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찐짜오 베트남! 깜언 베트남!
평소에 존경하는 조헌정 목사님과 나를 태운 비엣항공 조종기는 안개가 낀 하노이 상공에 진입하더니 노이 바이 공항에 마치 한 마리 나비가 연꽃에 내려앉듯 사뿐히 내려 앉혔다. 공항에는 장은순 한인회장과 원불교 하노이 교당의 한화중 교무 그리고 교민회와 베트남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는 팜티너 씨 등이 환영 나왔다. 그녀는 교민사회에서는 영찬엄마로 불리며 궂은일을 도맡아서 처리해준다고 한다. 그녀는 90년대 초 한베수교가 되기 전 베트남 국비장학생으로 뽑혀 한국에 유학을 왔다. 한국 남자의 줄기찬 구애가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서자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물결이 마치 용솟음치는 용의 모습처럼 웅장하고 활기차게 도로를 메웠다. 바로 한인회관으로 가서 한인회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 저서 ‘유라시아 비단길 아시럽 평화의 길’1, 2, 3권을 한인회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한인회는 두 달간 베트남 일정에 도움을 약속하고, 한인 슈퍼마켓을 베트남 전역에 136개나 가지고 운영하는 고상구 회장은 베트남을 달리는 두 달여 동안 필요한 음료수와 각종 식료품을 지원해주기로 하였다.
베트남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세계 초강대국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기어코 통일을 이룩해낸 그 정신과 기상이다. 베트남에서 내가 진정 배우고 싶은 것은 용서하고, 벌하며 화합과 조화로 초고속 성장을 이룩해내는 강인한 의욕이다. 베트남을 남에서 북으로 온전히 두 달을 달리며 베트남의 구석구석 엿볼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극심한 고통과 절망의 자취가 서려 있는 곳에 사실은 지고지순한 아름다움과 신성함이 있다는 보석 같은 진리를 알아내고야 말 것이다.
다음날 오전 하노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천년사찰 팝 반 파고다(Phap Van Pagoda)의 주지스님 틱 탄 후인(Thích Thanh Huân) 큰스님의 초대를 받고 만나 환담을 나누었다. 사찰은 원래 천년고찰인데 전쟁 때 폐허가 된 것을 중건했다고 한다. 베트남 불교 승가집행위원회 국제불교이사회 상임부위원장이신 베트남 인민들의 존경을 받는 스님이다. 우리들의 면담 요청으로 라오스 일정을 뒤로 미루고 우리 일행을 맞아주셨다. 스님의 어린왕자처럼 천진한 미소 속에 성직자의 경건한 미소와 전쟁을 겪으면서 고난 받는 신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일으켜 세운 목자의 따뜻함이 베어 나왔다.
이 자리에 원불교 한화중 교무와 전 명동 향린교회 담임목사이셨던 조헌정 목사가 동행하여 종교를 초월한 평화 담론의 장이 펼쳐졌다. 틱 탄 후인 스님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싸우던 두 아들을 화해시키는 어머니의 일화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우리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아직도 서로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는 현실을 같이 아파하고 있다고 하셨다.
스님은 하늘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폭탄이 우박 쏟아지듯이 쏟아지고 섬광이 번개처럼 하늘을 뒤덮을 때면 폭탄 하나의 값이 병원 하나의 값이요, 학교 하나의 값이 될 텐데 폭탄 대신 병원이나 학교를 세워주었으면 미국에게 저주 대신 감사의 절을 올렸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스님은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한다고 했다. 먹을 음식과 분유 그리고 의료용품을 꾸준히 지원하는데 그 돈이 핵개발에 사용될 것을 염려된다고 하자 조헌정 목사가 식품은 결코 핵이 되지 않으니 염려 말고 북녘의 동포들을 도와주시면 우리는 결코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전쟁도 평화도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미음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하여 각자의 믿음에 따라 다 같이 묵상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의해서 그렇게 하였다.
스님이 베풀어주신 오찬은 아마 내가 받아본 최고의 오찬이었다. 사찰음식답게 채식으로만 꾸려진 식단을 우리의 눈과 혀끝에 감동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하노이에서 베지타리안 음식 최고의 음식점을 경영한다는 분을 특별 초대해 음식을 조리하였다. 조헌정 목사가 제의해 떼제 공동체의 노래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날님께서 계시도다.’란 노래를 식사 전에 불렀다.
결코 남 앞에 비굴하지 않은 베트남의 꼿꼿한 정신이 전쟁을 이미 오래전에 끝내고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게 했다. 아비규환의 비명소리, 흥건하던 핏자국도 지워지고, 시시때때로 고막을 터트리던 폭탄 소리도 잦아들었고, 제멋대로 널브러졌던 일상들도 제자리를 찾았다. 전쟁의 영웅들의 훈장은 장롱 속에서 녹슬어가고, 간혹 전쟁을 옛사랑을 추억하듯 추억할 뿐 추억은 책갈피에 꽂아둔 은행잎처럼 색이 바라고 일부의 추억은 낙엽처럼 떨어져 날아가기도 했다. 사진도 색이 바라고 가슴을 도려내던 슬픔도 오랜 수채화처럼 색이 바랬다.
내가 다시 그런 것들을 회상하면서 달려가고자 하는 이유는 그런 전쟁의 참화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미국이 저지른 여러 비도적적인 전쟁 가운데도 상징적인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우리의 역사를 반성을 담아내려 한다. 미국의 최신식 살상 무기에 맨주먹으로 맞서 이룩한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통일을 우리의 평화통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내려 한다.
안중근 선생이 꿈꾸던 ‘동양평화론’을 어떻게 구현해낼까 하는 화두를 가슴에 안고 우리와 문화와 정서가 가장 비슷한 베트남을 종단할 것이다. 가까운 21세기 아시아는 다양한 문제들과 역동적인 가능성이 공존하는 현장이다.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아시아는 인종도 다양하고 그만큼 문화도 다양하고 종교도 다양하다.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도 다양하다.
여기에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재등장은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내기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경계를 이루는 산맥은 높고 강은 깊고 거칠며 바다는 넓었고 태풍은 사납다. 꿈틀대고 일어서는 중국의 대국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 거기에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몸부림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비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통합 아시아는 가능한가? 아시아 공동체의 탄생은 정녕 꿈에 지나지 않는가? 그러나 세계화와 정보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며 물적, 인적, 정보의 교류를 통해 상호 유대감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동과 교류는 경계를 허무는 일에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대중문화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 도도한 물결을 이루고 있다.
평화에 대한 염원에 망상에 빠진 나는 기사(騎士) 이야기책을 탐독하다가 망상에 빠져서 여윈 말 로시난테를 타고 물레방아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처럼 달려갈 것이다. 통일에 대한 구상에 심취해 있다가 불현 듯 떠오른 생각, 로마교황청까지 유모차를 밀고 한 손에는 교황님께 판문점에 오셔서 평화의 미사를 집전해 주십사 하는 청원서를 들고 나의가슴에는 평화의 창을 들고 뛰어갈 것이다. 평화가 오는 그날, 만인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고 떼창을 부르는 그날까지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