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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골든 Nov 13. 2020

우정도 나이를 먹나 봐

반대가 끌리는 이유

얼마 전에 오랜 친구를 만났다. 스무 살 때부터 알고 지냈다. 이제는 멀리 살아서 자주 볼 수 없는 친구라 자주 가지도 않던 브런치 가게에 아침부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붙어 다닐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살아온 이력이 다르고, 살아온 장소도 겹치는 거 하나 없다. 나는 부모님과 아이 둘을 부양하는 생계형 직장인이고, 친구는 남편과 고양이 3마리와 살며 평론을 공부한다. H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책 펴놓고 허튼 생각이나 한다.’고 한다. 세상에서 공부하는 게 제일 싫었는데 대체 왜, 아직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냐며.      


여전히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달라서 재미있고, 거침없고, 들으면 신기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녀의 경험치를 존중하고, 어떤 점은 그녀와 같아지고 싶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그녀처럼 되려면 더 많은 자유로움이 필요하다.  그녀와 나는 다르다.




“멀리서 어쩐 일로 왔어?”하고 물으니,

“새 차가 생겨서 운전 연습할 겸 왔어.”      

외제차를 선물로 시가에서 받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남편이 이쪽에서 일하는 중이라 초보 운전으로 조심조심 왔다는 H의 말은 자랑이 아니다. 돈 욕심이 없어 하늘에서 자동차가 눈앞에 떨어졌다고 해도 저렇게 덤덤하게 말할 사람이다. 내가 먼저 물었고, 그에 대해서 이렇다고 답을 한 것뿐이다. 이런 주제로 상대방이 시기할지도 모른다는 계산은 머릿속에 없다.      


이에 대한 반응은 내 몫으로 넘어온 셈이다. 10년 타고 여기저기 잔고장이 나는 중고차를 바꾸고 싶은 나다. 이런 날 배려해달라고 해야 하나?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말도 안 되지. 게다가 너무 초라해. 평소처럼 ‘부럽다’고 말할 수도, ‘좋겠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나는 자주 감탄하는 사람이고 자주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다. 말할 기회가 있어야 내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이다.

  

때마침 주문한 브런치와 따끈한 커피가 나왔다.

내가 저런 외제차를 사려면 3년은 안 쓰고 모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H는 말했다.

“코로나 시대라며 시아버지가 저녁 먹으러 올 때 쓰라고 사주셨어. 사주시고 매일 부르셔.”


아하, 그렇구나. H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덧붙인다.

“시아버지 말씀 듣는 거 재밌어. 군대나 축구 같은 예전 이야기지만 좋아.”

내가 시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외제차를 타고 가서, 시가 식구들과 맛있는 걸 먹고 웃으며 수다를 나누는 상상을 함께 해보았다.

“외제차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둘이 깔깔대며 웃었다. 잠시지만 스무 살로 돌아간 것처럼 웃음이 젊었다.




H와 만나면 일상적인 대화에서 살짝 비켜가 있다는 점이 항상 재미있었다. 대학 시절에 알고 지냈다고 하지만, H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연락이 뜸했었다.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서로 세세하게 지켜보지 못한 데다 H에게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만나더라도 가족이나 생활보다는 우리의 화제는 주로 자신에 대한 동향들이었다. H가 나에 비해 훨씬 경험치가 넓은 탓에 주로 듣는 입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만났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아이 돌보고 직장 다니는 생활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게 생활의 전부였고, 나도 어지간히 털어내고 싶은 것들이었다.

 

“직장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 돌보고, 그러다 자고 출근하고 남편과 나 둘이서 정신없고….”

“참, 기괴해.”

한참 이야기하는데 H가 끼어들었다.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그렇잖아. 어디론가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 있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은 4명의 가족을 꾸린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삶을 산다는 게 어떤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거든.”

“아... 그건 그렇지. 불평하는 건 아냐.”

“최근 주변에 결혼한 지인들이 다 너 같은 사람들이야. 남편은 회사원이고, 아이를 낳고, 집은 화이트 인테리어와 나비 주름 커튼이고, 바닥에는 북유럽 스타일의 매트. 어쩜 그렇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남편, 아내, 아들, 딸 4인 가족을 구성하고 사는지.”     


 H의 말이 신기하다는 뜻인지, 이상하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뜻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내 인생이 그녀가 보기에 보편적인 범주 안에 들어가는지도 미처 몰랐다. 그저 내 하루를 사는 데 급급하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기괴하다면 기괴할 테다.


좋아 보이는 것들을 좇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 카테고리에 근접하게 보이는 건가 싶지만, 화이트 인테리어로 조성된 집 안에도 각각 살고 있는 가족들은 다를 것이다.

“음, 너도 재밌게 살고 있잖아?”

 

H 역시 음-이라는 소리를 길게 뱉으며, 샐러드를 입에 넣고 한참 우물거리더니 대답했다. “재미랑은 다른 문제지만 이대로 좋아. 우리는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아. 집이 있고 나와 남편이 조금씩 벌고 고양이를 키우고. 너는 아이 때문에 더 벌어야 하잖아.”

“음-, 아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이것저것 준비해야지. 부모님도 노후 준비도 잘 안된 채로 은퇴하셨고, 남편도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잖아. 물론 애들도... 신경 안쓸 순 없지.”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기는 쑥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면 이게 내 진정한 속마음 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늘 작아지고 만다.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 안정된 생활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등 뒤에 숨어 있는 뒷바라지할 식구들. 빛 좋은 개살구는 내가 아닌지.


그렇다고 나라고 죽자고 일만 하다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여유 있게 사는 생활은 누구나 꿈꾸는 건데. 너야말로 너 하고 싶은 공부 하며 돈 벌어오는 남편 있고, 부유한 시가까지 있으니 걱정 없는 팔자라서 내 입장 이해나 하겠냐는 유치한 응대를 할 뻔했다.      


H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울컥하며 그녀가 말했다.

“야! 네가 준비할 게 뭐 있어? 너 같은 애들이 제일 문제야. 지금 직장 다니고 있는 것도 충분한데, 무슨 인생을 또 준비해. 다들 파이프라인이다, 엔잡러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없는 사람들은 더 기회가 없고, 사회가 이 모양이 된 거 아니야.”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데.’ 엔잡러라고 해서 다 자아를 실현하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생계 앞에서 고귀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사람이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만을 보게 되니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더라도.”

다 이해한다는 듯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H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너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너니까'.

그녀가 나를 믿어준다는 일이 고마웠다. 내가 다 들어줄 사람이라서 편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좋았다. 그런데 마냥 맘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고 한쪽에다 온전한 이해를 맡겨버리는 일이 어쩐지 부담스럽다.


이제 우리는 책임져야 할 부분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또 그 외에 무엇들을 챙기고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나의 고단함을 어느 정도는 받아줄 친구가 필요한 것도 같았다.

너 정도면 괜찮지, 더 바라는 건 사치야, 그런 말은 스스로에게 이미 너무 자주 던진 그물이었다.




우리는 브런치 가게를 나와서 조금 걸었다. 날씨는 춥지

않았다. 시계를 흘끗 보고, 나는 가야겠다고 말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골목에서 인사를 했다. 헤어지기 전에 H는 물었다. “저기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는데 같이 먹으러 갈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조급했다.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고 거절했다. H는 알겠다며 대답하고 저편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기운차다기보다는 화난 사람처럼 씩씩 바짓가랑이를 스치며 큰 보폭으로,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처럼 갔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서, 그녀가 나와 만나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음을 느꼈다. 다시 뛰어가 잡거나 큰소리로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고백하건대, 그 순간만큼은 너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치기보다는 나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점점 날카로운 대화는 부딪치기 전에 피하게 된다. 마음을 나누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점점 알게 된다. 나도, 그녀도 서로의 삶을 가까이서 보지 않고서야 각자가 무엇을 감당하며 살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나이 먹어 오래되기만 한 우정의 서글픔인 것 같다.


그러다 돌아오며 곧 후회했다. 이해관계는 복잡하고 각자 무슨 수를 두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데, 내게 속을 다 보여주는 그녀가 어떻게 친구가 아닐까. 아이들이 커가며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우정도 나이 먹으며 다르게 변하는걸 친구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들이야 그저 놀게 두고, 친구와 공백을 메우다 올 걸 싶었다. 섣부르게 드러내기보다 그저 좋겠다, 부럽다 해주며 이야기나 실컷 들어주고 올 걸 그랬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날 때까지도 들어줘야 하는 사람은 듣고 말해야 할 사람은 말하며 그녀와 나의 관계는 그래도 좋겠지 싶었다.


세월을 먹을 만큼 먹어 능구렁이가 된 우정이 그렇게 굽이굽이를 돌며 시간이 흘러도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가기를 바란다. 엎치락뒤치락 위치는 바뀌어도 새로운 똬리를 틀고 깊이 있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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