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울란바타르와 테를지에서의 무용 레지던시
몽골이라는 나라,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3시간이면 도착하는 동아시아의 이웃 국가. 하지만 많은 것이 낯설고 우리는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참 적었다. 국제교류를 논하는 자리가 점점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제로 서로를 만나 친구가 되는 국제교류에는 여전히 미숙한 것일지 모른다. 몽골의 곳곳에 한국의 문화가 전해져 있는데, 우리는 몽골에 대해서 이렇게 아는 것이 적다는 점에서 이번 리서치와 레지던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좋은 동료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서로에게서 배우며, 함께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가는 보다 평등한 방식의 교류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컴퍼니의 몽골 레지던시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몽골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내륙 국가로,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남쪽으로는 중국과 접하고 있었다. 몽골을 이야기할 때면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 중 하나를 건설한 칭기즈 칸을 빼놓을 수 없는데, 13세기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을 세우며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리적으로 광활한 초원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비 사막이 유명한 관광지다. 바다가 없는 나라이지만 홉스굴이라는 바다와 같은 호수가 있고, 또한, 몽골 고원과 같은 고지대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비교적 덥다. 우리가 방문했던 6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이자, 우기에 해당 했는데 이 시기를 제외하고는 연간 강수량이 적어 건조한 편이라고 한다.
모든컴퍼니는 현대무용의 다양한 장르적인 가능성을 탐구하며, 새로운 일들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무용단체이다. 신작을 준비하며 창작 리서치가 진행되고 있는 작품 중 하나는 모든 컴퍼니의 스포츠 레퍼토리 중 하나로 ‘펜싱’, ‘클라이밍’에 이어 ‘씨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었는데, 문득 몽골예술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교류 사업을 알게 되어,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쩌면 몽골의 문화와 예술로부터 우리의 새로운 작업적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국제교류를 생각할 때 종종 우리는 해외 축제에 진출하는 것만을 떠올리곤 한다. 다만 앞으로의 국제교류는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모든 컴퍼니라면 좀 더 상호호혜적인, 서로로부터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교류를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모션 몽골리아 페스티벌은 매년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국제 무용제로, 다양한 국가에서 온 현대 무용을 선보인다. 현대 무용이라는 개념이 아직 예술계에 자리 잡지 않은 몽골의 특성 상 워크숍과 마스터클래스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2024년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몽골의 울란바타르 극장을 중심으로 개최된다. 2024년에는 독일, 헝가리, 한국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가의 예술가들이 몽골의 지역 무용수들과 함께 협업했다. 축제의 기간 중에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모여서 해외의 현대 무용 안무가 및 무용수들로부터 마스터 클래스 수업을 받거나, 워크숍을 통해 일부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모션 몽골리아 페스티벌의 노마딕 아트 레지던시는 창작과 교류에 집중하는 시간이자 자리가 되어 창작자로서의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국내에서는 레지던시의 참여 기회와 환경이 제한적인 바, 몽골에서의 레지던시 참여는 향후 안무가 김모든의 지속적인 창작에 주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축제 프로그램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레지던시는 울란바타르와 테를지라는 두 장소를 거점으로 진행되었다. 예술가들은 함께 도시의 공간에 방문하고, 도시에서 초원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 공유하며, 초원의 게르에서 머무르며 움직이고 공유의 시간을 보냈다. 축제에서 공연을 발표해야한다는 부담감보다, 몽골의 초원을 감각하며 밤이면 빼곡히 박힌 별들을 보았고, 몽골 전통 문화로부터 유래한 캠프 파이어와 춤을 통해 가득히 환대를 받았다. 레지던시의 목적은 유목하는 몽골인들의 정신을 따라 느리지만 다정한 호흡으로 구성되었으며, 예술가들은 레지던시에서 함께 경험한 것들을 무대 위에 올려 관객들과 공유한다.
몽골예술위원회는 이름만 보았을 때는 공공기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민간으로 20여년 간 운영되어 온 예술단체이다.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업과 후원기관 등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모션 몽골리아 페스티벌 이외에도 필름 페스티벌 등 주요한 국제 행사들을 직접 주최하고 주관하여 운영하고 있다. 몽골 현지의 해외 문화원 등이 주요 파트너이며, 울란바타르 시립극장 및 울란바타르 시립극단 (울란바타르 앙상블) 등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는 몽골예술위원회는 주로 시각 예술 및 영상 등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최근에는 해외의 무용 작품들과 축제들을 통해 몽골의 현지 예술가 및 관객들에게 국제적인 접근을 확장하고, 몽골의 현대공연예술계를 성장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레지던시에 참여한 몽골 무용수들은 울란바타르 앙상블 소속의 시립 극단 단원으로, Bayart D, Nomgonmaa J, Norvobanzad P, Enkhjargal Z. Enkhtogtokh P. 등 총 5인이었다. 각 구성원들은 저마다 전통무용, 스트릿댄스, 전통희곡 등을 두루 전공하고 무대 위에서 복합 예술 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이었다. 몽골의 전통공연을 중심으로 해외 공연 및 국제교류를 해왔던 이들이었으나 실제적으로 현대무용적인 접근을 작품에 활용한 경험은 많지 않았다. 축제 프로그램으로는 각각 울란바타르 앙상블의 짧은 작품 쇼케이스와 더불어 모든 컴퍼니 레퍼토리 공연 중 일부 시연을 진행했고, 이어서 몽골과 한국의 무용수들이 협업하여 함께 만든 안무작을 짧은 발표의 형태로 무대에 올렸다. 한국에서는 김모든 안무가와 함께 작업하는 정규연, 김래혁, 이소진, 김은주가 참여했고, 과정 기록의 역할을 겸하여 맡은 프로듀서 임현진이 함께 했다.
몽골의 문화, 유목의 여정 따라가기. 몽골은 유목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나담 축제와 같은 전통 축제와 더불어 말 타기나 활쏘기, 씨름 등의 스포츠가 중요한 공동체 집결의 역할을 해왔다. 이동과 유목이 용이한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는 전통 가옥인 게르(유르트)가 초원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몽골의 공동체는 자연의 섭리를 따라 이동하며 생존해왔다. 초원이 있는 곳에 말과 소가 머무르고, 이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머무르는 장소가 되었다. 매년 이 장소는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몽골은 광물 자원이 풍부하여 경제의 많은 부분이 광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유목업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레지던시의 기간 중에는 유목민들의 삶과 문화를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차를 타고 몽골의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러 마을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평화와 안녕을 상징하는 토템을 지나치면 마을이 하나씩 나오곤 했다. 너른 초원에서 살며 외부로부터 가족과 공동체를 지켜야 했기에 몽골사람들의 시력이 좋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리라 짐작하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풍경은 우리를 고요하게 하고, 압도하게 했다. 몽골의 인구밀도가 낮다는 것은 도시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생생하게 현실이 되었다. 도로가 있는 곳들마다 소와 말떼, 양과 야크 무리를 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거주하는 장소들은 동물들이 머무르는 곳에 비하면 아주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게르들이 이곳에 사는 이들의 수를 짐작하게 했다. 인구의 대부분이 수도인 울란바토르게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미처 이르지 못한 수많은 광야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흩어져 살고 있을지, 그 거리와 공감각을 지레 짐작해본다.
낯선 언어로 감각하기, 센베노, 바이흘라! 몽골의 언어는 낯설었다. 많은 몽골인들이 한국어를 조금씩 사용하는 것에 놀랐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는 모두 몽골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레지던시에 참여하기 전 기초 몽골어 단어들을 찾아보며 간신히 안부 인사와 고맙다는 말 익혔다. 몽골은 몽골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고대 몽골어의 문자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중국 자치구 ‘내몽골’의 몽골족들과는 달리 독립국가인 ‘몽골’에서는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대 몽골어의 문자는 부수적인 표기로 활용되거나, 전통 가옥이나 문화유산 등에서만 간간히 살펴볼 수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는 몽골의 고대 문자는 생경했다. 센베노는 안녕하세요, 바이흘라는 고맙습니다. 이 두 단어만큼은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많이 사용하며 몽골의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갔다. 낯선 언어는 비단 문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몽골과 한국의 전통, 현대, 예술의 경향을 공유하며 두 그룹의 움직임 언어를 서로 배우는 과정이 작업의 전반부를 차지했다. 몽골의 전통예술이 지닌 동작과 각 동작의 의미들을 탐색하며, 이를 새로이 모든 컴퍼니의 안무적 방향성으로 확대하며 새로이 해석했고, 장면의 구성을 의도하지 않은 배우기와 교환의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낯선 움직임 언어와 익숙해져 갔다.
테를지에서 배운 삶의 방식들 초원에서의 시간은 한국의 무용수들에게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테를지 캠프의 초원과 게르는 모두 인터넷과 전화 통신망이 안되는 곳이었다. 바쁘게, 늘 연락 가능한 상태로, 미디어와 인터넷에 노출된 상태로 지내오는 것에 익숙했던 우리가 테를지에 머무르면서는 서로의 텐트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 ‘눔고, 방에 있어? 밥 먹으러 가자!’ 마치 어린시절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몸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들이 시간을 가득 채웠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는 것 같아 초조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내 그 시간은 우리 스스로를 조금 더 또렷하게 보게 해주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작업에 집중하는 것 역시 더 자연스러웠다. 돗자리 없이 잔디밭에 드러누웠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무리 지어 풀을 먹고 있는 소떼를 만났다. 레지던시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몸에 새기게 될까. 아직도 별을 보기 위해 드러누웠던 몸의 감각이 근육 어딘가에 남아서 말을 건다.
레지던시에서 한 일들, 함께 만들어낸 장면들 워크숍의 형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서로 움직임을 배우며, 함께 만들 수 있는 장면들을 꾸리는 것이 레지던시의 주요 내용이었다면, 함께 초원에 머무르고,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서로 대화하며 보낸 시간들이 레지던시의 근원이 되었다. 도시의 사원과 골목들을 함께 누비고, 도시에서 초원으로 가는 험한 산길에서 같이 웃어제끼고, 수많은 소와 양떼, 야크들을 보며 놀라는 우리를 보고 몽골 친구들은 한참을 웃었고, 강가에서 별을 보며 같이 보드카를 마셨고, 서로가 가진 물건들을 선물로 교환했다.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잔뜩 사고, 새로운 음식들에 도전해봤고, 비슷하고도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같이 파티에서 춤을 췄고, 레지던시 공간의 주인은 우리를 보며 아껴두었던 디제이 박스를 꺼내와 즉석에서 라이브 디제잉을 펼쳤다. 인근에서 유목민으로 농장을 꾸리고 있는 가정에 초대받아 신선한 우유를 나누어 마시고, 그 집의 어린이가 말을 향해 달려가는 석양의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모든 컴퍼니의 레퍼토리 쇼케이스와 몽골/한국 협업 쇼케이스에 관객들은 큰 호응을 보냈다. 현대무용의 접근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가진 성향과 접근 방식을 받아들이고, 최선의 것을 만들어나가는 조율의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가 함께 구성한 장면에서 몽골의 관객들은 전통 양식의 그것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나갔고, 이어서 그동안의 협업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게끔 했는지,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씩 쌓아간 장면들에 함께 환호하고 격려를 보냈다. 발표는 4장으로 구성된 15분 이내의 짧은 공연이었다. 레지던시 기간 중에 나누었던 이야기들, 마주했던 순간들, 서로를 바라보며 배웠던 것들이 공연의 주요 장면이 되었다.
2024년 12월 중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모든 컴퍼니의 댄스 필름 상영과 더불어 몽골 레지던시 공유회를 별도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는 레지던시를 통해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고 나누며 무용계에 레지던시가 미치는 역할 등을 두루 이야기 나누는 캐주얼한 대화 자리로 마련된다. 앞으로 모든 컴퍼니의 여정은 어떤 곳을 경유하게 될까. 이어지는 시간들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우리가 레지던시를 통해 한뼘 더 성장했기 때문일테다.
작은 공유회를 열어 몽골의 이야기를 전했다. 창작의 과정에 투자하는 시간, 친구 되기로부터 시작하는 교류, 다양한 세상을 만나는 창 열기, 우리가 몰랐던 땅, 우정과 돌봄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시간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힘을 얻는다. 새로운 세상으로부터 배울 것, 과정을 보살피는 시간을 가질 것, 친구가 되기, 서로 다른 언어를 익히기, 낯선 세상을 더 많이 소개하기. - 그런 것을 더 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