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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Sep 05. 2017

토스카나 숲에서 트러플 헌팅

견공 '에다'와 치안티 숲 속에서 땅속 다이아몬드 '송로버섯'을 캐다


 한 장의 포스터가 이탈리아 피렌체로 나를 이끌었다. 야생점퍼를 입은 남자의 투박하고 두툼한 손바닥 위에 소중하게 담긴 검은 보물, 트러플(Truffle). 트러플헌터와 산에 올라 세계 3대 식재료 중 하나인 송로버섯을 채취하는 경험이라니, 이것만으로도 피렌체를 방문하는 이유로 충분했다.


 푸아그라, 달팽이 요리와 더불어 트러플은 프랑스 3대 진미 중 하나다. 대학생 배낭여행자 시절 파리 트러플 판매 식재료상에 들러 비싼 가격에 요리는 감히 먹지도 못하고 트러플 오일 맛만 봤다. 밀라노 출장을 간 김에 유럽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트러플을 직접 캐서 풍족하게 맛보고 싶었다.


 ‘트러플헌터' 에어비앤비 트립을 예약한 첫날. 피렌체 레스토랑을 찾았다. 트러플헌터 길리오와의 만나기로 한 장소다. 친구가 레스토랑 주인이자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소몰리에다. 길리오가 트러플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트러플을 통째로 테이블로 가져와서 얇게 썰어 접시에 올리면 트러플의 향을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잘 어울리는 토스카나 와인을 페어링했다. 이른 저녁 이탈리아의 아페리티보(Aperitivo) 덕분에 처음 만난 티파니(샌프란시스코), 토머(텔아비브)와 여자 친구(캘리포니아), 라파엘(캘리포니아)과도 금세 친해졌다.


 땅 속에서 자라는 서양 송로버섯이라 ‘땅 속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트러플. 길리오가 천으로 싸온 블랙 트러플을 얇게 저미자 강렬한 향이 공기 중에 퍼진다. 더 진귀하고 강한 향을 내는 화이트 트러플은 10~11월에 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 채취할 수 있는 데, 아쉽게도 지금은 시즌이 아니다.


 길리오가 원래부터 트러플헌터는 아니었다. 밀라노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식재료 구매를 담당했다. 주말이면 가까운  토스카나 지역 농가를 다니며 각 마을의 독특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는 게 업무였다. 어느 날부턴가가 토스카나의 트러플에 꽂혔다. 회사도 그만두고 피렌체에서 20분 거리의 시골마을 치안티로 이사했다. 우선 민박을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레스토랑, 민박... 관광분야에 오랫동안 일해 온 그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감과 꿈이 있었다.


 트러플은 인공적으로 대량생산을 할 수 없고 돼지나 훈련받은 개를 이용해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공인된 트퍼플헌터 커뮤니티만이 수확을 사실상 독점하는 체계다. 오랫동안 이어 내려온 견고한 시스템이다. 이방인 길리오가 커뮤니티에 진입하는 건 녹록지 않았다. 몇 번이나 트러플헌터가 되는 훈련을 받으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어느 날 토스카나 트러플헌터 협회의 임원을 만나 “나는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트러플헌터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텔링과 엮어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트러플헌터라는 멋진 직업을 알리고 체험하게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자 “생각해보지 못한 멋진 아이디어다.”라며 그 임원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트러플헌터 인증을 받고 특수견도 분양받았다. 그렇게 트러플헌터로서의 그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스토리를 들으면서 다양한 트러플을 맛보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다.

 둘째 날 피렌체 기차역. 어제 사귄 친구들과 티파니의 남자 친구 패트릭을 만나 택시를 타고 피렌체 교외 길리오의 집으로 향했다. 택시기사가 헤맨 덕분에 키 작은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가 끝없이 펼쳐지고, 길가에 날렵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이는 구릉지대인 토스카나의 풍경을 마음껏 맛볼 수 있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마지막 장면에서 막시무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등장하는 낮은 언덕과 넓은 평지를 품에 안은 전형적인 토스카나 농가의 풍광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농가 앞에 <GIULIO THE TRUFFLE HUNTER> 푯말이 보이자 우린 일제히 “이~예! 마침내!”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택시가 도착하는 소리를 듣고 2층 창문을 빼꼼히 열고 길리오가 인사를 건넨다.


“하이, 웰컴!”

 인증샷부터 찍고 집으로 들어가니 길리오 보다 더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주는 견공 ‘에다'. 송로버섯 향이 멧돼지의 페로몬과 유사하다고 해서 예전엔 암퇘지를 이용했는데, 돼지는 발견하자마자 바로 먹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현재는 집중력이 뛰어나고 후각이 발달되어 트러플 향을 잘 맡는 라고토 로마그놀로 Lagotto Romagnolo 종의 개를 훈련해서 함께 헌팅을 나간다. 에다가 바로 길리오의 트러플헌터 파트너다. 황토색 털이 복실복실 거리는 에다는 산과 숲을 헤매며 트러플 찾아내는 개답게 나뭇잎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근데 에다Eda는 이제 3개월이 된 마가Maga에 비하면 아주 점잖은 편이다. 너무 어려서 아직 트러플헌터 견공 수업을 시작하지 못한 마가는 에다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놀아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데, 어찌나 귀여운지 견공들에게 온 마음이 쏠려 트러플헌팅을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트러플헌터 파트너 개는 특별한 종에서 선발되어 몇 년에 걸친 트레이닝을 받는다. 길리오는 우선 강아지가 좋아하는 달걀 모양의 초콜릿을 마당에서 던졌다. 에다가 초콜릿을 가져오면 칭찬과 함께 간식을 줬다. 점점 초콜릿을 멀리 던졌다. 익숙해지면 이젠 땅을 얕게 파서 달걀모양 초콜릿 대신에 트러플을 숨겨놓았다. “에다! 고!” 말하고 던지는 시늉을 하면, 에다가 땅위에 떨어진 초콜릿을 찾지 못해 당황하다 킁킁거리면서 땅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마당을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그러다 땅속에서 피어오르는 강렬한 트러플 향을 맡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하면, “굿 잡! 에다!” 칭찬과 함께 길리오가 트러플을 조심스레 채취하고 에다에게 상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지속적으로 훈련해 트러플 냄새에 익숙해진 에다를 데리고 숲 속에서 본격적인 트러플 헌팅을 했다. 앞으로 마가가 거쳐야 할 과정인데, 지금은 철없는 마가는 마냥 즐거운지 천방지축 거실 카펫을 물어뜯으면서 놀기 바쁘다.

 드디어 길리오, 에다의 뒤를 따라 산을 타기 시작했다. 에다가 앞장서서 산을 올라가다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뱅글뱅글 돌거나 땅을 파기 시작한다. 열 중 아홉은 벌레나 다른 동물의 흔적이지만, 한 번 정도는 기특하게도 트러플을 찾아낸다. 보통은 길리오가 손으로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내 트러플을 채취한다. 때론 에다가 트러플을 캐서 입에 가볍게 물고 있으면 길리오가 트러플에 상처가 나거나 에다가 먹지 않도록 서둘러서 트러플을 조심스레 천에 감싸 챙기고 에다에겐 잘했다는 칭찬과 간식을 챙겨준다.


“굿 잡! 굿 잡! 에다!"


 우리 모두 에다부터 칭찬하고 방금 땅에서 캐낸 블랙 트러플의 향을 맡아본다. 트러플은 15년, 20년이 넘는 떡갈나무나 헤이즐럿 나무 아래 땅 밑에서 자란다. 길리오의 뒷산에서는 에다와 함께 주로 찾는 나무가 있다. 심지어 그 나무에 이름을 붙여놨다. 트러플은 같은 나무 밑에서 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나무를 잘 기억해 두는 것도 트러플헌터로서 중요하다.

 그와 함께 산을 타면서 에다가 캐낸 트러플을 만져보고 향을 맡아서 며칠 정도 숙성되었는지 알아맞히면 트러플을 선물로 받았다. 약 일주일까지 정도를 적당하다고 보는데, 아쉽게도 토머와 난 맞추지 못했지만 집을 나서기 전에 길리오가 우리 둘을 위해서도 트러플을 선물했다.

 운 좋게 몇 개의 작은 블랙 트러플을 채취하고 길리오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땀에 젖은 옷을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제부턴 오늘 수확한 트러플에 잘 어울리는 음식을 맛볼 시간이다. 타고난 스토리텔러는 이제 뛰어난 요리사로 변신한다. 홈메이드 치즈와 살라미에 와인까지 곁들이며 우린 이야기꽃을 활짝 펼쳐낸다. 에어비앤비 트러플헌터를 시작하면서 그가 만난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이제 길리오는 토스카나의 유명인사다. 미국 유명 TV 채널에서도 촬영을 오고, 방송에도 종종 출연한다. 식사 내내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닭살스러운 자기 자랑인데도, 그가 이방인으로서 거쳐온 세월을 이해하고 보니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런던에서 요식업을 하는 패트릭은 벌써 길리오의 트러플헌터를 두 번이나 경험했다. 지난번에는 블랙 트러플을 수확하기 좋은 이월에 참여했는 데, 가끔 길리오의 트러플을 주문해 레스토랑에서 제공한다. 이스라엘에서 온 토머는 알고 보니 어머니가 텔아비브의 유명 레스토랑 주인이다. 요식업계 종사자 세 명이 테이블에 앉으니 음식에 대한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이야기 사이사이에 파스타를 끓이고 오늘 채취한 트러플을 듬뿍 갈아 테이블에 서빙을 하고 트러플 아이스크림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하니, 식당을 가득 채운 트러플의 강렬한 향취에 모두 취해버린다.

 트러플, 길리오의 이야기, 에다와 마가의 재롱에 취한 시간을 뒤로하고 길리오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친구들은 이제 다시 택시에 나눠 타고 피렌체 시내로 돌아갔다. 길리오 덕분에 평생 다시 하기 힘든 경험과 여행 추억이 하나 생겼다. 그 덕분에 피렌체 호스트 크리스티나와 마르코에서 다음 게스트를 위한 근사한 트러플 스파게티 요리 재료를 선물할 수 있었다.


 “그라찌에. 챠오, 길리오."


 


에어비앤비 트러플헌터:

Hunt for truffles in the countryside(이탈리아 피렌체- 치안티) -www.airbnb.com/experiences/266

Truffle Hunting (프랑스 프로방스- 카데네트): www.airbnb.com/experiences/46802

Truffle Experience(이탈리아 로마- 브라차노호):  www.airbnb.com/experiences/5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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