐 오르는 기회와 환호의 탄성이 울려 퍼질 것이다.

저 간절한 달리기라니! 고동이 울리자 새가 날아갔다. 내가 세상을 한 바퀴 달렸다고!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따분해질 때쯤이었고, 더 드높은 자유가 필요할 때쯤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날아오르는 일은 새의 전부였고 모든 걸 바친 몸부림이었다.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 그런들 닿는 것은 없다. 낙담하여 날갯짓을 잊어버린 새는 수직으로 낙하한다. 떨어지며 아련하게 꿈꾼다.


밤하늘의 별 하나가 어둠을 밝혀 주리라 믿지 않지만 어떤 별은 사람들에게 방향을 알려준다. 한 사람의 달리기, 그 이상이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멀지 않은 냄새


희망과 좌절은 언제나 한 몸

허망한 발길을 돌리며

동공이 풀린 눈으로

푸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니

촛농 같은 눈물 흐른다.


물결에 튕겨 나온 빛의 입자들

허파에 스미고

싱그러운 바닷내

새 시대의 싱그런 냄새

그리 멀지 않은 냄새였다.


새로운 시대가 먼 바다로부터

아침햇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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