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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l 17. 2024

인권 강사 지원 에세이

인권강사의 덕목

이것은 고발장이 아니다. 내가 겪어온 나의 진실을 돌아보는 사소한 기록이다.
  내가 경찰관이 되고 아침 회의에서 상사에게 가장 처음 들은 말은 “네가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든, 가방끈이 얼마나 길든, 여기서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사무실에서도, 사무실 뒤편 소각장에서도, 내가 부산 대표로 경찰 열차 강사가 되었을 때도, 상사는 그 말을 했고, 나는 나의 가방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나와 가방끈도, 계급도 같은 남성 경찰관이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 그 상사는 그 사람과 자주 흡연하러 소각장에 다녀왔다. 보고서 한 장에도 수차례 불려 다니며 회의 시간에 저격 멘트를 견뎌야 했던 나와는 달리, 그 사람은 특별한 일 없이도 줄곧 칭찬받았다. 그리고 내가 그 경찰서를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그 사람은 나에게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시절 선배들은 나를 혼내는 것을 주요 업무로 생각했는데,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다고 주말에 전화해서 혼을 내거나 다른 사람과 이름을 착각해서 전해 들은 말로 나를 혼낸 일도 있었다. 보고서를 쓰면 직속 선배부터 차례로 수정하고 7번이 되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의아한 일이지만, 나의 직속 선배는 학교에 보내는 간단한 협조 요청 공문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선배의 역량과는 관계없이 경찰관이 된 순간부터 나는 지적받고 수정되어야 하는 존재였다.
  상사는 아예 여자 선배를 불러내어 나의 불찰을 지적하는 업무를 맡겼다. 한 번은, 학교전담경찰관으로서 학교에 강의를 나갈 때 강의료를 청문에 신고하는 절차가 궁금해서 청문 사무실로 찾아갔는데 그 일로 청문 계장님께 곧장 전화를 받은 나의 상사는 선배들에게 나를 똑바로 관리하라고 했고, 선배들은 한동안 학교에 나갈 때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여자 선배는 나에게 겁도 없이 청문감사실로 찾아간 순경이라고 했다. 지구대 생활도 안 한 네가 뭘 아냐며, 포토샵 할 줄 모르면 밤을 새워서 일하라고 말을 쏟아내던 그 여자 선배는 나와 다른 사무실로 옮겨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새로운 사무실에서 나를 알든, 모르든 ‘요즘 무서운 순경’에 대해 말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소문의 진위를 나에게 물었다.  
  언젠가 한 선배가 주말 행사에 나오지 말라고 해서 나가지 않았는데, 진짜 나오지 않았다고 퇴근 후 그 선배에게 불려 가서 혼이 났다. 나는 김치찌개 집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랐다. 나는 학교전담경찰관 특채로 경찰서로 바로 발령을 받았고, 나와 진정성 있게 교류할만한 동료나 선배가 없었다. 스치듯 알게 된 선배에게 물어보면, 순경은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다른 경찰관에게 물어보면, 지구대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외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내가 군대를 나오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했다. 선배는 나에게 “생각하지 마”라고 했다. 적어도 10년은, 아니 경사가 될 때까지는 생각도 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어느 날 외부 행사에서 내 근무복 바지가 터지는 불상사가 생겼다. 나의 상사는 “엉덩이가 커서 터진 거냐, 바지가 작아서 터진 거냐”하고 농담을 던졌고,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재차 물었다. 훗날 이 문제로 성희롱 조사가 시작되자 주위 선배들은 결계를 친 듯 내 곁으로 오지 않았다. 몇몇 선배들은 사방에서 “엉덩이 여경이 누구냐”는 전화를 받았다는 말을 전했다. 한 여자 선배는 “나 때는 더 심했다. 그 정도는 성희롱도 아니다.”라고 말했고, 한 여자 선배는 “네가 착한 애인데, 절대 신고할 리가 없는데.”라고 말했다. 한 여자 선배는 “상사가 힘이 없어서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힘이 있었으면 그럴 일 없었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한 여자 선배는 “네가 잘못한 것이다. 상사는 너를 좋아했다. 뒤에서 네 칭찬을 했다.”고 훈계했고, 한 여자 선배는 “네 상사가 너를 여자로서 좋아한 것은 아니다.”라며 성희롱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소문은 바람처럼 빨랐다. 지인을 통해 알게 모르게 전파된 말을 듣고 있노라면, 조직의 관계망이 그려졌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자석이 같은 극을 밀어내듯 사람들이 나에게서 밀려나 다닥다닥 붙어서 숨죽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나보고 “네가 신고한 것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은 일 년 동안 내가 상사에게 받은 대우에도 침묵을 지키던 선배들이, 상사가 괴롭힘의 대상을 넓히기 시작하자 즉각 반발했고,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너무 힘들다. 내가 총대를 멜 테니, 부당하게 당한 일을 청문에 얘기하자.”며 설득해서 쓴 진술서가 시작이었다. 나는 그 선배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기를 원치 않았다. 조직 내에서 내 주제도 모르고 나는 선배가 안타까워 진술서를 썼다.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지만, 나는 깊은 고민 끝에 “있었던 일을 있었다고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단순한 명제를 지키기로 했다. 오직 진실할 것, 그 하나만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의 말과는 달리 총대를 멘 것은 나였다. 나는 “엉덩이 여경”이 되어 또 소문의 함정에 깊이 빠져들어 갔다. 경찰서를 옮겨도 사람들은 나를 의심했다. 이미 수렁에 빠진 상태에서는 누구를 만나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1년 후 베스트 학교전담경찰관 팀에 지원하라는 상사의 지시에 따랐다는 이유로 동료 경찰관들이 시비를 걸어왔고, 나 혼자 일한 것처럼 되기 때문에 나 혼자 일해서는 안 된다는 비상식적인 논리로 나를 따돌렸다. 이 일을 계장에게 보고하자 계장은 자신의 승진에 누가 될까 봐 다른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울고 다녔고, 과장은 청문에 이 일을 통보했으니 조만간 조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가를 내고 죽을 마음으로 살아있던 어느 날, 청문에 전화해 진행 상황을 물으니 자기들은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조직에서 버려져 돌아갈 곳이 없었다.

  여기까지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있다면 내 말의 진위를 의심할 것이다. 설마 사람들이 이유 없이 그랬겠나 싶을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는지, 내 피해의식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닌지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특히 나와 연루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옹호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나의 현재가 그 누구의 과거와 똑같을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찾아내 나를 해석할 것이다. 이때만큼은 나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일, 황당했던 일, 억울했던 일도 나에게 훈계할 수 있는 권력이 된다. 몇몇의 진단에 따르면 내가 일을 잘해서 사람들이 나를 시기한 일도 내가 사람들의 기분을 거슬리게 한 잘못이고, 내가 선배를 화나게 한 것도 내가 군대문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도 내가 나약해서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산다는 건 원래 그러한 것인데 그 정도 일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선배가 후배를 위한 마음에 몇 마디 훈계한 것으로 유난을 떤다며,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을 크게 만들었다고 나를 탓할 수도 있다. 불편함을 인지하는 동료와 일을 한다는 건 불필요하고 피곤한 일이다. 인사이동 시기만 되면 흡연구역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정보를 주고받는 이유는 불필요하고 피곤한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음주와 흡연, 함께 지낸 시간과 작은 호의들이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징표이자, 불편할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이제 내가 겪은 일들을 조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일어난 ‘차별과 혐오’라고 명명한다. 앞서 말한 가상의 반응은 무의식적인 ‘혐오’의 가면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무의식을 알아차린 사람이라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 대개는 본인들이 그런 말을 내뱉고서도 자신은 사람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든 기득권을 가진 쪽의 고정관념을 내면화하는 습성이 있다. ‘혐오’는 기득권의 고정관념을 내면화하여 사람을 꿈이나 점으로 보는 모든 말과 행동이다. 기득권을 나누는 기준은 주로 세 가지다. 계급, 성, 다수.
  나는 가장 낮은 계급에서 미혼 여성 특채 출신 경찰관으로 조직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미혼’ 여성은 ‘기혼’ 여성과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식을 명문화한 ‘의전’을 살펴보자. ‘의전’이란 넓게 말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개개인이 지켜야 할 건전한 상식에 입각한 예의범절(사교의례)이다.(출처: 2020년 외교부홈페이지) 서울시 의전실무편람에 따르면 공식행사에서 계급과 직위에 따라 의전서열이 정해지고, 여성은 남편의 서열을 따르는데, 미혼자는 미망인보다 낮고 미망인은 기혼자보다 낮다. 따라서 같은 여성이라도 기혼자와 미혼자가 다르고, 부친이든 남편이든 가족 내 남성 경찰관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위치는 다르다.
  다시 정리하면, 가방끈이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내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인격적으로 나를 무시하고 반복적으로 혼을 냈던 건 내가 계급이 낮고, 미혼의 여성인 데다가(조직 내 발언권이 있는 남성 경찰관 가족이 없었고), 특채로 채용된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나의 터진 바지가 농담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나를 인격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또 하나의 농담으로 만든 건 ‘다수’의 힘이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이 나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부당한 일이 존재했다는 진실보다 부당한 일을 발설한 것을 문제라고 여겼다. 다수의 평가를 전하며 나를 배려하는 척하는 말도, 나의 위치를 언급하며 훈계하는 말도 나를 ‘피해자다움’에 가뒀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는다는 이유로 집단으로 나를 비난하고 시비를 건 것도 ‘다수’였다. 나는 신성한 의식에 희생물로 바칠 수도 없고 누구나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호모 사케르’가 되어 이 조직에서 추방되었다.

   헌법 제11조 제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성별에 따른 차별과 혐오는 인권의 문제다.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차별과 혐오는 기득권에서 배제된 사람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대수롭지 않고 사소한 일들이 존재하는 감각에 상처를 낸다.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불편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통에 무감각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말라. 존재적 이유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혐오를 당하며 감내해 온 촘촘한 시간을 영원히 모른 척할 수 있는 특권은 언젠가 늙어 병들고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인권을 지니고 타인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인권을 포기하거나 침해하는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해나 자살로 스스로 신체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신체나 성을 파는 일에도 경찰관은 유책성을 가지고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 및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경찰관도 인간이기에 당연히 인권을 옹호해야 하고, 법에도 그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인권을 옹호하는 일이 이렇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이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는 특별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경찰관직무집행법의 또 다른 목적 ‘사회 공공의 질서유지’와 인권의 가치가 부딪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은 법률에 의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체포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압수로 재산권을 제한하며, 영장을 받아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고,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사전 신고를 받아 집회의 자유에 제한을 가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 매 현장마다 달라지는 상황을 세세하게 규정할 수 없고 사람들은 법망을 피해 경찰관의 권한을 농락할 때가 다반사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타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두 번째로 인권은 공백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엄하다고는 하지만, 그게 어떤 모습인지는 알기 어렵다. 취업에 실패하고, 투자에 실패하고, 가정이 파탄 나도 인간은 존엄한가. 매일 술을 먹고 툭하면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여성을 희롱하는 인간은 존엄한가. 난치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견디며 가족들에게 치료비를 부담하게 하는 인간은 존엄한가. 그들이 불행하다고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들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하는가. 피의자의 인권을 제한한다고 해서 그들로 인해 피해 입은 사람의 인권이 회복될 수 있는가.
  인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인권을 읽어내기가 어려울 뿐이다. 인권은 생명과 동시에 부여되는 권리기에 실존적이고, 사람 안의 불가침한 영역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되 공동가치를 창출해 내야 하므로 깊이 고민할수록 혼란스럽다. 이것이 맞나 싶으면, 맞는 것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고, 이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다시 옳은 것이 되니 틀린 것이 영원히 틀린 것도 아니다. 인권 경찰이 되는 데 지름길이 없다. 상황마다 깊이 고민하고 달리 판단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급박한 현장에서 인권을 고민하고 수호하는 내공을 쌓을 수 있다.

  따라서 인권 강사는 경찰관의 질서유지 의무와 인권수호 의무의 경합 그리고 인권 가치의 무형성, 이 두 가지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질서유지와 인권이 상충할 때 경찰관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인 태도를 함께 고민하고,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공백으로서의 인권을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인권교육의 장기목표라고 본다면, 단기목표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다.  
  우선 동료 경찰관의 귀를 여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권력을 해체하는 강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최근에 한 상관이 배우자 출산 휴가를 쓰는 동료에게 “네가 애 낳나? 나 때는 가지도 못했다.”라는 말을 했다. 휴가 계획을 보고하던 한 동료에게는 “민폐다”라고 말해 그 동료는 얼른 휴가를 취소했다. 그 상관은 성실하고 훌륭한 경찰관이지만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나의 위치가 어디이고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높은 계급은 발언권을 가지고 낮은 계급은 오로지 해명하거나 순응하며 윗사람의 의도를 간파하려고 전전긍긍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타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생각의 회로를 갖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생각의 회로가 있다. 타고난 기질과 자라온 환경에 따라 같은 생각 패턴을 반복하고, 그것을 불교에서는 ‘찰나가 윤회한다’고 한다. 상황과 사람은 매번 달라지는데 같은 생각을 반복하다 보니 예전에는 적응적이었던 생각이 세월이 흐를수록 부적응적으로 변한다. 살던 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 때는, 생각의 회로에 갇혀 출구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뇌는 자신이 알 수 있는 반경을 넘어서면 죽음으로 간주한다.
   단단하게 자리 잡은 생각의 회로를 바꾸려면 ‘내가 옳다’라는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내가 제시하고 싶은 방법은 역통합 모델이다. 비장애아동 교육환경이 장애아동을 배치하는 현재 통합 모델과는 달리, 역통합 모델은 장애아동이 주류가 되는 교육환경에 비장애 아동을 배치시키는 교육 활동 모형이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다수의 권력을 박탈했을 때 비장애 아동은 장애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자신과 다른 모습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앞서 말한 그 사례에서도 조직 내 권력작용을 해체하고 다수의 사람들 안에 소수로 존재하는 경험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열심히 사느라 지켜온 ‘옳고, 당연한 신념’이 다수의 권력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당연한 것은 없다’는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부산청에서 MZ세대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유의미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귀를 기울이게 한 다음에 인권강사가 해야 할 일은 관점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다. 관점의 차원을 높여 불가침의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구분해 법적인 절차는 지키되 인간 본연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고, 책임(의무)의 영역과 선의의 영역 구분하여 업무를 수행하고, 기분과 감정(태도)을 구분하여 인간 안에 이해불가능한 영역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혐오는 단순한 언어에서 나온다. 혐오에서 벗어나 인권을 수호하려면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 언어와 생각, 상황을 보는 관점을 부단히 세분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모든 현장은 두렵고, 우연에 몸을 던져 현장으로 나아가는 걸음은 무겁다. 현장 경찰관의 관점의 차원을 높이고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현장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좋은 강의라고 할 수 없다. 인권강사는 평소에 갈고닦은 인문학적 소양으로 현장을 해석하되, 현장 경찰관의 고충을 이해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현장 경찰관이 공감하고, 삶이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강의를 설계해야 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레비의 책 제목처럼 ‘이것이 인간인가’ 싶을 때도 저 사람이 인간인 것을 잊지 않는 경찰관이 될 수 있도록, 인간을 깊이 이해하여 경찰관 스스로를 보호하고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다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7월 1일이면 드디어 나도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초임 시절 김치찌개 집에서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게 만들었던 선배의 말대로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곧 경사가 되지만, 나의 필명은 아직 ‘김반장’이다. 불화로 와장창 깨어졌다가 책에서 고통을 이해하는 길을 찾고 나와 타인을 용서하기까지 기나긴 오디세이는 내 정체성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제는 사회학자 엄기호의 말처럼 ‘불화도 만남의 한 형식’ 임을 이해한다. 더 이상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으로 인해 나의 영혼이 훼손되지 않는다.
  인권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타인에게 뺏기지 않는 단 하나의 자유를 깨달았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의미’는 소진되지 않고 외부로 열려 있으며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소명’이다. 나는 사람을 우주로 대하는 것을 나의 소명으로 여긴다. 인간에게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우주 같은 공간이 있다. 감정, 기억과 경험, 양심 모두 개별 인간의 불가침한 영역에 귀속된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살아있는 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라고 느끼는 순간, 타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 감각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인권이다. 인간이라는 우주를 만나 있는 그대로의 혼돈을 마주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진정한 인권을 이해할 수 있고, 막다른 골목에서 도돌이표를 찍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권은 곧 자유다. 이번 인권강사양성과정을 통해 비틀린 현실 속에서도 일그러지지 않을 자유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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