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연 초보자의 반복적인 실수에 관하여
한 때 나는 스스로를 절연 전문가라고 칭했다.
하지만 절연 이후 상대들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 상태를 보면, 전문가보다 초보자에 가깝다.
절연 초보자. 그것이 절연에 대한 나의 포지션일 것이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며 동식물에는 관심이 없지만 사람을 좋아한다. 그 누구와도 엘리베이터나 밀폐된 곳에 갇혀도 1분 이내 대화를 하며 온갖 TMI까지 술술 풀어내는 놀라운 오지라퍼 기질도 보유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면에 어떤 이익 따위가 없는 정말 그 인간 자체에 관심을 갖고 좋게 좋게 대충대충 쉽게 쉽게 아무나 (경계하지 않고) 선뜻 좋아하는 모습에 20년 전 친구가 그랬다.
"다정한 호기심" 너의 닉네임으로 딱이야! 그 뒤로 SNS명은 '다정한 호기심'으로.
10대 시절부터 1-2명의 절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명에 둘러싸여 놀았다.
누구랑 누구가 싸우면 나서서 중재했으며 누가 이사 가거나 아프면 엉엉 진심으로 울었다.
사람을 보면 장점부터 찾았고 그 사람이 특히 1. 이쁘거나(미모 중시) 2. 웃기거나(유마감각 중시) 3. 특이하거나(유니크함 중시) 4. 지적인 것(책을 많이 읽고 문화적 생활 향유도가 높으면) 무조건 좋았던 것 같다.
천만다행인 것은 남자에게는 100% 그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이지. 안 그랬음 지금쯤 몇 번의 연애결혼 실패 등등이 있었을 것이다. 좋은 이별이란 없지만 아무튼 안 좋은 이별과 그야말로 관계 실패가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처음으로 절연을 한 것은 20대 시절이다. 4명이 같이 놀았는데 3명이 키가 155 정도였고, 나는 171이었다(지금은 나이 들면서 줄었다) 다른 사람들이 학벌, 외모, 집안, 동네? 등으로 자신의 친구, 주변인들을 선별하여 사귄다는 것을 나는 마흔 이후 알았다. 그전까지는 다 나같이 사람을 사귀는 줄 알았다.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자기만의 특징이 있고 누구는 이쁘거나 누구는 똑똑하고 누구는 웃기다. 그러니 모두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동창인 그녀들이 나는 그냥 좋았다. 그녀들이 내가 키가 크다고 놀리는 것도 그녀들이 작아서 열등감이 있다는 것도 나는 몰랐다. 그냥 웃어넘기고 마냥 좋아만 했다. 그러다 1명이 한국고전영화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미국 허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며 수준 낮다는 식으로 (훗날 농담이었다고 했으나) 선 넘는 말을 이어갔고 지난날 수십 번을 갸우뚱하며 얘가 착한 앤 데 왜 이러지? 를 반복했던 경험으로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내가 잠적을 하자 그 아이는 오히려 팔짝 뛰면서 분노했고 나머지 2명도 조용히 있으며 그 (작은 아이들) 3명이 자주 보며 지내는 듯했다.
그 후로 6개월 뒤, 몇 년 뒤, 싸이월드 다른 친구 결혼식 등에서 만났으나 나는 계속 차가웠고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지?라는 진부한 멘트의 문자도 씹는 냉혈한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지금까지 그녀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절연에 대한 정의와 이후 행동을 제대로 한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마흔 살 이후 수많은 절연을 하면서 초보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몇 해 전, 소위 말하는 절친과 절연했다. 일단 돌아보면 내가 그 아이를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착하고 순한 아이지만, 어두운 깊숙한 내면을 살피거나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나는 보통 관계에서 겉으로 보이는 대충 좋은 면만 본다. 입장 바꿔서 상대가 나를 신(god)처럼 내려다보며 판단 정의 내리는 것이 여간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진짜 모습=본성'을 모르는 것 같다. 특히 열등감, 자격지심, 지질함 등은 전혀 인정 자체를 하지 않고 내 눈에서 차단하여 보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상대를 더욱 나를 밟고 싶게 하는 지경에 이렇게 진화시켰던 것.
모든 관계의 불문율 중 가족을 건드리는 것은 최악이다.
자존감이나 그 사람의 어두운 면을 자기가 마치 구세주인양 내려다보는 것도 악의 축 행동이다.
십수 년 그렇게 나를 판단하고 말하는 것을 지나치고 웃고 넘기고 방치하니 상대는 내가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당연히 좋게 끝나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잘 대처한 것은 나 같으면 듣고 자살하고플 만한 본인의 과거 막말들을 내 입으로 기억해 내 재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대충대충 이 위기를 넘기고자 사과 비스름한 것으로 퉁치려고 할 때, 이별을 고하고 조용히 차단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절연 방식이다. 그것도 친했으니 이별을 고한 것. 보통은 그 정도 애정도 없으면 상대가 황망할 정로도 어느 날 나는 모든 것에서 상대가 나를 못 보게 차단한다. 사라진다.
지난 10년 간 7명 넘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었다.
"평생 잊지 않을게 이 은혜 너무 고마워 넌 정말 좋은 친구야 언니 정말 좋은 사람이야 살면서 나한테 이렇게 해준 사람 처음이야"
놀라운 것은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이 황당하게 나를 막 대했다. 결국 참다 참다 볼멘소리로 항의를 하면 "가족 같아서 그랬어 자매 같아서 너무 절친이라 그랬어."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키자. 선을 지키자. 그런 이야기는 입이 아프다. 상대가 무조건 잘못한 것도 아니다. 내가 그들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자리를 펴준 것이다. 그래 결국 내 탓이다.
_불교로 개종 강요, 명상 강요, 다도 강요, 본인이 하는 취미, 취향이 세계 최고로 우수하고 나머지는 쓰레기로 보던 수십 년 잘 지넀던 (내가 좋아했던) 후배
_몸이 아파지면서 성격이 변한 것인지 내가 십수 년을 잘 못 본 것인지 다른 사람들은 배려하고 나에게는 이런저런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막 하던 (내가 좋아했던) 동생
_취미가 100가지인 것이 재밌고 유쾌했으나 본인이 하라는 대로 안 한다며 화를 내고 내 가족일에 감히 판단하고 끼어들고 막말한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착각했던) 지인
-부모님이나 내 가족에게 이벤트 추진 선물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렇게 똑같이 해달라고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요청했던 성당 사람들..
가만 보면 그들에게 내가 공통점으로 잘. 못. 한 부분이 있었다.
그들의 참 인간됨을 살펴보지 않은 것. 그들의 겉만 대충 보고 내가 정한 기준으로 도리를 잘한 것. 그런 친절과 칭찬들로 인해 그들에게는 일생일대에 이렇게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만만한 자로 보이게 (그것이 무엇인지 100%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했다는 것.
그래서 결국 어느 시점에 불편해지면서 그들과 절연을 내가 (먼저) 고하면 상대는 그때부터 아이처럼 울면서 매달리거나, 반대로 분노하며 저주하거나, 주변을 맴돌면서 스토커짓을 하는 등(이성이 아닌 경우에도 여럿 있었다)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 그렇다면 절연 전문가가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절연 전문가는 상대가 어떤 짓거리 패악질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상대가 그런 짓을 하지 않게 잘 헤어지면 더 절연 전문가의 면모겠지만.
상대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반응도 하지 않는 것. 내 인생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전문가 일 것이다.
그럼 의미에서 아직도 막말의 대사들이 가끔 떠오르고 '정말 걔랑 연 끊기 잘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나는 절연 초보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절연은 필요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렇지만 상대가 나를 적으로 만들거나 미움의 대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아예 인간관계를 안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극 EEEE인 나로서는 그것 또한 어려운 일.
아름다운 이별은 없지만 건강한 절연을 실천하고 싶다.
아니 절연 자체를 안 하면 좋겠는데.....(결국은 초보자 마인드로군)
#절연 #좋은 이별 #내가 더 단단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