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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Sep 15. 2017

이탈리아 호수에서 할아버지와 칸초네를 부르다

꿈같았던 해질녘 이세오 호수에서 즐긴 빅 테이블 디너와 칸쵸네 합창

 밀라노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버스가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지는 호숫가에 멈추자, 가슴이 두근거린다. 쾌청한 날씨 눈부시게 빛나는 이세오 호수. 이세오 호수는 알프스 산맥에 연결된 빙하호라서 물이 맑고 깨끗하다. 호수 중앙에 위치한 시비아노섬엔 590m 높이의 산 ‘몬테이솔라’이 솟아 있다. 예전만큼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아 고즈넉하고 조용하다. 

 감탄사 연발과 함께 보트에 얼추 짐을 다 싣고 시비아노섬을 향해 ‘출~발!’을 외쳤다. 뒷 갑판에 앉아 호수를 가르며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눈부신 풍광에 선글라스를 끼고 마을광경을 감탄하며 보다가 사진 찍기 바쁘다. 보트가 지나며 호수에 긴 물 꼬리 흔적을 남긴다.  


 선착장에 내리자 호수 앞 빌라 주인 부부가 포옹으로 환영한다. 이제 3일 동안 여기가 우리집이다. 중세시대 대부호가 살았음직한 이층 빌라는 긴 복도를 따라 방이 여러 개 있다. 정면으로 호수가 보이는 앞마당을 지나 녹색빛 정원이 나타나자 숨이 탁 트인다. 매일 아침식사가 준비되는 주방을 지나면, 예전엔 마을유지들 회의나 가정예배 공간일 듯한 천장이 돔형식인 공간이 나온다. 작게 말을 해도 공간이 목소리를 키워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으니 마이크가 필요 없다.


 짐을 던지고 우선 쉬자. 호수 옆에 매트를 깔고 드러누워 태양을 즐긴다. 분홍꽃이 화사하게 핀 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이세오 호수를 바라보니 잠이 솔솔 온다. 평화로운 이태리 호숫가 오후. 앞으로 며칠간 머묾이 기대된다.

 해질녘 야외 빅테이블 디너.

 그날 밤 내가 꿈꾸던 이태리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나무에는 꼬마전구와 이탈리아 국기가 길게 늘어져있다. 긴 나무 테이블엔 와인잔과 식전빵이 일렬로 줄지어 세팅되어 있다. 나이 지긋한 이태리 할아버지들이 식전주를 드시면서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에 맞춰 이태리 민요를 합창한다. 스프릿츠를 들고 호숫가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듣는 라이브 음악. 행복하다.


Che bella cosa 'na jurnata 'e sole, n'aria serena doppo na tempesta!

(께 벨라 꼬사 나 유르나테 솔레, 나리아 세레나 도뽀 나 뗌페스타)

Pe' ll'aria fresca pare già na festa

(뻴라리아 프레스카 파레 지아 나 페스타)

Che bella cosa 'na jurnata 'e sole

(께 벨라 꼬사 나 유르나테 솔레)

Ma n'atu sole, cchiù bello, oje ne'

(마 나투 솔레, 끼우 벨로, 오이 네)

'O sole mio sta 'nfronte a te!

(오 쏠레 미오 스딴 프론떼 아 테)

'O sole, 'o sole mio

(오 쏠레, 오 쏠레 미오)

sta 'nfronte a te!  sta 'nfronte a te!

(스딴 프론떼 아 테! 스딴 프론떼 아 테!)


 영화 같은 장면에 기분이 너무 좋았나보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고등학교 때 배운 유일한 이태리 칸초네 ‘O Sole Mio’ 연주를 부탁했다. 구글 검색으로 가사를 모바일로 보며 ‘오 솔레 미오’를 함께 부른다. 작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부르다가 격려와 박수 덕분에 어느 순간 두 팔을 벌려 큰 소리로 독창까지 멋지게 노래를 마무리하니,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다.

 한껏 멋 부린 일행들은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빅테이블에 앉아 와인과 호수에서 갓 잡은 신선한 해물요리로 식사를 한다. 끊임없는 수다와 와인, 웃음소리. 어둠이 내려앉자 분위기는 더없이 무르익는다. 이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동네분들도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춤춘다. 야외 스피커에선 최신 음악이 나오고, 누군가 카디건을 벗어 길게 엮은 다음 림보게임을 시작한다. 휘파람 소리가 커져 고개를 돌려보니, 할아버지들도 허리를 최대한 뒤로 꺾어 림보를 성공하셨다. 환호성이 어둠을 뚫고 호숫가에 울려 퍼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생겼다.

 아침이다. 일어나자마자 식당 테이블보를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옆 마을에서 온 요가 선생님이 잔디 위에 매트를 깔고 요가 수련 중이다. 심호흡을 하자 상쾌하고 깨끗한 아침 공기가 몸 깊숙이 퍼져나간다. 발을 간질거리는 풀을 밟자 초록 향이 확 코로 들어온다. 명상의 시간. 이 기분이면 높은 하늘 위로 날아올라 호수를 건너 저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까지 흘러갈 듯하다.

 보트를 타고 옆 마을로 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그물 엮는 법, 종이로 꽃을 만드는 법을 배워본다. 어촌마을 주민들은 예전엔 그물을 만들어 수선하고, 종이꽃을 팔아 가계에 보탰다. 뜨개질을 하듯 여러 색을 섞어 그물을 만들어 숄처럼 어깨에 둘러본다. 오늘 밤 패션에 맞춤형 숄더다. 종이꽃 만드는 모습이 어설퍼 보였는지, 배가 볼록 나온 동네 꼬마들이 종이 돌돌 마는 걸 도와주고, 선글라스를 빌려 쓰면서 옆에서 떠날 줄 모른다. 덕분에 쉬운 이탈리아어도 배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시 찾아온 저녁. 언덕을 걸어 올라 호수를 한눈에 바라보는 전망 뛰어난 레스토랑을 찾았다. 칵테일 드레스에 꽃을 달고 초콜릿과 스파클링 와인을 즐기면서 해지는 모습을 보는 데, 이제 내일이면 이세오 호수를 떠나야 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 컴컴한 어둠 속 촛불 밝힌 테이블에 앉아 '아무래도 이탈리아 여행길 마지막엔 다시 호수 여행을 해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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