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ürcher Gallery@Soho, NY
뉴욕 재즈클럽 투어의 시작은 예상치 않게도 이름도 생소한 Zürcher Gallery. 원래는 장시간 비행을 한 도착 첫날이라 피곤할 거 같아서 공연 예약을 안 했는데, New York City Jazz Record 뉴스레터를 우연히 얻게 됐다. 뉴스레터에 실린 깨알 같은 글씨로 수많은 재즈클럽의 공연 일정 리스트를 보니, ‘빙고!’. 걸어서 10분 거리 갤러리에서 재즈 공연이 열린다. 첫날부터 운이 좋았다.
Zürcher Gallery는 파리와 뉴욕에서 운영 중인 모던 갤러리인데, 단순한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전통 갤러리보다는 즉흥적인 재즈나 새로운 음악을 하는 크리에이티브한 뮤지션과 함께 예술작품을 풀어내는 실험적인 아트 공간이다. 꾸준히 재즈 공연을 하기 때문에, 재즈 공연 뉴스레터에도 단골로 소개되고 있다.
당일 공연자는 미국 작곡자가이자 트럼펫 연주자, 그리고 작가인 Jalalu-Kalvert Nelson. 1994년부터 스위스에서 머물면서 미국 재즈씬에서 멀어졌던 그가 30년 만에 뉴욕에서 여는 두 번째 공연인데, 독일문화원 후원으로 실험적인 모던 재즈를 추구하는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즉흥연주 스타일의 재즈를 보여줬다.
아프리카와 인디언 혈통인 Jalalu-Kalvert는 자신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부터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 ‘Words by Memory and Other Words’를 최근에 출판했다. 그가 중간중간 이 책의 일부인 시를 읽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면, 그가 레지던스 작곡가로 속한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활동하는 ‘Broken Frames Syndicate’의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플루트, 베이스 클라리넷, 첼로, 바이올린, 베이스 연주자들이 번갈아가면서 자신의 음악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꽤 분주하게 연주자들이 다양한 조합으로 연주를 이어가는데, 클래식 공연과 달리 통상적인 아름다운 선율을 빗겨나가 예상치 못한 악기의 희한한 사운드를 선보여서 프리재즈 스타일의 낯선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 컸다. 덕분에 잠은 확실히 깼다.
특히 흥미로운 건 Jalalu-Kalvert와 ‘Broken Frames Syndicate’가 선사한 마지막 곡이다. 연주자들이 SoundMag이라 이름 붙인 피날레 곡을 준비하는데, 꼭 검은색 먹으로 칠한 것 같은 추상화를 바닥에 펼쳐놓는다. ‘뭘까?’ 하는 궁금증이 몽글몽글 올라오는데, Jalalu-Kalvert가 세 장의 그림을 펼쳐 보이면서, 오늘 이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할 악보라고 한다. 어떤 에너지를 뿜어낼지 서로 대략의 약속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걸 맵으로 각자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함께 사운드를 만들어갈 거다.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재즈 뮤지션만의 언어다. 그리곤 어떤 음악부터 듣고 싶은지 관객에게 고르라고 선택권을 준다. 일반적이지 않은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곡을 선택하면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뉴욕의 틀에서 벗어난 재즈씬을 경험할 수 있어서 기뻤다. 세 곡을 들으면서 뮤지션과 관객이 함께 만들어낸 이날만의 특별하고 자유로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 안에서 앞으로 며칠간 펼쳐질 뉴욕 재즈씬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을 이날 공연에 온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뮤지션들을 보면서 수줍게 순서를 기다리다 Jalalu-Kalvert에게 혹시 SoundMag을 간직할 수 있겠냐고 했더니, 기꺼이 괜찮다고 하더니 사인까지 해줬다. 함께 있던 갤러리 오너도 자기도 간직하고 싶다고 거들어서,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었군’ 싶어 서로 눈웃음을 교환했다. 덕분에 서울로 돌아가서 뉴욕 재즈 트래블의 추억을 간직할 선물 하나가 생겼다. Thanks Jalalu-Kalvert.
Zurcher Galler
33 Bleecker Street, New York
studio@galeriezurcher.com
인스타그램 @zurcher_gallery
Broken Frames Syndicate
인스타그램 @broken_frames_syndicate
Jalalu-Kalvert Ne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