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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뮴 Dec 18. 2022

단상: 시간의 속력

노인의 하루_140121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함께 산다. 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뇌에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 머릿속에서 '사과'를 떠올렸다면 입에서는 '회사' 같은 전혀 상관도 맥락도 없는 단어가 나온다. 의사 말에 의하면, 생각과 말을 연결하는 혈관이 막혀버려서 둘을 연결하지 못한다고 한다. 거기에만 문제가 생겼다고는 하나 뇌는 역시 뇌인 건지 기억력이나 인지력도 예전 같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 씨씨티비를 설치하고, 할머니 핸드폰에 위치추적 어플을 깔고, 할머니 핸드폰에 집 비밀번호를 써드리고 카드키도 함께 넣어 두었다.


퇴근이 귀찮아 사무실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던 어제 오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점심때쯤 씨씨티비를 봤는데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시고 어디 나간 것처럼 현관에 실내화가 벗어져있어 '잠시 나가셨는가 보다.'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방금 씨씨티비를 다시 확인했는데 여전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위치추적을 했더니 핸드폰은 할머니의 침대 위에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핸드폰을 두고 나가신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19층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비상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계셨다. 아이구... 왔나, 내가 저거를 가는데 이, 저를 놓고 가서... 하며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반겼다. 웃고 있는 할머니가 너무 속상하고 서글펐다.


아빠가 돌아가신 몇 년 전, 아들 없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면서 돈이라도 벌어야 한다며 우리에게 상의도 없이 어느 날 밭에 감자 캐는 일을 하러 가신 적이 있다. 그날 고모가 할머니를 마중 나가기로 약속했는데 이 약속이 엇갈린 덕에 할머니는 그 땡볕에, 공짜로 받은 감자 한 포대를 짊어지고서, 온통 흙먼지 묻고 지친 몸으로, 혼자 집에 돌아오셨다. 그날 감자와 호미를 팽개치며 나와 고모에게 지금까지 차마 하지 못했던 속에 있던 욕과 울분을 마구잡이로 애처럼 엉엉 토해내셨다. 거기에는 다른 할머니들보다 속도도 쳐지고 움직이기도 힘들어 약속한 품삯의 반 밖에 못 받은 늙은 자신에 대한 서글픔도 들어있었고, 한두 푼 아끼겠다고 남들 다 먹는 오천 원짜리 점심 도시락도 직접 싸온 김치 도시락으로 때우던 자신에 대한 연민도 들어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당신을 홀대하고 무시하고 짜증내기만 하는 젊은 손녀 손자를 향한 날 것 그대로의 분노와 울분이 가득 차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그날의 감정이 이런 슬픈 날의 할머니를 잡아먹을까 봐 걱정됐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 상황이 서글픈 상황이라는 것도 모르실 만큼 인지가 떨어진 건지, 아니면 그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또 풍파를 겪은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헤실헤실 웃고 말으셨다. 그 모습이 조금 모자라는 사람의 웃음 같으면서도 그런 모자라는 모습을 손녀에게 보여 쑥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오래 앉아있어 잘 일어나시지도 못하는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 방에 가서 몸을 데우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핸드폰을 두고 나와 지금까지 밖에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날이라 옆라인 할머니들도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옆에 멀뚱멀뚱 몇 시간을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다른 할머니들이 빵도 나눠주고 말도 걸어줬단다. 집이 어디냐 묻는 말에 말이 맘처럼 나오지 않는 할머니는 도움을 청할 단어도 고르지 못해 그냥 저쪽이라며 손으로 가리키고 말았단다. 남들이 다 집에 갈 때쯤, 1층 공용현관을 들어온 할머니는 19층에 도착해서 다시 또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택배 아저씨가 두 번은 왔다 가고 옆집 아가씨가 집에 들어갔지만 도와달란 말은커녕 그럴 생각도 못하고 우리 연락처도 기억 못 하는 할머니는 그냥 거기 앉아있는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 봐 들어가는 척, 기억도 안나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시늉만 했다고 한다.


너희가 늦게 와서 늦게까지 기다릴 줄 알았는데 일찍 왔네,라고 자꾸 말씀하는(물론 이렇게 완벽하게 말씀하지 못했다.)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는 그럼 오늘 하루를 아무것도 안 하고, 정말 단어 그대로 가만히 계실 생각이었구나 싶었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언제쯤 이 시간이 끝나는지도 모르는 채로 조용한 계단에 앉아서 멀뚱멀뚱 벽만 보고 있었구나, 그럴 생각이셨구나. 그 생각에 울컥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과거에는 그게 고문이었다고 하던데, 생각이 더뎌진 할머니는 그 시간 속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할머니를 보면 매일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옛날에는 눈앞에 의미 없는 티비프로그램을 틀어놔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할머니가 아프시고 나서는 그마저도 잘하지 않으신다. 자세를 바꾸기도 하고 방에서 방으로 옮겨 다니시기도 하고 시간도 확인하기도 하긴 하지만 할머니는 멍하니 가만히 앉아 계신다. 시간이 가길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하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보인다. 가만히 앉아서 그저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런 자신의 처지가 어떻다 하는 감정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할머니의 하루는 얼마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을까? 나는 시간의 속력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3살 아이에게는 1년이 인생의 1/3이지만 90살의 할머니에게는 1/90이다. 아이의 하루는 아이 인생의 약 1/1000, 즉 0.1%지만 할머니의 하루는 할머니 인생의 1/32850, 전체 인생의 0.003%에 불과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 해가, 하루가 짧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빨리 지나가버리는 날들 중 오늘 하루를 할머니는, 차가운 비상계단에 앉아서 보내려고 한 거겠지. 할머니에겐 짧은 하루이니 이 하루쯤은 아쉽지 않은 걸까? 아니면 아쉽지만 오늘 하루가 짧게 끝나서 다행일까?


할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지루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짧아져가는 걸 아쉬워한들 어쩔 수 없다는 걸 아시는 걸까. 두 자녀를 먹여 살리려고 잠을 아끼며 바느질을 하던 젊은 날의 할머니에게는 하루하루가 귀하고 소중하던 날이었을 텐데... 이제는 물어봐도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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