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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구 Feb 25. 2022

아시럽에서 쓰는 명상록 97

방황하는 호수 로프노르

      (방황하는 호수 로프노르)     

 하늘이 대지와 사랑을 나눌 때면 사막에 은근한 바람이 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이 마치 지구를 벗어나 어느 낯선 행성에 홀로 와 있는 것 같이 주눅이 들게 한다. 이 오래된 비단길을 누에처럼 꿈틀거리며, 걷는 속도로 달리노라면 작은 모래 입자가 나직이 물결치곤 한다. 별빛을 감춘 하늘이 벅차도록 푸르렀다.


 사랑 잃은 발걸음이 황량한 사막에서 사랑을 찾는다. 마른 근심도 질퍽거리는 우울도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아간다. 나는 먼지가 되어 당신의 가슴에 추억으로 쌓이고 싶어라! 얼마나 많은 강물을 흘려보냈으며, 얼마나 많은 비를 빼앗겼던가?     

 전설처럼 시들어가던 청춘의 푸르른 꿈이 몇 년 전 미국의 모하비 사막을 달리면서 고목에 싹이 트듯이 다시 싹을 틔워냈었다. 지금 달리는 이곳 샨샨현은 2천 년 세월에 묻히고 모래에 묻힌 전설이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달린 곳이다.


 허물어진 흙벽돌 벽 사이로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건너온 모래바람이 스며든다. 사막에 서면 나의 찌질하고 누추한 삶마저 기름져 보여 왠지 우쭐해진다. 순간 가벼워진 영혼은 두 날개를 펼치고 그리움을 찾아 날아오른다.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모래 언덕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사막은 그대에게 선물을 안겨 주고 그대를 변화시킨다. 그대 자신에 몰입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싸우며 갈증으로 들끓는 사막을 횡단하라.” 그러나 사막의 아름다움은 아무에게나 허락하는 만만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 절대의 두려움과 고독함, 바람과 태양의 열기를 이겨낸 자만이 즐길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사막은 고독한 어부에게 만선의 기쁨을 안기는 바다이다. ‘어린 왕자’는 말했다.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픈 풍경이다.”


 고독은 사람마다 있을 터, 고독을 운동화 끈에 매고 달리다 보면 민들레처럼 바람에 다 날아가 버리고 가슴에 노란 꽃이 피기도 한다. 열사의 바람이 부는 사막을 달리다 포도밭 옆을 지날 때면 포도밭에서 숲에서 나오는 듯 시원한 바람이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포도밭 고랑마다 풍부하게 흐르는 관개수로의 물 또한 바라만 봐도 시원하다.

 그러나 바라만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금 더 지나가다 보니 맑게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전설 속의 ‘누란의 공주’가 나를 유혹하듯이 치명적인 유혹을 한다. 나는 신방을 차린 새신랑처럼 급하게 웃통을 벗고 어머니의 양수처럼 시원하고 안락한 물과 몸을 섞는다. 절대 고독의 사막을 달리다 만나는 개울물에 미역을 감는 이 시원하고 상쾌한 맛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설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영험(靈驗)한 물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씻는다.     


 샨샨현은 투루판에서 남쪽으로 불과 6~70km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해발 2,300m의 안데스산맥 꼭대기에는 오랫동안 전설로만 존재하던 신비의 도시 마추픽추가 있다면 중국의 신장 지역 샨샨현 사막에는 전설로만 존재하던 ‘누란왕국’이 있었다. 누란왕국이 사막에 휩쓸려가는 위기에 처했을 때 누란의 공주가 자신의 영혼을 사막에 바칠 테니 지켜달라고 소원해서 지켜냈다는 전설을 머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막은 이곳에서 시작하여 둔황까지 어떤 굳은 의지도 좌절시킬 만큼 길게 이어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뜻의 쿠무다크 사막은 이곳의 남쪽에 위치한다.


 로프노르 호숫가에는 누란이라는 작은 오아시스 나라가 있었다. 평화롭게 살던 누란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흉노와 한나라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왕의 아들 중 하나는 흉노에, 다른 하나는 한나라에 인질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란의 왕이 죽자 흉노에 볼모로 보내졌던 안귀가 왕위에 올랐다.

 안귀는 왕위에 오른 후 한나라를 멀리하고 흉노에 유리한 정책을 폈다. 그러자 한나라는 안귀를 죽이고 한나라에 인질로 갔던 안귀의 동생 위도기를 왕위에 앉히고 말았다. 한나라에 의해서 왕위에 오른 위도기는 한나라의 협박으로 로프노르에서 멀리 떨어진 샨샨이라는 곳으로 나라를 이전해야 했다.

 누란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오던 정든 로프노르 호숫가를 떠나며 눈물을 쏟아냈고 안귀의 부인은 안귀를 그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란 사람들은 왕비의 시신을 호수의 전경이 제일 아름답게 바라보이는 언덕에 묻어주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누란의 기억도 로프노르의 기억도 없이 살아갔지만 그 왕비의 이야기만은 누란의 공주의 전설로 변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누란왕국은 실크로드의 동쪽에 있는 요충지로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들은 누란왕국에서 머물며 먼 여행 떠날 채비를 하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여름의 찌는 더위와 한겨울의 혹한, 지독하게 건조한 기후,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과 소금 들판만 존재한다. 법현은 불국기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아득히 펼쳐진 사막 위에 어디쯤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죽은 자들의 해골만이 이정표였다.”라고 이곳을 묘사했다.

 타림강이 동쪽으로 흐르면서 누란 남쪽의 로프노르로 유입되었다. 그러나 모래폭풍이 거세어 모래가 퇴적되면서 강물의 물길이 시계추처럼 조금씩 누란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왕복 이동주기는 15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누란에 살았던 사람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났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누란에 대한 기억도 없이 살아갔다. 누란이라는 나라는 모래 속에 묻혀 지상에서 사라졌다.   

  

 누란으로 불리는 도시국가가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이 지역에 사람들이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7세기 전후로 살았다고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고 누란의 미녀로 알려진 미라가 입고 있던 의복이 2천 년 전 무렵의 옷이라는 것뿐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곳에 기원전 176년 비로소 중국 역사에 등장한다. 그러다 누란왕국은 서기 630년에 돌연 사막 속으로 사라진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설로만 전해지다가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이 1900년 사막 속에서 누란왕국의 유적을 발견하게 된다. 사막의 모래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누란왕국의 유적지에서는 불상과 불화, 사원 유적 등이 발견됨으로써 전설로만 존재하던 누란왕국의 신비의 베일이 벗겨졌다.


 그로부터 천오백 년이 흐른 뒤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이 누란의 흔적을 찾는 탐험에 나선다. 오랜 세월 찾을 수 없었던 누란의 흔적은 그의 동료가 잃어버린 삽을 찾아 되돌아가는 길에 발견된 물줄기 하나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물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로프노르 호수였다. 방황하는 로프노르 물줄기의 그리움의 주기는 천오백 년이라고 한다. 천오백 년이 흘러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물줄기가 과연 전설답다.

 ‘로프노르’는 몽골어로 강물이 흘러드는 호수를 의미한다. 사막에 흐르는 타림강의 지류는 퇴적물이 쌓이고 가끔씩 급류가 생기면 물길이 엉뚱한 방향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방황하는 호수’이다. 사막의 풍요로운 오아시스 ‘로프노르’를 중심으로 번영한 전설 속의 국가는 ‘누란왕국’이었다. ‘누란의 위기’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으니 슬픈 전설이다.     


 이제 ‘하미’를 지나고 있다. 하미에는 하미과가 있어 거친 여정의 노고를 덜어준다. 최고의 햇볕과 설산의 눈 녹아 흐르는 물을 머금고 자라는 하미과는 참외의 일종인데 사각하고 베어 물면 은은한 향과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히 퍼진다. 한번 입에 대면 누구나 폭풍흡입하게 된다. 먹고 나서 바로 손을 씻지 않고 입안을 헹구지 않으면 그 점도에 손도 달라붙고 입안도 달라붙는다고 한다. 하미과 없는 실크로드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중국인들이 대체로 뻥이 세지만 그것만은 사실이다.

 이곳 사람들은 천 년 전부터 하미과를 먹었다고 한다. 하미과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청나라 강희제 때 하미의 지방 장관은 황제를 배알하러 베이징으로 갔다. 워낙 청빈한 사람이라 진상할 것이 마땅치 않아 하미과를 가지고 갔다. 황제에게 겨우 과일 몇 개를 가지고 온 것을 괘씸하게 여긴 관리는 이 사람을 하옥시켰다. 나중에 황제가 이 과일을 맛보고 맛이 독특하고 달콤하여 과일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때부터 이 과일은 하미에서 온 과일이라 하여 ‘하미과’라 불렸고 이 하미의 지방 장관은 옥에서 풀려나고 오히려 청렴한 그에게 상을 내려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미과의 독특한 맛은 이 지역의 토양과 일조량, 수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맛을 낼 수 없다고 한다.

 하미과도 톈산이 가져다준 선물 중의 하나이다. 톈산은 거대한 산 도적이다. 이곳은 내륙 깊숙한 곳이라 구름을 구경하기도 힘든데 그 구름이 산을 넘을라치면 구름이 가지고 있는 습기를 탈탈 털어 눈(雪)으로 빼앗아 머리에 이고 있다가 날이 더워지면 주위에 황량한 땅으로 흘려보내 주어 온갖 생령이 자라게 만든다.


 톈산은 말하자면 양산박의 송강과 오용, 이규, 노지심 등 108인의 의적과 비슷한 셈이다. 중국인들은 아마 수호지보다 톈산을 현실적으로 더 좋아할 것 같다. 톈산은 하늘의 것을 도적질해서 황폐한 대지에 나누어주는 의적이니 말이다.     


 여행자가 중국을 지나며 중국은 짝퉁의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사실이 그렇다. 짝퉁이 판을 치는 데에는 빈부격차에서 연휴 한다. 고가의 유명 제품을 갖고 싶지만 경제적 여유가 안 되는 사람들이 진짜와 유사 제품을 구입한다. 유명 제품을 모방하면서 중국은 기술력의 근육을 키워왔다.

 그러다 광둥지방의 짝퉁 생산 공장을 ‘산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모방하거나 패러디한 것을 의미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 패러디 문화가 ‘산자이’로 불리게 되면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는다. 산자이는 한자로 산채이다. 산채는 수호지의 양산박이나 임꺽정의 청석골처럼 도적 등의 산속 소굴을 의미한다.


 양산박은 늪지 한가운데 있는 산이어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다고 한다. 양산박의 산자이는 정부의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의적 송강의 이미지와 함께 불법이기는 하지만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의미하게 되었다. 주류에 저항하는 비주류의 열풍은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기간에는 산골 마을에서 주민들이 성화를 봉송하는 모습을 따라 하며 인터넷에 올린 것을 다른 마을 사람들이 따라 하기도 하면서 나름 올림픽 축하행사를 하였다. TV 프로그램을 모방한 페러디로 공영방송이 못하는 부분을 표현하며 억눌렸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세계 유명 건축물을 모형으로 만들어 거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나도 주류가 되고 싶어 하는 중국인들의 욕망과 풀뿌리 민중 정서는 풍자와 해학으로 거듭났다.     


 더 치열하게 현실 문제에 마주하려고 사막에서 방황하는 길을 택했다. 삶의 물줄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길을 나섰다. 우리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전환기 시대가 된 것을 감지하고 길을 나섰다. 방황하다 전설이 되어버린, 물줄기를 바꾸어 전설이 되어버린 호수의 이야기가 왠지 귀에 솔깃하다. 오랫동안 방황하던 우리의 역사가 이제 비로소 제대로 물줄기를 바꾸고 세계사의 전설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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