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동화 가운데 '소름을 찾아 나선 소년'이라는 재미있는 민담이 있다. 어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영리하고 지혜로워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일을 잘 해냈다. 집안에 할 일이 생기면 늘 큰아들이 그 일을 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멍청해서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었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작은 아들이 평생 사람노릇을 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큰아들도 약점이 있었는데, 겁이 많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밤에 심부름을 시키면 무섭고 소름이 끼쳐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작은 아들은 소름이 끼친다는 게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도 종종 소름이 끼친다는 얘기를 했다. 작은 아들은 소름이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기술'이 아닐까 추정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작은 아들에게 말했다. "넌 이제 몸집도 커지고 힘도 강해졌으니 밥벌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 형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나 좀 보려무나. 그런데 너는 그저 방구들만 차지하고 앉아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으니 정말 큰일이다." 작은아들은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버지. 저도 뭔가를 배우고 싶어요. 전 소름 끼치는 법을 알고 싶다구요. 전 그게 뭔지 전혀 모르고 있거든요."
아버지도 큰아들도 그 아이가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애가 될 거라고 믿었다. 결국 작은아들은 집에서 쫓겨나게 됐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에게 은화 몇 잎을 쥐어주면서 넓은 세상에 나가 소름 끼치는 걸 배우든 말든 네 맘대로 하되, 창피하니 아버지가 누군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는 길을 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소름이 끼쳤으면! 제발 소름이 좀 끼쳤으면!" 과연 소년은 소름 끼치는 법을 배웠을까?
민담의 소년처럼 나도 집을 떠나 넓은 세상으로 나간 적이 있다. 6년쯤 전에 혼자 유럽으로 한 달 여행을 갔더랬다. 벼르고 벼르던 여행이었지만 뜬구름 잡듯 상상만 했지 실제로 갈 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 어떻게 그 막연하고 대담한 계획을 실행했는지, 그런 배짱이 어디서 나왔나 모르겠다. 겁도 많고 야무지지도 못하고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게으른 내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프랑스에 내려서 마치 서울의 전철역에서 늘 타는 전철을 타는 것처럼 길도 잃지 않고 무사히 숙소를 찾아갔다. 게다가 여행 첫날 파리에서는 기차 파업을 해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노선을 이용해야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욕구에 충실히 따랐던 것 같다. 끈 떨어진 풍선처럼 한없이 떠나고 싶은 욕구,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 <방랑자 라스무스>의 라스무스처럼 방랑자가 되어서 하염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싶은 욕구에. 그러니 설레어야 마땅하지 않나? 마침내 방랑의 꿈을 이뤘는데.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파리 숙소의 침대에 누워서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와있나 싶었다. 이렇게 설레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전자책으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내가 여행하는 이유를 혹시나 김영하 작가는 알려나? 하지만 작가는 자기 얘기만 하고 내 얘기는 해 주지 않았고, 나는 여행 내내 하나도 설레지 않은 마음으로 그럭저럭 여기저기를 잘 돌아다니고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왔다. 시들한 마음으로.
책 표지는 새벽 풍경이다. 마차가 준비됐고 말을 챙기는 아빠가 있다. 노란 기름등이 밝히는 동그란 빛무리 속에 가방을 들고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 아, 아주 이른 아침에 찬 새벽 공기를 마시며 어딘가를 가는구나, 우리는 짐작한다. 푸른 새벽빛, 공기는 촉촉하고 싸늘하다. 여행자는 잠이 덜 깬 눈으로 길을 나선다. 돌아보면 우리 기억 속에는 이런 새벽길의 특별한 느낌과 냄새가 있다. 고생스러워서 다시 잠자리로 기어들어가고 싶지만 억지로 현관 문밖을 나서던 무거운 발걸음의 기억.
<한나의 여행>은 <리디아의 정원>을 쓰고 그린 작가가 합심해서 만든 또 다른 그림책으로, 리디아처럼 사랑스러운 여자아이 한나가 주인공이다. 시골집에서 혼자 외로이 도시로 와서 살게 된 리디아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한나도 편지를 쓴다. 이번에는 일기에게.
일기에게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여자애가 생일날 밤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한나는 미국에서 현대 사회로부터 자발적으로 격리되어 공동체 생활을 하는 아미시(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파) 아이다. 아미시는 아직도 마차를 몰고 검은 모자와 검은 옷차림으로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그런 한나가 엄마 그리고 엄마 친구와 함께 큰 도시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 한나는 너무나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다. '말 없는 친구' 일기에게 그날 보았던 일들을 얘기하는 것으로 그림책의 이야기는 진행된다. 멋진 옷가게를 구경하고, 길거리 핫도그를 사 먹고, 배를 타고 강을 따라내려 가며 강변의 높은 건물들을 바라보고, 수족관에 가기도 했다. 책들로 가득한 도서관과 성당에도 들어가 본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방문한 미술관에서 한나는 마을 풍경과 비슷한 그림을 보고 울었다.
한나는 숙모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오빠들이 그리워서 도시에서 보내는 일주일 동안 가족들에게 줄 시를 하나씩 써두었더랬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 두 편을 골라서, 이번 여행을 떠나게 도와준 숙모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숙모에게 주는 진짜 선물은 시가 아니라 바로 나, 한나라고 이 예쁜 아이는 일기에 적는다.
그림책의 이야기는 한나가 도시에서 보고 듣고 먹고 만난 새로운 경험들을 얘기하는데, 그림책의 그림들은 도시 풍경과 함께 아미시 마을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멋진 도시 풍경을 넘기면 아미시 마을의 농촌 풍경이 나오고, 화려한 드레스 가게 풍경 다음에는 한나의 숙모가 한나를 위해 만들고 있는 파란 아이리스 색 원피스를 볼 수 있다. 공원의 관광용 마차와 한나의 조랑말, 도시의 강변 풍경과 마을 아주머니들이 조용히 퀼트 이불을 만드는 모습, 큰 수족관과 강가의 낚시, 도시의 큰 성당과 아미시 마을의 교회 예배 풍경도 그렇게 짝이 된다. 마지막 날 한나는 미술관에서 농촌 풍경을 그린 모네 작품을 보고 있고, 그림책의 다음 장을 넘기면 똑같은 풍경 속을 밤 버스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그 안에 한나가 타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장을 넘기면 여행지에서 돌아온 가족을 남아있던 가족들이 등불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서 맞이한다. 파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노란 불빛이 무척이나 정겹다.
한나가 여행지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매일의 일기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를 보면 느낄 수 있다. 꿈을 이룬 한나가, 신기한 하루를 보낸 한나가, 내 조랑말이 그리운 한나가,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은 한나가, 내일이 그려지는 한나가, 조금 더 자란 한나가, 아쉽고 기쁜 한나가. 멋진 도시에서의 일주일이 흘러 마지막 날이 됐을 때 한나는 아쉽지만 기쁘기도 했다.
오늘은 미술관에 갔는데 우리 마을 풍경과 비슷한 그림을 보고 울었어.
소름을 찾아 떠난 소년을 소름 끼치게 만든 건 교수대의 시체들도 아니었고, 귀신 들린 성 안에서 만난 크고 검은 고양이와 개도, 내달리는 마법 침대도, 유령도, 두 동강 난 채 살아 움직이는 몸도 아니었다. 그 성에서 3일 밤을 무사히 넘기고 모험의 대가로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해서 왕이 됐는데, 아내를 몹시 사랑했지만 여전히 소름 끼친다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소년을 아내가 도와주었다. 젊은 왕이 잠들었을 때 아내는 이불을 걷어 내고 차가운 물과 잉어가 가득 든 양동이를 그의 몸 위에 엎어버렸다. 작은 물고기들이 그의 몸 위에서 펄떡펄떡 뛰었고 소년은 잠이 깨서 소리쳤다.
"오, 소름 끼친다! 소름 끼쳐! 이제 알았소, 부인. 소름이 뭔지를."
<한나의 여행>에는 지난 여행에서 내가 진정으로 찾던 게 들어있었다. 먼 여행지에서 찾지 못해 당황했던 바로 그것. 설렘. 여행 내내 마음이 덤덤하고 미진했던 것은 설렘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파리, 예술작품, 맛있는 음식, 열심히 익힌 프랑스어를 써볼 기회, 익명의 여행자로서 누리는 무한한 자유 같은 것들을 찾아 떠났는 줄 알았는데, 내가 진정 그곳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더 근원적인 것이었던 것 같다. 방랑의 마음을 부추겨서 나를 집밖으로 떠밀었던 그것. 끈 떨어진 풍선처럼 떠돌게 했던 그것. 사실은 나는 떠돌았던 게 아니라 찾아 나섰던 것이고, 소년처럼 소름이 끼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의심한다. 온몸으로 소름이 끼치고 온 존재가 잠 깨고 싶어서 모험을 찾아 떠났던 것인지 모른다.
설렘은 아주 깨끗한 마음만이 느끼는 귀한 전율 같다. 한나처럼 순수한 아이만이 느낄 수 있는 드문 것. 닳고 때 묻은 마음은 경험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이 그림책의 푸른 새벽빛과 한나의 일기가 이렇게나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일 게다. 우리가 여행에서 꿈꾸는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내면의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첫눈과 첫 만남과 첫 맛 같은 모든 처음의 깨끗함이 그리워서 나와 우리는 여행을, 영화를, 음악을, 새로운 경험을 찾는다. 순수한 마음으로 느꼈던 그 설렘이 그리워서 말이다. 심장이 두근대고 동공이 커지며 입에서는 탄성이 나오고 심지어 살갗의 솜털이 일어서기도 했던 그때의 느낌을 찾아서 우리는 찾아헤매고, 떠난다. 민담은 그걸 소름 끼친다고 표현하지만, 소름은 소년이 모르는 '어떤 기술'이 아니라 더 본원적인 것이며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지 짐작한다. 그리고 그 본질이 우리를 진정 살아있게, 깨어있게 만드는 것이리라. 소년으로 하여금 마침내 소름 끼침을 알게 해준 대상은 생명 없는 존재들이 아니라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지 않나!
소름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의 모든 경험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반응이고 상태다. 소름 끼치게 무섭고, 소름 끼치게 좋고, 소름 끼치게 싫다, 등등 어떤 경험이 극단적이 될 때 우리는 말하자면 존재 전체로 이것을 겪고 그럴 때면 우리 몸에는 소름이 돋는다. 그 덕분에 극단은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되기도 한다. 소름이 돋을 때 우리는 우리 마음의 맨바닥까지 내려가게 된다. 그래서 내 뿌리와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내 존재의 본질을 손으로 움켜쥐는 느낌이랄까,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낀다. 민담은 이것이 사람에게 극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싶다. 민담의 주인공이 마침내 훌륭한 인물로 거듭나는 과정은 소름을 찾아 나서는 여정과 겹치고, 소름을 경험하는 것으로 그의 성장은 완성된다. 그러니 소름은 최후의 가장 중요한 퍼즐조각 같은 것, 사람답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상징한다.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마음을 뒤흔드는 진앙지이자, 생기의 발원지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깨어 살아있게 하는 화산불 같은 것이어서 그걸 꺼뜨리지 않고 잘 보존할 수 있어야 우리는 사화산이 되지 않는다.
참고 자료
한나의 여행, 사라 스튜어트 글 / 데이비드 스몰 그림, 김경미 옮김, 비룡소, 2009.
그림형제 동화전집 완역합본, 그림형제 글, 김열규 옮김, 현대지성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